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편집장

“국정 혼란 끼쳐 유감” “대통령 수사 연기 유감” “계엄령 발언 유감” “소통 부족 안타깝게 생각하며 유감” 대통령, 청와대, 여당과 야당 대표, 유력 대권주자, 대기업 총수에 우리 총장님까지 너도 나도 유감이란다. 그런데 이분들, 알고 계신지 모르겠다. 지금 우리가 당신들보다 더더욱 유감이라는 거. 가수 조피디도 이 흐름을 타고 ‘시대유감2016’이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도둑놈이 숨지 않고 떵떵거린 세상, 착한 사람 바보 만드는 세상.” 그렇다. 그야말로 온 국민이 유감스러운, 지금 대한민국은 시대유감이다.

20년 전도 지금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나보다. ‘시대유감’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발표한 것은 사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처음이었다. 1994년 발표한 4집 앨범의 5번 트랙. 그런데 들어보면 가사가 없다. 멜로디만 나오는 연주곡이다. 심의에서 부적절한 가사가 문제가 된 것이다. 가사 수정을 거부한 서태지와 아이들은 아예 가사를 전부 지워버렸고, 우여곡절 끝에 ‘진짜’ 시대유감은 2년 뒤인 1996년, 심의가 풀리고 나서야 세상에 나왔다. 이 곡에서 서태지는 저항의 아이콘답게 “얼굴 가죽은 꿈틀거리”며 “예쁜 인형을 들고 거리를 헤매”는, 겉만 번지르르한 기득권층의 거짓된 가식과 그들 중심의 사회를 폭로한다. 이어진 가사의 후렴구는 이렇다.

 

왜 기다려왔잖아 모든 삶을 포기하는 소리를

/ 이 세상이 모두 미쳐버릴 일이 벌어질 것 같네

바로 오늘이 두 개의 달이 떠오르는 밤이야

/ 네 가슴에 맺힌 한을 풀 수 있기를 오늘이야

 

아, 서태지는 진짜 대통령이었다. 두 개의 달이 떠오르는 비현실적 이상을 꿈꿨다니. 슬프게도 그가 말한 오늘이 오기는커녕 ‘유감’이라는 이 명쾌하지 않은 단어처럼, 모든 문제의 끝은 종국에는 우리가 바라는 어떤 결과로도 귀결되지 못할 것이다. 지난 20년을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다. 그동안 뭐 하나 제대로 바뀐 게 있는가.

국정 농단에 관련된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침묵해왔던, 지금도 숨어있는 그들은 언제나 그랬듯 앞으로도 잘 먹고 잘 살 것이다. 정말 이 일에 책임이 있는 부패한 정치인들과 아직도 봐주기식 수사로 일관하는 검찰, 정치공학적 보도에 열중하는 공영방송과 보수언론은 우리를 옥죄는 지배계층으로 계속해서 군림할 것이다.

시흥캠퍼스는 법인화와 마찬가지로, 학생들의 반대에도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다. 처음에는 본부가 약속한대로 그냥 기숙사로 시작해서, 교양 수업 몇 개가 열린 뒤 점차 RC로 변모할 것이다. 이 모든 문제의 근본에 있는 학내 거버넌스 개선 논의는 일괄 중지 상태다. 학생 참여 보장 요구는 언제나 그랬듯 흐지부지될 것이다. 이놈의 부조리한 현실, 아마 바뀌지 않을 것이다. 답답하다.

어렸을 적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누구나 순수했던 시절, 치기 넘치는 그 때를 지나 이 세계를 이해하게 되면 그 꿈은 꺾인다. 부조리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달이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하늘에 떠오르는 달이다. 불변의 진리다. 기적은 없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이 부조리한 세계에서 두 개의 달이 매주 토요일마다 뜨고 있다는 것을. 언제나처럼 변하지 않는 하늘의 달 반대편, 사람들이 들어 올린 촛불의 달 하나가 광장에 뜬다.

누구의 말마따나 촛불은 다시 꺼질 것이다. 우리가 밝힌 또 하나의 달은 반대편의 달을 없애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은 구조니까. 세계니까. 다만 내가 기억하는 백만 개의 촛불은 하늘의 달보다 밝았다. 다만 내가 기억하는 학생들의 외침이 본부에 걸린 빗장보다 단단했다.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도 두 개의 달이 뜰 수 있다는, 그리고 분명히 떴었다는 사실만은 잊지 않겠다. 체념하지 않겠다.

산의 정상을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행복한 시지프스를 마음에 그려보지 않으면 안 된다.

까뮈도 『시지프스 신화』(1942)의 마지막을 이렇게 썼다. 시대유감, 그 달 아래에 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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