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서울대 학생은 뭐 학교에서 하는 거 없어요? 나라가 이 모양인데.” 지난주 학교 가는 길 편의점에 물건을 사러 들어갔다가 계산해 주시는 분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아마 계산하기 위해 꺼낸 학생증을 보고 하신 말씀일 것이다. 뉴스를 계속 보고 계셨는지 내가 물건을 고르는 내내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리곤 하셨다. 계산을 끝내고도 약 10분간은 나라의 미래에 대한 우려와 한탄을 하셨다. “이럴 때일수록 대학생들이 움직여야지.” 지각하지 않기 위해 허겁지겁 편의점을 나와 학교로 가는 길은 여느 때보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밤 뉴스에서는 새로운 사건들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이에 국민들은 ‘행동’으로 답하고 있다. 29일 광화문에서의 대규모 집회 이후 광화문 앞에서는 매일 집회가 열리고 대학가에서도 앞다퉈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대체로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박근혜정부의 퇴진”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다. 시국선언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대학생 시국대회가 열리는가 하면 각 학교의 특색을 살려 현 시국에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한국외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에서는 이탈리아,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등 10개 언어로 작성된 시국선언문을 발표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총학생회는 31일 오후 ‘시굿선언’을 열어 국정농단을 규탄했다. 이처럼 대학가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는 것을 넘어서서 각자의 방식대로 ‘행동’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행동’하는 과정에서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지난 달 31일 오전 용인대 총학생회에서 발표한 시국선언문이 그 단적인 예이다. 이틀 전 29일 한양대 로스쿨에서 발표한 시국 선언문의 일부를 발췌해 작성했다는 표절논란이 있었다. 그 외에도 많은 의견을 수렴하지 못한 시국선언문 초안에 대한 비판을 받는 대학들이 있었다. 이로 인해 대학가에서 발표되는 시국선언문에 대해 보다 신중하고 꼼꼼하게 검토할 충분한 시간을 가지지 않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시국선언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또 공개적으로 집회의 참여 여부를 묻는 행위에 있어서도 논란이 된 바가 있다. 물론 정확한 인원을 파악해야만 하는 불가피한 상황이었겠지만 의도치 않게 ‘행동’을 강요하게 되는 여지는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정치적인 행사에 대한 참여에 있어서 보다 신중하게 숙고해야 하는 부분이 없지 않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시국’에 대한 우려와 분노의 표출보다는 대학생으로서의 책임감과 사회적 기대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한 모습들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하다.
 학생사회가 부조리한 사회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에 응당한 목소리를 내야하는 것이 당연시 돼왔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학생사회에 기대하는 바가 없지 않다. 이는 과거 4.19 혁명과 같은 사건들에서 지식인이라 불리던 대학생들이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해 앞장서 왔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 어떤 구성원들보다 깨어있는 집단이었고 역사적인 순간의 최전방에서 투쟁해 왔다.
 ‘행동’의 과정에서 논란의 여지가 생겨난 것들이 이러한 선례들의 영향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앞서 편의점에서 나와 학교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던 것 같다. ‘뭐라도 해야 하는 분위기라서’ ‘나만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 것 같아서’라는 생각들은 요즘과 같은 때에 조심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대학가에서 보여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과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모습은 같은 대학생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앞으로 대학가의 움직임에 있어서 목적이 아닌, ‘행동’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을 지속적으로 경계한다면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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