‘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준다’더니. 시카고 컵스 팬들의 간절함에 마침내 우주가 나서기라도 한 모양이다. 시리즈 7차전 연장 10회에 쏟아지던 장대비가 거짓말처럼 그치고, 역시 또 거짓말처럼 결승타가 나오면서 8:7 케네디 스코어로 시카고 컵스가 2016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됐다. 지긋지긋했던 ‘염소의 저주’를 풀고, 무려 108년 만에 거둔 우승. 혹자의 표현대로라면 대한제국 순종 2년 이후 첫 우승인 셈이니, 한 나라가 (비록 이름뿐이지만) ‘제국’에서 ‘공화국’으로 변모해 온 역사에 비견할 만한 실로 역사적인 사건이다.

컵스 팬들의 지극정성을 벤치마킹이라도 해야 하는 걸까. 한국사회는 ‘염소의 저주’보다도 더 강력한 종류에 시달리고 있는 듯하니 말이다. 이왕 컵스를 거론했으니 그들의 지난 우승을 기점으로 따져보자면, 순종 2년 이래 우리는 민주사회를 실현하려는 문턱에서 번번히 좌절하곤 했다. 해방 직후엔 미군정이 들어섰고, 4.19혁명은 5.16쿠데타로 인해 완수되지 못했으며, 6월 항쟁에도 불구하고 제5공화국이 제6공화국으로 숫자만 바꿔 다는 일들을 목격하지 않았던가. 마치 어떤 거대한 ‘우주의 기운’이 민주사회의 실현을 가로막고 있는 듯한 역사를 우리는 거쳐 왔다.

굳이 수고스럽게 불운했던 과거사를 되짚어볼 필요도 없이 지난 며칠간 벌어진 일들만을 놓고 봐도 명백하다. 컵스마저도 월드시리즈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마당에, 우리는 하루의 시차를 격해 난데없이 독재자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동상 건립 추진 소식에 대해 들어야만 했음을 상기해보라. 시민들이 매일 밤 촛불을 들고 나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외치고 있는 바로 그 광장에 독재자의 동상을 세우겠다니. 게다가 그 분노에 찬 목소리를 묵살한 채, 독재자의 딸은 태연하게 ‘불통 개각’을 단행하며 몰염치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저주의 힘이 아니고서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런 불가사의한 사태가 계속해서 벌어지기도 어렵다. 맙소사, 그러고 보니 대한민국은 ‘주술사’가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국가였다는 사실. 어쩌면 저주설은 단순히 근거 없는 낭설이나 떠도는 풍문쯤으로 부쳐둘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지독한 저주를 풀기 전까지 시민들이 외치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은, 가령 영화「변호인」 속 송강호가 퍼붓는 파토스 넘치는 대사와 같이 영화적인 판타지 따위로 간접 체험될 뿐이다. 그러나 절망할 것 없다. 뒤집어 보면 사문화(死文化)되다시피 한 그것을 현실화할 때 비로소 저주는 저절로 풀리게 되리라는 뜻이기도 하니 말이다. 돌이켜보건대 저 질긴 저주의 사슬을 잇는 데 동원됐던 ‘(비)논리’는 다름 아닌 한국사회의 유구한 ‘경제성장 제일주의’ 아니었던가. 우리는 산업화와 근대화라는 그럴듯한 명목 하에 독재자가 군림하는 일을 묵인했던 지난날의 과오를 기억한다. 그리고 다시, 그 독재자에 대한 미화된 신화를 추인하며 그의 딸을 대통령으로 삼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반복하고 말았다. 그저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된다면 시민 개개인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존엄이 지켜지는 일은 잠시 보류해둬도 된다는 근시안적인 판단은 여러 독재자들에게 알리바이를 제공해준 셈이다.

저주의 기원은 드러난지 오래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는 일은 다른 누구의 몫이 아니라는 점 또한 분명해졌다. 우주가 나서서 돕는 그런 미신적인 일은 앞으로도 영원히 일어나지 않으리라. 바야흐로 저주를 푸는 시간은 우리에게도 임박한 듯하다.

 

 

배하은 간사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