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여 가지의 춘향이와 심청이 이야기 한자리에

▲ © 강정호 기자

 

널리 알려진 『춘향전』에서 변사또는 봉고파직을 당하고 쫓겨난다. 그러나 이와 달리 변사또가 춘향의 절개를 더욱 빛냈다고 주장한 춘향의 어머니 월매 덕에, 변사또가 벌을 받지 않고 끝나는 『춘향전』도 존재한다. 이처럼 한 소설의 내용이 다른 이유는 판소리계 문학에 많은 이본(異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널리 읽혀져 온 춘향전은 이본만 150종이 넘는다.

 

이처럼 방대한 판소리 문학의 이본 자료를 정리해 묶어낸 책 『고전명작이본총서』(박이정 출판사)가 46권을 끝으로 최근 완간됐다. 이와 관련해 이번 작업을 기획, 지휘해 온 김진영 교수(경희대ㆍ국어국문학과)를 만났다.

 

판소리계 작품의 경우 연창 또는 필사로 이뤄지는 유통 과정에서 세세한 줄거리와 묘사 등이 많이 바뀌었고, 이로 인해 많은 이본이 생겨났다. 그러나 이본들이 개인이나 연구소, 기관 등 여러 곳에 산재해 있는데다 필사본의 경우 글씨를 흘려 쓰거나 사투리를 그대로 적은 경우가 많아 그동안 판소리 이본 연구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이본 자료를 모아 1997년 춘향전 이본을 수록한 춘향전 전집 17권을 발간한 것이 『고전명작이본총서』 시리즈의 시작이다.

 

판소리 작품 이본 390종 모아 옹고집전, 변강쇠전도 정리

김 교수는 “『고전명작이본총서』에는 판소리계 문학인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토끼전, 적벽가의 이본 390종이 실려 있을 뿐 아니라 지금은 판소리로 불려지지 않아 실창(失唱)판소리 문학으로 분류된 옹고집전, 변강쇠전, 배비장전, 매화가 등도 정리돼 있다”며 책 내용을 소개했다. 책에는 각 이본의 특성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함께 이본의 필사본이 표기 그대로 실려 있다.

 

이번 판소리 문학 이본자료 모음집은 학계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이본이 방언으로 기록된 경우가 많아 그 당시의 언어사전을 구축해 어휘 연구에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이본 간의 비교를 통해 판소리의 계보를 세울 수 있으며, 구비문학과 기록문학의 관계, 중세 국어에서 근대 국어에 이르는 표기 체계 연구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김 교수는 “판소리 문학 이본들을 살펴보면 작가와 명창들의 지향의식이 드러나는데, 이를 통해 조선 시대 상층과 하층 계급의 사회문화적 지향 의식이 어떻게 교류됐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조선 후기 신재효가 분류한 『춘향가』의 이본 중에는 성인 남성이 부르는 남창에는 양반 윤리가 녹아있지만, 아동이 부르는 동창의 경우 서민의 재기발랄함이 강조됐다. 또 그는 “판소리는 문학이 소리와 무용을 만난 장르인 만큼 문학과 언어학 연구 외에 국악, 고전 무용 연구에도 이본 자료를 활용할 수 있다”며 “이 책이 당시의 언어ㆍ문화ㆍ예술사 연구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대 언어ㆍ문화ㆍ예술사 연구에 밑거름 될 수 있어

10여 년에 가까운 준비 기간 동안 어려움도 많았다고 한다. 김 교수는 “누가 이본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전국 어디든 찾아가서 자료를 열람하고 복사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며 “대부분의 경우 연구 취지를 이해하고 협조했지만 거절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특히 필사본의 경우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소장자가 소장본의 가치가 떨어질 것을 염려해 협조를 거절하거나 고액의 사례금을 요구해 포기한 적도 있다고 한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김 교수는 “책으로 발간된 자료 외에도 아직 구하지 못한 자료들이 있다”며 추가 자료를 모아 발간하겠다고 말했다. 또 그는 지난해에 학술 진흥원의 연구 프로젝트로 선정된 ‘판소리 언어사전’을 구축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판소리 문학 이본 자료에서 추출한 어휘를 분야별로 정리하는 이 작업 역시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지만 김 교수는 “다양한 영역을 포괄하는 문화 사전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연구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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