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국책연구기관 주최 ‘제13회 인구포럼’에서 제시된 저출산 대책이 논란이다. 선임연구위원인 원종욱 연구원은 “고학력·고소득 여성이 소득과 학력수준이 낮은 남성과도 결혼을 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면 유배우율을 상승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구보고서에서 그는 “(여성의 하향선택결혼이) 이뤄지지 않는 사회관습·규범을 바꿀 수 있는 문화콘텐츠 개발이 이뤄져야”하며 “이는 대중에게 무해한 음모 수준으로 은밀히 진행돼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이는 고학력·고소득 여성들의 선택권을 배제하고 출산·육아를 위한 도구로 여길뿐더러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대책이라는 지적이 거세다.

정부가 내놓은 출산율·육아 정책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12월 행정자치부가 내놓은 ‘가임기여성지도’는 사이트를 공개하자마자 뜨거운 논란에 휩싸이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결국 공개 하루만에 사이트가 폐쇄됐다. 전국의 가임기 여성(20~24세) 현황을 보여주고 가임기 여성 수에 따른 전국 순위를 매긴 가임기여성지도는 여성을 ‘출산의 수단’으로 여기고 있음은 물론, 저출산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대표적인 출산율·육아 정책인 ‘일·가정양립정책’도 여성들의 실질적 근로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일·가정양립정책은 임신한 직원의 근로시간을 의무적으로 단축하거나 임신한 직원이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정책이다. 그러나 이 정책은 초과근로가 필수처럼 여겨지는 상황에서 초과근로를 하지 않는 여성의 경력계발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간과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초과근로시간이 많은 회사일수록 여성 관리자 비율이 낮았다. 일주일 당 초과근로 0시간 회사에서는 여성 관리직 비율이 14%지만 초과근로 24시간이 넘어가면 2%로 줄어든다. 초과근로시간이 늘어날수록 여성의 경력단절은 심해진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정책은 여성의 유리천장을 강화할 뿐, 여성이 출산과 육아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돕는 현실적인 대책이라고 할 수 없다.

출산율 저하를 타개할 근본적이고 현실적인 대책은 여성들의 선택권마저 박탈하는 것이 아닌, 이들의 육아부담과 경력단절에 대한 불안감을 덜어주는 것이다. 양육 책임은 여전히 여성에게 향해 있지만, ‘출산할 가능성이 있거나’ 출산 후 육아 중인 여성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여성 임금은 남성의 60% 수준이며, 비정규직 중 여성 비율은 54.9%에 이른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의무적으로 임산부 직원에게 출산휴가를 내줘야 하지만 이마저도 비정규직에는 적용되지 않으며, 상당수 기업이 이를 지키지 않으면서 퇴직을 강요하기도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출산 전후 휴가 사용자 중 22%는 1년 안에 회사를 그만뒀고, 육아휴직 사용자 4명 중 1명은 휴가가 끝나고 1주일 안에 퇴사했다. 이는 여성들의 현실적 삶을 고려하지 못한 정책은 근본적인 저출산 대책이 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저출산 문제가 국가적 과제로 떠오르며 대선 주자들은 앞다퉈 출산율·육아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대선 주자들이 여성들의 문제에 주목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과연 이런 대책들이 출산과 육아를 여성에게만 강요하는 것이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출산율·육아 정책을 수립할 때 여성의 존재가 지워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하루빨리 여성의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는 출산율·육아 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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