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준
전기정보공학부 15

졸업을 축하해요. 서울대학교에서의 시간이 더없이 행복했기를. 드넓은 바다를 항해하게 될 그대가, 수만 번 캄캄한 파도 속에서 미아가 된 기분을 느껴도, 다시금 항성들로 가득한 풍요로운 하늘을 보며 방향을 잡을 수 있길. 행복한 일을 기뻐하며, 같이 즐거워해요. 다시 한번, 그대의 서울대학교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서울대학교에서의 삶은 어땠나요? 합격을 확인하고 소중한 사람들과 누구보다도 기뻐하던 기억. 새내기 대학, 신입생 환영회 등에서 처음으로 선배님들과 동기들을 만나며 대학 생활에 대한 설렘을 부풀려 오색 빛 풍선을 하늘로 띄웠던 기억. 새내기 새로배움터에서 말도 안 될 정도로 발그레해진 볼과, 그만큼 발그레해진 언어로 우정을 쌓던 기억. 고등학교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넓은 캠퍼스에서 정신없이 건물들 사이를 방랑했던 기억. 과 친구들과 함께 처음 보는 이성 친구들을 만나 담소를 나누면서 설레고, 아쉬워했던 기억. 고등학교 때는 상상도 못 했던, 수업을 결석하고 버들골에서 막걸리에 만취해, 왠지 모르게 하늘이 더 파랗게 보이고, 한낮의 태양이 더 하얗게 보였던 기억. 중, 고등학교 때부터 하고 싶었지만, 대학 진학을 위해 감춰둬야 했던 당신의 끼와 재능을 동아리 활동으로 마음껏 발산했던 기억.

도서관, 혹은 과방에서 밤새도록 과제를 하며 데자와 한 캔으로 학업의 괴로움을 달랬던 기억. 학기를 마무리하며 자신의 성취에 뿌듯해하거나, 혹은 자신의 노력 부족을 책망하며 어찌 됐든 마무리를 기념하는 의미로 친구들과 서울대입구역에서, 녹두거리에서, 낙성대에서 소주를 들이켰던 기억. 방학에 유럽이니, 일본이니, 여행을 계획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느끼며 여권을 준비하고 항공편을 예매했던 기억. 그리고 그렇게 준비한 만큼 이국에서의 밤하늘과 낯선 사람들, 낯선 건물들을 보며 서울에서의 자신을 되돌아봤던 기억. 또는 그런 친구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컴퓨터 모니터와 휴대폰만을 응시하며 왠지 모르게 울적해하고, 외로워했던 기억.

어느덧 해가 지나고, 선배의 입장에서 새내기들을 맞이하며 지금까지의 당신의 삶을 회상했던 기억. 조언을 나눠주면서 보람에 가득 찼던 기억. 부조리한 세상에 분노하며 도서관을 뛰쳐나와 거리로 행진했던 기억.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까? 종이에 끊임없이 무언가를 적으며 새벽 공기가 유달리 탁하게 느껴졌던 기억. 동기들과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세상을 바라봤던 기억. 심장이 부서질 정도로 크게 뛰었던 첫사랑의 기억. 그리고 그만큼 아팠던, 캠퍼스 내의 어디에도 부착되지 못하고 수면 위에 붕붕, 어디로도 나아가지 못하고 붕붕 떠 있던 실연의 기억. 그리고 그것을 위로해주던 친구들과 치킨과 맥주를 곁들이며, 훌쩍거리며 아프지 않은 미래를 약속했던 기억. 한없이 차가운 관악의 겨울 공기에 마음까지 얼어버렸던 기억. 대학에 들어올 때는 까마득한 미래의 일인 줄만 알았던 취업이니, 대학원이니 이곳저곳 바쁘게 뛰어다니고, 거울을 보며 자기소개서에 자신의 20대를 담던 기억.

이 모든 것들이, 그대의 눈망울을 통해서 선히 보여요. 그대는 이제 이곳을 떠나서, 더 넓은 곳으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려 하네요. 당신은 어디로 가게 될까요? 도서관에 앉은 저는 볼 수 없는 구름 저편으로 헤엄쳐 나아가게 될까요? 행복한 대륙을 마주치게 돼 영원을 약속하게 될까요. 미리 축하해요. 더욱 찬란한 미래를 맞이하게 될, 가슴 속 한구석에 서울대학교를 간직한 그대.

그대가 어디로 향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대가 무엇을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대는 가끔씩 이유를 모를 수도 있지만, 그대는 때때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수도 있지만, 그대에게 부탁할 것이 하나 있어요.

그대 마음속 한구석에, 서울대학교라는 작은 섬 하나를 만들어 줄래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면서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가끔씩 찾아와서 쉴 수 있는, 가끔 세상이 무너질 때마다 노를 저어 찾아올 수 있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보이는 작은 섬. 스무 살의 그대와 스물한 살의 그대, 설레는 첫 단체복을 입은 그대와 어설픈 정장을 입은 그대가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다 함께 춤을 추는 작은 섬을 만들어 주세요. 반딧불이와 온갖 새가 날아들어 청춘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그대의 마음속 무인도(舞人島)에서, 가끔씩 세상의 끝으로 향해 가는 기분을 느낄 때마다 온갖 근심 걱정을 잊고 춤을 춰 주세요. 가끔씩 잊곤 했던, 언젠가는 자식들에게 허풍을 이만큼 섞어서 자랑할, 거짓말 치지 말라며 손사래 칠, 그래도 한 번쯤은 호호 불어 닦아내어 누구보다도 빛내고 싶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청춘의 그대와 함께.

 

당신이 더욱 행복하길 바랄게요.

행복한 일을 기뻐하며, 같이 즐거워해요.

다시 한번,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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