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계의 기울어진 운동장, 창작자의 권리 되찾으려면
방송계의 기울어진 운동장, 창작자의 권리 되찾으려면
  • 김지수 기자
  • 승인 2016.11.13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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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 문화예술계 불공정 피해 보고와 입법 토론회

지난해 7월 손아람 작가가 기고한 칼럼으로 인해 ‘유령’들이 세상 밖으로 알려졌다. 방송 프로그램 배경음악을 제작하는 외주업체 ‘로이엔터테인먼트’(로이엔터)는 ‘음악감독 김한조’의 이름으로 「프로듀사」 「송곳」 「응답하라」시리즈 등 걸출한 방송의 배경음악들을 담당했다. 그러나 칼럼을 통해 이들 음악이 사실 김 씨가 아닌 수많은 ‘유령작곡가’들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폭로됐다. 이들은 해당 방송의 엔딩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으며 약 2,000여 곡의 음원수익을 지불받지 못했다. 비단 로이엔터 사태뿐만 아니다. 방송계에 종사하는 많은 문화예술인과 창작자들이 거대 기업들과의 계약에서 정당한 임금과 저작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불공정 관행으로부터 방송계 창작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터져 나왔다. 이에 지난 10일(목) 유은혜, 오영훈, 박홍근 의원 주최로 불공정 피해 사례를 짚어보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보는 ‘문화예술계 불공정 피해 보고와 입법 토론회’가 국회 제2간담회실에서 개최됐다. 이날 토론회에선 △방송 배경음악 저작권 문제 △방송 프로그램 외주제작 관련 문제 △방송 작가 노동환경 등 방송계에서 자행된 불공정 관행 실태와 이를 보완할 입법 대책이 발제됐다.

 

토론회를 주관한 오영훈 의원이 표준계약서 강제 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다.

‘갑’의 횡포 아래 신음하는 창작자들

저작권 실태 발제에서는 많은 방송음악 작곡가들이 저작권대리중개업체와 신탁관리업체의 횡포에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이 지적됐다. 이들 업체는 개인을 대리해 저작권을 등록하고 이를 홍보, 중개하거나 저작권료를 징수, 분배한다. 문제는 이들이 거대 기업이라는 지위를 악용해 개인 창작자들을 착취한다는 것이다. 김종휘 변호사는 “이들은 중간에서 수수료를 과도하게 챙겨 이득을 취한다”며 ”이미 방송음악계를 장악한 거대 중개업체 앞에서 개인 창작자들은 부당한 계약 조건에 침묵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들 업체는 로이엔터 사태에서처럼 저작권 탈취를 위해 저작권자를 바꿔 등록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석성주 방송음악 작곡가는 “저작물 등록이 엉뚱한 사람 앞으로 돼 있어 저작권료가 제대로 징수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방송 프로그램 외주제작 분야에서도 불공정 관행이 만연하다. 제작주체의 다원화와 방송 시장의 지상파 독점해소를 위해 1991년 방송사당 외주제작 프로그램 비율이 35% 이상을 차지하도록 하는 ‘외주제작 프로그램 의무편성 제도’가 도입됐다. 그러나 도입 취지와 달리 이 시스템은 대형 방송사의 이익을 위해 악용되고 있다. 한국방송영상제작사협회 배대식 사무국장은 “방송사는 구두계약을 체결해 외주제작사에 당초 약속보다 적은 제작비를 지원하거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위)에서 과태료를 부과하면 그 책임을 외주제작사에 떠넘기기 일쑤”라고 설명했다. 외주제작사가 자체 기획한 프로그램의 저작권을 인정해주지 않는 방송사의 태도도 지적됐다. 배 사무국장은 “현재 대부분의 계약은 저작권이 방송사에 일방적으로 귀속되는 형태로 체결되고 있다”고 밝혔다.

