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강 기자
사진부

광장 민주주의의 현장을 찾아간 기사는 내가 『대학신문』 기자라는 책임을 짊어지고 맡은 첫 기획이었다. 이 기획을 발제할 때쯤 나는 카메라를 다루는 것도, 상황이 급변하는 현장을 사진에 담는 것도 어색한 2학기 기자였다. 익숙하지 않은 것투성이였던 내가 주제의식과 의도를 담은 사진을 찍게 된 만큼, 나 자신도, 주변에서도 광장 기획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단순한 보도사진을 찍는 것에서 나아가 리포토그래피 기법*을 활용하기로 했을 때 나는 이미 이 기획에 매료돼 있었다. 역사적 사료를 현대의 프레임 안에 함께 담아 재창조한다니, 얼마나 떨리는 일인가. 이 때문에 소재를 엎을 몇 번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기획을 붙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사회부와 협력해 진행된 기획이었던 만큼 취재원과 인터뷰를 함께했고, 그 현장에서 나는 광장의 과거와 현재를 어떻게 전달하는 것이 시각적으로 효과적일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했다. 전태일 분신자살 사건, 5·18 민주화 운동 등 과거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온 원동력이 됐던 사건들을 재조명하면서, 취재원들의 생생한 회고에 놀랐고, 긴박한 순간을 말할 때 함께 긴장했으며, 마치 그 현장에 되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부끄럽지만 작년 수십 차례 광화문을 뒤흔든 분노의 행진에 한두 번 기웃거리기만 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며, 취재를 통해 전달받은 생생한 이미지들을 최대한 사진에 녹여내고 싶었다.

그런데도 전국 곳곳을 취재하면서 네 곳의 ‘광장’의 모습을 여러 제약으로 인해 완벽하게 담아내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크다. 특히 구 전남도청은 5.18의 결정적 공간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새 단장을 마친 건물에서는 총탄 자국과 최루탄 흔적들을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아쉬움이 사진을 찍고 돌아오면서, 건물 외벽에 걸린 도청 복원을 촉구하는 규탄 현수막과 한산한 분수대의 모습이 뇌리에 더욱 깊이 박힌 이유였을 것이다.

기획을 구성하며 ‘광장’이 살아 숨 쉬는 역동적인 공간이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개인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줬던 평화시장에서 촛불시위의 광화문 광장에 이르기까지, 독자들도 이 기획을 통해 결집한 주체들이 변화하고 그 수가 늘어온 ‘광장’을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만, “30주년이라 인터뷰가 들어오는 편”이라던 전태일재단 박계현 사무국장의 발언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흐름을 바꾼 역사적인 사건들이 시의에 맞춰 기삿거리로만 소비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리포토그래피 기법: 과거의 사진을 현재의 같은 장소와 겹쳐 찍는 사진 촬영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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