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물리학자 파인만씨, 강의도 잘 하시네

▲ © 강정호 기자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The Feynman Lectures on Physics)』는 물리학도라면 꼭 읽도록 권장되는 책이다. 이 책은 파인만(Richard Feynman)이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에서 신입생 180명을 대상으로 2년간(1961~63년) 기초물리학을 강의한 것을 녹취해 동료교수들이 편집한 것이다.


파인만은 1965년에 양자전기역학을 개척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으며, 젊어서는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하였고 만년에는 우주 왕복선 챌린저호의 폭발사고 원인을 밝혀내 아인슈타인만큼이나 천재성을 인정받은 이론 물리학자이다. 그는 매우 독창적이며 자유분방하여 과학자로는 드물게 과학적 연구 업적보다 특이한 기행으로 더 유명하다. 타악기 봉고를 잘 연주하는가 하면 열쇠 없이도 금고를 연다. 그의 기발하고 장난기 어린 일화들은 『파인만씨 농담도 잘 하시네』, 『남이야 뭐라 하건』 등의 책으로 국내에도 이미 소개되었다.

이 책의 초고라 할 수 있는 파인만의 강의는 ‘기존 교과과정에서는 학생들이 물리학에 대한 흥미를 잃고 있으니 물리학의 최신 조류를 포함하는 실험적 교과과정을 운영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책은 전체 3권으로 편집됐는데, 제1권은 역학을 중심으로 열역학 및 빛과 파동에 대해서 강의한 것이고, 제2권은 전자기학을 중심으로, 제3권은 양자역학을 중심으로 강의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에 번역되어 나온 책은 3권 중 제1권이며 모두 52개의 강의를 담고 있다.

파인만의 강의 주제는 물리학이지만 물리학만이 아니라 과학의 여러 분야들을 폭넓게, 깊이 꿰뚫어보고 있다. 이를테면 그는 광학을 가르치면서 시각의 메커니즘, 눈의 생리학, 동물과 곤충의 다양한 눈을 소개하며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일깨워준다. 인간의 눈은 뛰어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곤충의 눈은 어떤 면에서 인간의 눈보다 더 뛰어나다. 인간이 인식하는 빛의 파장대와 벌이 인식하는 빛의 파장대가 다르기 때문에 인간에게 모두 똑같이 하얗게 보이는 꽃도 벌의 겹눈으로는 제각기 다른 빛깔을 띤 꽃으로 구별되는 것이다. 또 인간의 눈은 1초에 20회 정도의 움직임을 식별할 수 있을 뿐이지만, 벌의 눈은 1초에 200~300회 일어나는 움직임도 판별할 수 있어서 벌이 움직임을 통해 의사 전달을 한다는 것이 실감난다. 우리 눈이 동영상으로 착각하는 영화나 텔레비전 화면이 벌에게는 느린 슬라이드 쇼에 불과한 셈이 된다.


파인만은 물리학의 대가답게 이 책에서 자연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밝혀내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짚어준다. 다만 책의 번역이 뒤늦게 이루어져 아쉬움이 남는 것이 흠이다. 그동안 해결된 문제도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초신성 폭발로 생긴 게성운의 빛이 편광돼 나타나는 원인이 파인만의 강의 당시에는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였지만, 성운의 중심에 별이 초신성으로 폭발한 후에 남은 별의 잔해가 중성자 덩어리가 돼 강한 자기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 한 예가 되겠다. 하지만 이런 예조차 그의 관심이 현대 과학 흐름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위로가 된다.
파인만의 강의는 열정적이고 단순 명쾌해서 일생에서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고 전해지지만, 당시에는 학생들이 수업 시간을 꺼려했고 시간이 갈수록 수강취소자가 급격히 늘어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의실은 여전히 만원이었는데, 대학원생들과 동료 교수들이 점점 더 많이 청강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다른 대학에서도 파인만의 강의록 요청이 쇄도해서 서둘러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다. 그 후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는 다시 개설된 적이 없으며, 출간된 책도 교재로 채택된 적이 없지만 지난 40년간 절판된 적이 없다고 한다.

이런 역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바로 파인만의 특유의 재능과 강의방법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파인만은 늘 새롭고 신선한 관점을 통해서 자연을 바라볼 줄 알았으며 자신의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데 뛰어났다. 파인만이 대학 1~2학년생들에게 물리학의 기본개념을 가르치기 위해 고안한 ‘파인만식 해석’이 오히려 동료 과학자나 교수들에게 새로운 아이디어와 더 많은 영감을 떠올려 주었던 것이다. 파인만은 뛰어난 교사 정도가 아니라 교사들의 위대한 교사였던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물리학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영감어린 파인만식 사고와 과학적 접근법을 싣고 있다. 파인만이 이 책의 강의를 하던 시기는 미국이 소련에게 인공위성 발사에 뒤쳐지면서 과학교육 쇄신에 골몰하던 때이기도 했다. 현재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현실도 이와 비슷하다. 고등학교에서는 대학을 가기 위한 공부에만 열중하고 정작 대학에서는 공부는 뒷전이고 대학생활을 즐기기에만 몰두하며, 그나마 힘들고 어려운 과학 공부를 회피하는 경향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근래에 파인만 관련 서적이 때 아닌 붐을 이루고 있는 것은 과학이 그만큼 위기이며 파인만과 같은 천재적이고 열정적인 과학 전도사를 원한다는 시대적 반영은 아닐까?

김충섭 교수(수원대ㆍ물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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