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띄는 문학 신간
눈에 띄는 문학 신간
  • 이경인 학술부장
  • 승인 2017.03.05 0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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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호위
조해진
창비 268쪽
12,000원

이런 힌트들은 좀더 시간이 흐른 뒤에야 눈 쌓인 운동장에 띄엄띄엄 새겨진 발자국처럼 한걸음씩 천천히 내게로 왔다. - 「빛의 호위」 중

 

기록되지 못한 과거란 쉽게 흐릿해지며 종국에는 지워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기억들이 사소하기에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너무도 당연하다 생각됐기에 미처 기록되지 못한 기억들이 존재하고, 어떤 기억들은 너무도 아팠기에 의도적으로 은폐됐을 것이다. 조해진의 소설들은 이 희미해진 기억을 선명하게 복원한다. 그녀의 세 번째 소설집인 『빛의 호위』 역시 마찬가지다. 때로는 위로의 실마리가 되기도, 때로는 고통스러운 진실이 되기도 하는 과거의 순간을 맞이하면서 동요하는 인물들 사이로 우리들 모두의 삶이 겹쳐 보인다.

 

분명한 사건
오규원
문학과지성  92쪽
8,000원

 

언어는, 의식의 / 먼 강변에서 / 출렁이는 물결 소리로 / 차츰 확대되는 / 공간이다. - 「현상실험」 중

 

오규원 시인 타계 10주기를 기리기 위해 46년 만에 그의 첫 시집 『분명한 사건』이 복간됐다. 관념과 인식을 날것 그대로의 상태로 해방시킬 것을 주장하며 이를 시적 언어로 구현하는 데 지대한 관심을 쏟았던 시인의 자의식을 시집에 담긴 작품 하나하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적 언어를 시인 개인의 감상을 전달하는 수단 정도로만 생각하는 한국 현대시단의 흐름에 반발하며 언어를 그 자체로 실존하는 것으로 여긴 그의 문제의식은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독자들은 기존의 시적 문법이 무너지는 현장을 직접 목도하게 된다.

 

서배스천 나이트의 진짜 인생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송은주 옮김
문학동네 256쪽
13,500원

 

“불쌍한 나이트! 그에게는 두 시기가 있었는데, 첫 시기에는 엉터리 영어를 쓰는 멍청이였고 두 번째 시기에는 멍청한 영어를 쓰는 엉터리였지.”

 

『롤리타』로 유명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미국으로 망명한 이후 영어로 쓴 첫 작품인 『서배스천 나이트의 진짜 인생』이 번역 출간됐다. 서배스천 나이트라는 별 볼일 없는 작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그 일대기를 작성하는 ‘나’의 이야기이기도 한 이 작품은 사실적인 설명과 묘사로 허구와 사실 사이를 오가는 혼란스러운 게임을 선사한다. 망명작가로서의 나보코프 자신이 짙게 투영된 서배스천의 삶은 나보코프가 본인의 운명에 느낀 절망감을 절절하게 보여준다. 더불어 일대기 작가인 ‘나’의 이야기를 통해서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치열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프루스트
사무엘 베케트
유예진 옮김
워크룸프레스 112쪽
14,000원

 

프루스트에게 문학적 행위인 ‘책’은 주부에게는 가계부이자, 여왕에게는 알현한 자들의 명부이다.

 

극작가로 더 잘 알려진 사무엘 베케트의 문학 평론인 『프루스트』가 번역 출간됐다. 개인으로서의 프루스트를 전적으로 배제하겠다는 다소 과격하고 엉뚱한 서문으로 시작되는 이 글은 형식적인 글로서의 평론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끊어짐 없이 적어 내려간 수필에 가깝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작품에 주목하는 일관된 논리 아래 베케트는 오히려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복잡한 서사 전개를 새롭게 재배치하며 작품의 뒤에 숨겨져 있던 내적인 구조를 파악해내는 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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