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에 나왔다고 지나치기엔 아쉬운 책들

인간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욕망’하며 ‘비애’를 느끼고, 이 감정의 ‘역사’를 ‘예술’로 표현해내고, 결국에는 ‘죽음’을 맞이한다. 이러한 흐름의 생애는 오래전부터 많은 예술가들에 의해 다뤄졌고 그 결과 그림, 문학, 조각 등 다양한 종류의 작품이 만들어졌다. 미술평론가 이진숙의 『롤리타는 없다』는 예술가들의 고민이 담긴 작품 속에서 사람들의 인생을 풀어낸다. 사랑, 욕망, 비애 등의 감정은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수 없다. 인간의 감정이란 같은 이름으로 분류된다 할지라도 다양한 갈래를 가지기 마련이다.

이 불명확한 감정 중 사랑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격정적으로 불타오르는 ‘진정한 사랑’과 오랫동안 은은히 타오르는 모닥불 같은 ‘지속적인 사랑’ 사이 다양한 사랑의 감정을 여러 갈래로 나눠 설명한다. 전혀 달라 보이는 사랑의 양끝 사이에서도 교차점은 생긴다. 그리고 교차점에 선 사랑은 인간의 선택에 따라 또 다른 사랑으로 나아간다.

서로 다른 사랑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톨스토이 『안나 카레리나』의 안나와 루소 『신 엘로이즈』의 쥘리가 보여준다. 안나는 고관대작의 부인, 쥘리는 귀족의 딸로 모두 고귀한 신분의 여성이지만 자신보다 직위가 낮은 남성과 사랑에 빠진다. 사랑을 이루기 위해 안나는 남편과 이혼하고, 쥘리는 남편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다. 그 후 그들은 모두 도시에서 한적한 시골 마을로 내려간다. 그러나 안나는 시골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시에서의 화려한 사교계 생활을 이어간다. 이미 사교계에서 쫓겨난 안나는 기댈 곳이 사랑밖에 없었고, 이는 과도한 집착으로 이어져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반면 쥘리는 시골생활에 적응해, 소박하고 평등한 삶을 살며 안정적인 사랑을 한다. 교차점에서 다른 선택을 한 안나와 쥘리는 상이한 사랑의 결과를 내놓는다. 저자는 이를 통해 독자가 자신의 사랑을 되돌아보게 하고, 교차점에서 선택할 수 있게 돕는다.

욕망에 대해서도 저자는 다양한 갈래를 이야기하며 그 예시로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제시한다. 나보코프는 의붓아버지인 험버트 험버트의 어긋난 욕망에 억압된 어린 소녀 롤리타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롤리타는 아저씨가 자신을 강간했다고 말하며 밤마다 흐느껴 운다. 독자들은 험버트의 우아하고 지적인 언어에 매료돼 자칫 그의 욕망을 진정한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저자는 롤리타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이러한 비정상적인 욕망은 사랑이 될 수 없다고 말하며, 사랑이라는 그럴듯한 말에 숨겨진 추악한 욕망을 독자들이 되돌아보도록 만든다. 험버트를 사랑한, 순종적이면서도 발칙한 소녀로서의 롤리타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의도가 롤리타 코드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님을 감안하면 책의 제목이 내용을 아우르지는 못하고 있다. 그 동안 롤리타 코드를 연상시키는 노래, 화보 등에 대한 문제제기는 꾸준히 돼왔다. 동시에 아직 미성숙한 소녀를 성적 대상으로 보는 비정상적인 성애에 대한 논의도 확장돼왔다. 『롤리타는 없다』라는 제목으로 인해 이 책은 자칫 롤리타 콤플렉스에 대한 논쟁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현 상황에 대한 책으로 보일 수 있으며, 독자들이 저자의 의도와는 다른 전제를 상정하고 책을 읽을 가능성을 남긴다.

살아가면서 인간은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고, 늘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며 선택해야 할 것은 늘어나고, 그에 대한 답은 모호해진다. 저자는 그 답을 인문학에서 찾는다. 그는 오래전부터 이어진 삶의 고민에 대한 예술가들의 다양한 답을 제시하며 각자의 삶에 대한 고민의 깊이와 선택의 폭을 확장시킨다. 롤리타는 없고, 삶의 정답 또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찾은 답을 믿고 삶을 사랑하기를, 저자는 소망한다.

롤리타는 없다 1·2
이진숙
민음사 272쪽, 292쪽
각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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