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총학생회(총학) 선거가 18년 만에 연장투표 없이 성사됐다. 학생회에 대한 무관심이 점차 일상화돼가는 오늘날 학생사회에서 이러한 관심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당선 이후 총학생회장단은 당선사를 통해 “주어진 책임감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렇듯 높은 관심을 업고 출발한 제58대 총학이 그 임기를 마무리한 지금, 『대학신문』은 지난 1년간 총학의 활동을 되돌아봤다.

제58대 총학의 공약, 얼마나 지켜졌나

「디테일」 1기는 2014년 ‘당신을 위한 구체적 약속’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출발했다. 여기서 출발하는 「디테일」의 기본 철학은 삶을 바꾸는 정책과 사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총학의 필요성을 높이겠다는 것이었다. 제58대 총학을 구성한 「디테일」 3기 역시 그 연장선에서 다양한 생활 밀착형 복지 공약을 제시했다.

◇복지 공약=광역셔틀버스 사업의 경우 작년의 시행착오를 거쳐 올해는 안정적으로 운영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용인-분당 노선을 이용 중인 김지수 씨(전기정보공학부‧16)는 “대중교통 이용 시 한시간 반 이상을 서서 와야 한다”며 “광역셔틀이 이른 시간에 운영되기는 하지만 편하게 등교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전했다. 김민석 부총학생회장(정치외교학부‧14)은 “현재 광역셔틀 관리를 본부에 이관하고 무료화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공약으로 제시된 직후부터 논란이 됐던 전도 규제 공약의 경우 비록 외부인들의 전도에 대한 방안을 마련하지는 못했지만 학내 종교 단체와의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자진 개선을 약속받아 절반의 성과를 남겼다.

한편 이행되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 공약도 다수였다. 301동 편의점 24시간 개방과 83동 연장 개방 공약의 경우 제52차 교육환경개선협의회(교개협)에 안건으로 제출했으나 올해 교개협이 열리지 못하면서 논의가 중단됐다. 이상목 씨(컴퓨터공학부‧16)는 “302동에서 열리는 전공 수업이 11시에 끝나는 등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며 “윗공대 주변에 편의 시설이 부족해 편의점 연장 개방을 기대했는데 이뤄지지 않아 아쉽다”고 전했다. 또 5515번과 750번 버스의 교내 진입 공약 역시 이행되지 못했다. 김보미 총학생회장(소비자아동학부‧12)은 “서울시와의 논의 결과 앞으로 환경을 위해 버스를 줄이는 정책 방향을 가지고 있다고 해 경전철을 비롯한 전반적인 교통 문제 해결로 노선을 바꿨다”고 전했다.

◇다양성=「디테일」 3기에서 이전 「디테일」에 비해 두드러지는 특징은 다양성에 대한 강조다. 제58대 총학은 ‘다양성을 위한 하나의 움직임’이라는 슬로건 아래 인권과 다양성에 대한 활동을 지속해왔다. 인권 가이드라인의 경우 3월부터 관련 토론회를 열고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추진됐으며 지난 9월 전학대회에서 학생 사회의 최종안이 인준됐다. 그 위상과 구체적인 적용 방안은 앞으로 인권센터 및 본부와 논의를 거쳐 결정될 예정이다. 김보미 총학생회장은 가장 의미 있는 공약으로 인권 가이드라인을 꼽으며 “지켜져야 할 권리에 대한 구성원들의 합의”라는 의미를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제정 과정에서 공론화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백예진 씨는 “가이드라인의 가치에는 공감하나 구성원으로서 그 과정에 공론화가 충분했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공약 사업은 아니지만 지난해 9월 발족한 총학 산하기구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학소위)의 활동 역시 두드러졌다. 학소위는 지난 6월 ‘샤:인 진상조사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9월 논란이 됐던 면접과 수습 교육 기간 동안의 인권 침해 사건을 일단락 지었다. 또 7월에는 인문대 단체카톡방 성폭력을 고발하며 학생 사회에 일상화된 성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던졌다. 그러나 학소위 위원장이 개인 SNS에 남성과 특정 계층을 비하하는 단어가 포함된 게시글을 올려 거센 비판을 받고 사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총학은 학소위가 산하 기구로서 인적 검증 과정이나 전문성이 결여돼있다고 판단해 학소위 운영을 잠정 중단하고 세칙을 정비하는 등 재정비 단계를 거쳤으나, 해당 사태는 지속적으로 총학에 대한 논란을 야기했다.

