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을 규탄하고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촛불 집회가 대규모로 개최됐다. 이에 대해 다음날인 30일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 29일 집회에 대한 경찰의 입장’이란 제목으로 집회에 참여한 시민에게 감사하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경찰청은 “어제 행진 중 신고된 코스를 벗어나 광화문 광장으로 이동하면서 참가 인원이 증가했다”며 “이를 차단하는 과정에서 일부 시위대와 경찰 간에 몸싸움도 있었으나, 경찰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끝까지 인내하며 대처했다”고 전했다. 이어 “시민들께서도 경찰의 안내에 따라주시고 이성적으로 협조해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며 “향후에도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준법 집회시위 문화가 정착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경찰이 시위대에게 ‘감사드린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낸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통상적으로 집회 이후에는 불법, 폭력 집회 참가자를 강경하게 처벌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냈기 때문이다. 특히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던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직후엔 “도심 불법 폭력시위 주동자 등을 전원 사법처리하고, 엄중한 책임을 물을 방침”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보도자료 이외에도 집회에 대해 경찰 측이 사용한 표현 역시 이전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지난 31일 이철성 경찰청장은 11월에 열릴 예정인 대규모 집회와 시위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안전과 인권에 각별히 유념하라고 일선 경찰들에게 지시했다. 이전까지는 불법 집회에 ‘엄정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여러 번 공개적으로 밝혀온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집회 현장에서의 경찰 대응 역시 이번에는 달랐다. 지난 29일 열린 집회에서는 경찰 저지선을 뚫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있었으나 다친 사람은 없었다. 또 경찰 저지선 역시 시위대에 의해 금세 무너졌다. 경찰은 최대 3만여 명이 모인 이날 집회에서 참가자 1명만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조사했을 뿐이며, 다른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이는 지난해 세월호 1주기 추모집회에서 경찰이 도로교통법 등을 적용해 100여 명의 참가자를 무더기로 연행했던 것과 비교된다.

달라진 경찰 대응 이후 시위 현장에서의 별다른 피해나 충돌 없이 무사히 집회가 진행된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진압보다는 설득을, 해산보다는 안전한 진행에 초점을 맞춘 집회 대응은 매우 환영할만하다. 이제까지 시위 이후에는 항상 ‘불법 폭력 시위대’와 ‘과잉 진압 경찰’의 프레임에 갇힌 이야기가 주를 이뤘으며, 시민들이 왜 거리로 나서고 무엇을 외쳤는지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집회가 안전하고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힘쓰는 방식의 경찰 대응 이후 우리는 드디어 시위대와 경찰의 싸움이 아니라 시위의 이유와 배경 그리고 목적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됐다. 이런 대응이 일시적인 미봉책에 그쳐서는 안 된다. 앞으로도 경찰청장의 말대로 ‘안전과 인권’에 유념하는 경찰의 집회 대응 방식이 지속되길 바라본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