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홧발에 짓밟힌 무지개를 되찾기 위한 그들의 외침
군홧발에 짓밟힌 무지개를 되찾기 위한 그들의 외침
  • 이용진 기자
  • 승인 2017.05.14 06: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장스케치] 육군 성소수자 군인 색출 중단 촉구 촛불문화제

지난달 군 인권센터가 성소수자 군인을 색출하기 위한 육군의 함정 수사를 폭로하면서 큰 논란이 일었다. 군 인권센터에 따르면, 대위와 병사의 성관계 동영상의 유출로 촉발된 성소수자 수사는 육군참모총장의 지시에 따라 육군 내 전방위적으로 확대됐다. 육군 수사팀은 게이 데이트 애플리케이션에 위장 잠입해 성소수자 군인을 찾아내거나 동성애 피의자의 휴대폰을 반강제적으로 압수하는 등의 불법수사를 행했으며, 수사 과정에서 동성애 혐오적인 많은 발언을 쏟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지금까지도 매주 군 인권센터 주최로 군 내 성소수자 탄압을 규탄하는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어린이날 연휴를 앞둔 지난 4일, 연휴에 대한 기대와 설렘보다는 분노와 슬픔이 가득한 이들의 집회 현장을 『대학신문』이 다녀왔다.

◇곳곳에서 마주하는 혐오=서울 용산구 국방부 건물 앞 폴리스라인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제3차 ‘나도 잡아가라’ 촛불집회에 참석하고자 모여 있었다. 이날 집회는 성소수자 인권활동가에서부터 목사, 변호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발언과 공연으로 꾸려졌다.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의 활동가이며 교회의 아동시설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 중인 퐁퐁 씨(가명)는 자유발언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사회 곳곳에서 마주한 혐오와 차별을 이야기했다. 그는 “4주간의 훈련소 생활동안 동기들은 동성애는 정신병이라며 비난했고, 현재 근무하는 아동센터에서도 차별적인 발언을 많이 듣는다”며 상처를 고백했다. 그럼에도 그는 “병역판정검사에서 동성애가 성적 선호 장애로 분류돼있는 등 많은 성소수자 군인들이 차별과 혐오 속에 힘들어하고 있는데 혼자 그 지옥에서 빠져나온 것 같아 죄책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뒤이어 이번 사건을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난 군 내 성소수자 탄압에 대한 규탄의 발언이 이어졌다. 일부러 군복 차림을 하고 집회에 참석했다는 김민규 씨는 “성소수자들을 잠재적 성폭력범으로 여기며 색출하고 있는 국방부는 정작 여군을 상대로 한 성폭력에 대해서는 훨씬 미온적으로 수사하는 이중 잣대를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민규 씨는 “육군 수사 과정에서 수사관이 성소수자 군인들에게 ‘다시 정상적인 성적 취향으로 되돌아올 수 없냐’고 말하는 등의 폭언을 일삼았다”며 수사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더욱이 이번 육군 성소수자 색출 수사 과정에서 수사팀은 ‘항문성교 등의 동성애 행위를 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 군형법 92조 6항을 근거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조항은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침해적 요소가 있어 국내외적으로 폐지하라는 요구가 끊이지 않고 있으나 여전히 군 내 성소수자 탄압의 근거로 이용되고 있다. 민주노총 법률원의 김태욱 변호사는 “현재 군 내에서 성소수자들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장치도 매우 미약하지만, 현행법 하에서도 이번 A대위의 구속 수감은 사태의 심각성이나 도주의 우려 등 구속 사유에도 전혀 해당되지 않는 명백한 과잉 수사”라며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 청년의 열띤 발언에 피켓을 든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어올리며 공감하고 있다.

◇차별과 편견에도 굴하지 않는 이들의 노력=이와 같은 세상의 차별과 혐오에도 이들은 상처받고 슬퍼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고려대 성소수자동아리 ‘사랑과 사람’에서 활동 중인 차명현 씨는 자유발언에서 “이번 뉴스를 접한 뒤로 많이 힘들고 슬펐지만, 동아리에서 동성애자 친구들을 만나면서 울고만 있을 게 아니라 함께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며 활동에 나서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그는 현재 성소수자들과 비성소수자들의 공존을 도모하는 고려대 단체 ‘KUPA’에서 활동하며 관련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연서명을 받는 등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는 “학보사 이외에는 아무도 우리의 기자회견을 취재하러 오지 않았지만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 싸워나갈 것”이라고 외쳤다.

성소수자 문제가 비단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 인권의 문제라는 걸 방증하듯 이날 집회에는 수많은 비성소수자도 함께 촛불을 들고 연대에 나섰다. 자신을 비성소수자라고 밝힌 김도연 씨(31)는 “큰 힘이 되지 못하더라도 이들을 지지한다는 걸 표현하고자 이 자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운동가들 또한 연대발언에 나섰다. 양심적 병역거부운동을 하고 있는 ‘전쟁 없는 세상’의 이용섭 활동가는 “성소수자들의 이러한 활동들이 시간이 지나면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인권의식을 향상시킨 큰 역할을 한 운동으로 평가될 것”이라며 지지발언을 했다. 동성애 인권운동에 힘쓰는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는 “우리는 장애인, 세월호 유가족 등 약자들과 항상 함께하며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꼈다”며 “연대는 우리를 강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서는 게이합창단 ‘G보이스’의 공연이 대미를 장식했다. 집회에 참여한 모두가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고 보편적 인권의 가치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지며 집회는 마무리됐다.

사진: 정유진 기자 tukatuka13@snu.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