◇거버넌스=학생 복지를 전면에 내세운 「디테일」은 장기적 비전과 구조적 문제 해결에 대한 노력이 부족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김민석 부총학생회장은 지난해 선거운동 기간 제57대 총학을 두고 “총학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과 신뢰를 회복하는 데 중점을 두다 보니 학내 자치활동과 거버넌스에 집중하지 못했다”고 평가하며 “이제 회복된 신뢰를 기반으로 학내 민주주의를 활성화할 때”라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올해 총학은 거버넌스 구조 개선을 이뤄냈을까?

제58대 총학은 거버넌스 분야에 ‘발전기금 break’와 재경위원회를 비롯한 학교운영기구에의 학생 참여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기부금과 발전기금 자산 운용 수익으로 이뤄지는 발전기금은 서울대 예산의 10%가량을 차지하나 법인회계와 달리 사용 내역이 공개되지 않는다. 이를 투명히 밝힐 것을 요구한 것이 2014년 「디테일」 1기가 시작한 ‘발전기금 break’ 사업이다. 그러나 발전기금은 기부자의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관련 정보는 공개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해 올해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학교운영기구에 학생 참여를 확대하고자 하는 시도 역시 좌절됐다. 서울대의 정책은 재경위원회, 학사운영위원회, 평의원회를 비롯한 심의위원회를 거쳐 이사회에서 최종 의결되지만 이러한 과정에 학생들은 평의원회 ‘참관권’만을 가질 뿐이다. 제58대 총학생회의 정책자료집에는 “성낙인 총장이 2014년 재경위원회에 학생 참여를 약속했다”며 “타 국립대에는 보장돼있는 학생들의 운영기구 참여권한을 확보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시흥캠퍼스 사안에 대한 대응으로 인해 본부와의 협상이 사실상 어려워져 관련 논의는 진척되지 못했다.

시흥캠을 통해 바라본 「디테일」

올해 서울대의 핵심 이슈는 단연 시흥캠퍼스였다. 현재 총학은 전체학생총회(총회)에서 의결된 ‘실시협약 전면 철회’라는 기조 아래 본부 점거를 진행중이다. 그러나 이에 이르기까지 학생 사회의 내홍은 끊이지 않았으며, 결국 실시협약 체결을 저지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총학이 학생 사회의 구심점이기에 이러한 아쉬움은 총학의 역할과, 시흥캠퍼스 논의가 진행된 뒤 3년간 총학을 구성해온 「디테일」의 활동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2013년 천막 투쟁과 삭발 등의 격렬한 저항을 불러왔던 시흥캠퍼스 이슈는 2016년에 이르러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2014년 「디테일」 1기는 총학생회장단 사퇴와 총학 해체라는 초유의 사태로 신뢰를 무너뜨렸고, 이듬해 제57대 총학을 구성한 「디테일」 2기는 신뢰 복구를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이듬해 「디테일」 3기를 다시금 집권시키는 등 신뢰 회복에 성공했지만 그 기간 동안 시흥캠퍼스를 의제화하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총학이 지난 6월 배포한 꼬마자료집의 2015년 ‘학생사회의 대응’ 항목에는 어떤 것도 명시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첫 대화협의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대학원 총학생회 산하 시흥캠퍼스 전문 위원으로 참여해온 김두현 씨(행정대학원 석사과정‧12)는 ‘본부의 불통 행정으로 시흥캠퍼스 정책이 표류했더라도 총학의 공론화 노력 부족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비판했다.

올해 5월 임시 전학대회에서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전면 저지를 위한 결의안이 의결됐으나, 총학이 이를 적극적으로 외친 것은 7월 임시 전학대회 이후다. 그 사이의 기간 동안 총학은 자료집을 발간해 공론화를 진행하고, 토론회와 총조사를 실시하며 ‘총의 결집’을 위해 활동했다. 당시의 행보에는 ‘전면 철회가 총의라고 보기에는 학생들의 관심과 공감대가 부족하다’는 판단이 강하게 작용했다.