안정적인 계약과 수익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제작사의 방송작가들도 마찬가지다. 전국언론노동조합에서 647명의 방송작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최초 고용시 노동 조건에 대한 설명을 듣고 구두계약한 경우는 68.8%, 설명조차 듣지 못하고 구두계약한 경우는 24.6%였다. 이런 비공식적 계약 절차는 과중한 잡무 부담과 낮은 임금 수준을 야기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김동원 정책국장은 “막내작가들은 대본을 쓰는 일이 아니라 진행자 선정, 촬영장소 섭외 등 잔심부름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 중 60%가 높은 노동강도를 이기지 못하고 입사 1년 만에 퇴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50%에 달하는 작가들이 150만원 이하의 월급을 받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덧붙였다.

 

근본적인 원인은 관리·감독 부실과 제도적 허점

문화예술계에서 거래 당사자 간 지위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선 행정기관의 개입과 적절한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로선 자행되는 불법 행위를 제재할 공적 방안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석성주 방송음악 작곡가는 “방송사 자회사들이 문화체육관광부에 신고도 하지 않은 채 저작권대리중개업을 수행하며 수수료를 갈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저작권법에 저작권자와 중개인 사이의 적절한 수수료 배분에 대한 법률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허가받지 않은 대리중개업체가 난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행법에 표준계약서 의무화 제도가 부재한 것도 원인이다. 현재 많은 방송계 종사자들이 구두로만 계약을 체결하거나 아예 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일한다. 이는 자의적인 수수료 배분을 낳을 뿐만 아니라 저작권 탈취, 포괄적인 양도로 인한 원저작권자의 사후 피해를 야기한다. 강신하 변호사는 “거대 기업과 개인 창작자 사이 지위가 불균등해 원저작권자가 기업에게 저작권을 포괄적으로 양도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 경우 나중에 저작권으로 큰 이득을 얻더라도 원저작권자는 그에 따른 보상을 받을 수 없다”고 현 방송법이 원저작권자를 보호하고 있지 못함을 지적했다.

예술인복지법의 적용범위 또한 문제로 지적됐다. 김동원 사무국장은 “많은 방송작가들이 예술인복지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주장했다. 복지법은 개인 창작물이 있고 예술 활동으로 얻은 소득이 있어야 적용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방송 프로그램 제작은 집단 창작 활동이므로 작가 개인의 창작물로 인정받지 못할뿐더러 개인의 예술 활동으로 얻은 소득이라고 특정하기 어려워 복지법상 ‘예술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김 사무국장은 “집단 창작에 종사하는 제작 당사자들을 어떻게 예술인 범주에 포함시키고 어떻게 이들의 활동을 증명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행정 당국이 해결 의지 가져야

이날 토론자들은 문화예술계 불공정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해선 행정 당국의 책임감 있는 관리·감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방송 제작 과정에 만연한 문제에 대한 방통위의 적극적 대책이 촉구됐다. 실제로 영화계에선 영화진흥위원회의 주도로 영화산업 상생협약이 체결된 선례가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장지연 선임연구원은 “방통위가 중심이 돼 외주제작 분야와 방송 노동자를 모두 망라하는 불공정 관행에 대한 조사를 하고 공정한 환경을 위한 상생협약 추진을 주도적으로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법률의 개정 및 도입도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저작권법은 강화하고 복지법은 구체화해 사각지대를 없애자는 것이다. 강신하 변호사는 “저작권대리중개업체를 허가제로 바꾸고 저작권 대리 및 중개 행위를 할 때마다 원 저작자에게 허락을 맡게 하는 식으로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표준계약서 작성 또한 제도적으로 의무화하고 엄격히 감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이를 통해 저작권 탈취나 포괄적인 양도로부터 원저작권자를 보호할 수 있게 된다.

근본적으로 방송계 창작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예술인복지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불거졌다. 강 변호사는 “복지법에서 불공정 행위 관련 법률을 따로 빼내 별도로 입법해야만, 상황에 따른 구체적인 예술인 복지가 이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복지법 사각지대에 놓인 대중예술 종사자들을 어떻게 예술인 복지의 울타리 속으로 들여올지 고민해볼 차례라는 것이다. 유은혜 의원은 이날 개최된 토론회를 마무리하며 “각 피해 사례를 통해 발제된 법안을 구체적으로 상의해 우선순위 법안으로 추진하겠다”며 “문화예술계 청년들에게 자기 분야 하나로만 먹고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할 때”라고 강조했다.

 

사진: 이문영 기자 dkxmans@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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