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심리치유사 정혜신, 그들의 ‘이웃’이 되다
거리의 심리치유사 정혜신, 그들의 ‘이웃’이 되다
  • 이지윤 사회부장
  • 승인 2017.05.28 06: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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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 '치유공간 이웃' 정혜신 씨

세월호 참사 생존자와 유가족의 마음을 보듬는 ‘치유공간 이웃’에서 ‘이웃치유사’로 활동하고 있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혜신 씨를 만났다. 진료실을 벗어나 거리에서 고문 피해자와 해고노동자들의 심리치유를 도맡아왔던 그는, 세월호 참사 닷새 후인 21일 진도 팽목항으로 향했다. 차가워진 희생자의 얼굴을 확인한 뒤 몸을 가누지 못하던 유가족을 보면서, 그는 자신이 있을 곳은 이곳뿐이라고 확신했다. 2014년 4월 16일, 그날의 참사 이후 민간에서 심리치유에 앞장서며 남은 자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혜신 씨는 “이제는 안산에서 내가 해야 할 일도 처음보다 많이 줄어들었다”며 “‘일상으로의 복원’이라는 치유공간 이웃의 목표처럼, 나 자신도 예전의 내 삶과 일상으로 조금씩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척박한 현장 속 치유의 씨앗을 피우다=그가 팽목항으로 내려간 데에 별다른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다. “간첩 조작 사건, 쌍용차 해고노동자 등 국가폭력의 현장에서 치유에 힘썼던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서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작정 그곳을 찾았어요.” 그러나 현장에서 그가 마주한 유가족들의 분위기는 기이했다. 진도체육관에서 유가족들은 울거나 슬퍼하지 않았고, 씻거나 밥을 먹기 위해 체육관 내를 돌아다니는 이들에게선 비현실적인 공기까지 감돌았다. 현실감각 없이 멍한 상태로 바다에 잠겨있는 희생자를 기다리던 유가족을 위해 그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현장에서 그가 유일하게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공간은 담담하던 유가족의 감정이 폭발하는 신원확인소뿐이었다. 신원확인소에서 가슴을 뜯는 유가족을 어루만지며 그는 수많은 희생자의 시신을 마주했다. “아이들의 시신을 본 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가만히 있어도 소리가 들렸고, 아이들이 꿈에 나타나 엄마를 부탁하는 것 같았어요.” 결국 그는 한 달이 채 안 되는 시간동안 서울에서의 일을 모두 정리하고 안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아무런 기반 없이 내려간 안산에서 그는 유가족을 가정방문 하며 심리치유를 시작했다. 더불어 세월호 생존학생들의 임시학교로 운영되던 ‘중소기업연수원’에서 단원고 교사들의 심리치유에 집중했다. “단원고 교사들은 동료와 제자 수백 명을 잃었지만 유가족의 입장에서 가해자로 보일 수 있어요. 피해자이지만 또 다른 가해자로 인식되는 이들의 내면이 붕괴되지 않도록 안정시키는 게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했어요.” 이후 2014년 6월 단원고 학생들이 중소기업연수원을 나와 학교로 돌아가자 그는 심리치유 활동을 안정적으로 지속하기 위해 ‘치유공간 이웃’의 설립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유가족의 이웃이 된 그들=그렇게 2014년 9월 치유공간 이웃이 만들어졌다. 치유공간 이웃은 유가족의 일상을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유가족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심리치유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는 ‘치유밥상’이 있다. 정성 들여 만든 밥상을 개다리소반에 차려 유가족들에게 대접하면, 밥상을 받은 뒤 남몰래 눈물을 훔치는 이들이 많았다. “반드시 상담을 통해서만 마음이 위로되는 것은 아니에요. 정성들여 만든 밥상이 갖는 치유적인 힘, 그 따뜻한 힘이 있어요.” 희생학생의 생일날 주인공이 없는 생일을 치르는 ‘생일모임’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희생학생의 주변 사람들이 모여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생일상을 차리고, 몇 시간 동안 울고 웃으며 각자가 맺었던 학생과의 추억을 털어 놓는다. 마지막엔 희생학생의 이야기로 쓰인 시를 다 같이 낭독하는 시간을 가지는데, 이 자체가 집단적 치유의 과정이 된다. “트라우마의 대표적 증상은 세상에 대한 불신과 이에 따른 고립이에요. 상처받은 사람들이 모여 집단적 심리치유를 통해 자기만 미쳐가는 게 아니라는 것만 확인해도 세상에 대한 신뢰를 조금씩 회복할 수 있어요.”

그는 심리치유란 자신이 배운 것을 입증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유가족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병원 진료실이 아닌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정신과적 틀이 아닌 그 사람의 내면과 삶 자체를 볼 수 있게 됐어요. 정실질환적 접근에 따른 심리치유에서 벗어나 트라우마 피해자들의 일상에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그들의 필요에 맞춰 배운 것을 수정해 나가야 해요.” 또한 그는 참사의 현장에서 유가족을 자극하거나 압박하기보다는 그들을 한 명의 인간으로 대할 때 진정으로 살아있는 치유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참사 이후 유가족은 몇 백 개가 넘는 심리문항에 제대로 집중할 수조차 없었어요. 심리상담에 앞서 어떤 학생의 부모인지 기입하는 단순한 과정도 그들에겐 큰 상처로 다가왔을 겁니다. 치유를 받는 사람의 심리를 고려해 치유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해요.”

◇대한민국은 아직도 폭격 진행 중=“폭격이 멈춘 뒤 폭격으로 인한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의 치료에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폭격으로 모두를 잃었지만 계속해서 폭격이 멈추지 않는, 여전히 외상 중인 상황이에요.” 세월호 참사라는 1차 트라우마 이후 유가족에 가해졌던 비난과 진상규명에 대한 노골적인 방해는 그들을 2차 트라우마로 몰아넣었다. 그는 유가족의 2차 트라우마를 멈추고 치유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이 명백히 밝혀지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진상규명이 이뤄진 다음에야 유가족의 명확한 현실 인지가 이뤄질 수 있고, 그때부터 유가족에 대한 진정한 심리치유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반 시민이지만 끔찍한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 앞에서 해줄 게 없는 것이 아니에요. 유가족이 2차 트라우마를 겪지 않도록 지지와 연대를 보내고,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살릴 수 있어요.” 시민으로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을 보듬을 의무가 있다고 말하던 그는, ‘치유공간 이웃’뿐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언제 어디서든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이웃’이 될 수 있다며 웃어 보였다.

사진: 윤미강 기자 applesour@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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