이에 대해 총학은 학생 사회와 본부 모두로부터 비판받았다. 사회대 단과대운영위원회는 당시 상황을 두고 “전학대회 결의안 이행에 대한 책임감이 있는지 의구심이 들 따름”이라며 “실시협약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본부는 4월까지 시흥캠퍼스 추진위원회 참여를 두고 논의를 이어왔던 총학이 5월에 입장을 뒤집은 것을 지적했다. 기획과는 “추진위원회 참여는 시흥캠퍼스 추진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갑작스럽게 합의 내용을 거스르는 총학에 신뢰를 갖기 어렵다”고 전했다. 대부분의 학생 뿐 아니라 본부까지도 총학의 입장이 어떤 것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 두달간 지속된 것이다. 7월 임시 전학대회 이후 본격적인 실시협약 반대 행동이 진행됐으나 결국 8월 22일 실시협약이 기습 체결됐다. 김두현 씨는 “실시협약 직전 총학의 안이한 대응으로 인해 실시협약을 사전에 차단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디테일」 3기는 학생사회의 최상위 의결기구인 총회를 성사시켜 시흥캠퍼스 대응에 한 획을 그었다. 10월의 총회는 일련의 사건에도 불구하고 2,000여 명 이상의 참여로 성사돼 시흥캠퍼스에 대한 학생 사회의 우려가 단순히 일부의 주장이 아님을 강력하게 드러냈다. 이어진 본부 점거는 본부에 강한 압박으로 작용했다. 여전히 논의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기는 하지만 본부의 태도는 이전보다 다소 진전돼 간담회를 개최하거나 메일을 보내 소통 의지를 전하는 한편 서울대 포털 마이스누 홈페이지에 시흥캠퍼스 관련 자료를 게시하기도 했다.

앞으로의 총학은?

시흥캠퍼스 대응 과정은 학생의 관심과 지지 없이는 총학이 본부에 대해 힘 있는 주장을 펼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줬다. 또한 현재와 같이 학생들이 학교의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기 어려운 구조가 얼마나 학생들을 배제할 수 있는지가 명백히 드러났다. 이는 총학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기도 한다.

디테일의 복지 중심 정책은 ‘총학은 주민센터가 아니다’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대해 주무열 제57대 총학생회장(물리천문학부·04)은 총학과 학생의 단절을 지적하며 “다양한 복지 정책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생활에 밀접한 영역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학생들의 문제의식을 확대하기 위한 단계”라 답한 바 있다. 하지만 과연 「디테일」의 복지 공약이 학생 자치의 회복과 거버넌스 구조 개선으로 이어졌을까.

10월의 총회 성사와 지난주 단과대 선거에서의 높은 투표율은 학생 자치의 힘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로 보인다. 그러나 전학대회는 여전히 대의원의 불참으로 개최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며, 지난 6월의 총조사를 비롯해 의견 수렴을 위한 총학의 노력 역시 관심 부족으로 인해 타당성을 갖추지 못하곤 했다. 본부 점거를 이어나갈 동력이 사그러들고 있다는 점 역시 지적된다. 거버넌스 구조 개선은 더욱 미미했다. 법인화 이후 학생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공식적으로 참여할 방법은 평의원회 참관, 등록금심의위원회, 교육개선협의회 정도로 여전히 매우 간접적이다. 즉 디테일은 총학과 학생의 거리를 좁히는 데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으나 여전히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이다.

올해를 끝으로 「디테일」은 3년의 집권을 마무리했으나 학생 복지는 앞으로도 총학의 정책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총학이 학생과 유리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은 필요하며, 예비군 문제나 공간 확보 문제 등 학생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으면서도 총학이 아니면 해결에 나서기 어려운 문제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생활 밀착형 복지 공약이 단순히 인기영합주의 수준에 그친다면 시흥캠퍼스와 같은 일은 다시금 발생할 것이다. 학생들의 관심을 유지하면서도 구조적인 개선을 이뤄야 한다는 것은 차기 총학에 주어진 막중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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