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철
심리학과 교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서울대생들에게는 비장한 축하가 건네지기 마련이지만, 최고의 축하는 토를 달지 않는 축하입니다. “축하해. 이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일했으면 좋겠어!” “축하해. 그러나 너와의 경쟁에서 진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기억해.” 이런 축하는 우리 사회의 강박주의와 엄숙주의의 산물일지 모릅니다. 모든 것을 제쳐두고 그저 축하할 뿐입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오직 생계의 수단으로만 여겨지는 삶은 고통입니다. 삶에 의미를 제공해주고 자신의 정체성을 세워주는 일을 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서울대 출신에게 부여된 ‘가짜 욕망’에 휘둘리지 않아야 합니다. 작가 루이스 스티븐슨의 말처럼 세상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들을 힘없이 아멘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영혼을 살아 숨 쉬게 합니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용기를 가지십시오.

때로는 세상을 역주행하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최연소 합격, 초고속 승진, 억대 연봉이 유혹하는 속도와 효율성과 물욕의 세계로부터 고의로 낙오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때로는 낮잠도 잘 줄 알고, 종일 빈둥거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위를 통해서 세상의 속도에 맞서 보기를 권합니다. 느림과 무위야말로 세상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수단입니다.

대충 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최고가 되십시오. 마음껏 물욕을 품어보십시오. 인생의 선배들이 들려주는 지혜의 이야기를 패배자의 자기 합리화나 나이의 흔적 정도로 걷어차 버려도 좋습니다.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날부터 우리는 늙기 시작한다’는 말을 무기 삼아, 후회할지언정 저지르겠다는 오기로 부딪혀 보십시오. 싸우고, 쟁취하고, 누리고, 축적하고, 만취하고, 소비하십시오.

그러나 어느 날,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거든, 머뭇거리지 말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 그 즉시 방향을 바꿔 자발적 빈곤과 느림의 세계로 귀화하기를 바랍니다. 흰밥과 가재미와 자신을 친구 삼은 시인 백석처럼 소박한 밥상을 훈장 삼고, 소유보다는 경험, 소비보다는 나눔, 물질보다는 내면에 신경 쓰는 삶을 사십시오. 그런 기적 같은 날이 너무 늦기 전에 여러분의 삶에 찾아오기를 기원합니다.

솔직히, 여러분이 평생 책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지성인’ ‘지식인’이라는 이름이 때로 폭력적일 수 있음을 알기에, 지성인에게 걸맞은 삶을 살라고 훈계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우리 모두가 지적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지적이라 함은 좋은 대학을 나왔거나 많은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지적이라 함은 닫힌 마음을 거부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일상적 소재들, 당장 먹고 사는 문제들, 나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면 아예 관심조차 갖지 않는 닫힌 마음, 그런 마음을 거부하는 삶이 지적인 삶입니다. 이를 위해서 책 읽기만 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와타나베 쇼이치는 지적 생활을 원한다면 ‘책을 사라’고 권장합니다. 사랑 없이 줄 수 있어도 주는 것 없이 사랑할 수 없듯이, 지적이지 않아도 책을 살 수는 있지만, 책을 사지 않고 지적일 수는 없습니다. 돈을 버는 대로 책을 사십시오.

규칙적으로 운동하십시오. 똑똑한 사람은 운동을 못 한다는 나쁜 고정관념을 방패 삼아 자신의 몸을 방기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길 바랍니다. 몸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시인 문태준의 표현처럼 몸을 굽히지 않는다면 발견되지 않는 것이 인생입니다. 서울대 출신이라는 오만을 벗고, 몸을 굽혀서 애정 어린 눈으로 세상을 들여다보십시오.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경이로움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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