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손지윤 기자 unoni0310@snu.kr

존경하는 위원장님께.

이슬람 종교 기부 당국의 최고 책임자인 당신께 존경과 신뢰를 표명하는 가장 예의바른 방법을 알지 못하는 저를 부디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앗살람 알라이쿰, 알라의 평안이 당신과 함께 하기를.

이번에 어려운 결정을 내리신 이슬람 종교 기부 당국에도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코란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어리석은 인간들은 아직까지도 어둠 속을 헤매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미국 샌디에이고에 사는 평범한 대학생이고 무슬림은 아닙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신 부모님의 교육 덕분에 저 역시 크리스천으로 성장했습니다만, 무슬림과 크리스천의 차이는 오직 경전을 읽는 방법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천문학을 전공하게 되면서부터, 특히 샌디에이고의 팔로마 천문대에서 진행되는 수업에 참가한 뒤부터, 과학은 결국 종교를 이해하는 방편에 불과하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머리 위에 끝없이 펼쳐져 있는 우주의 역사에 대해 고작 일 퍼센트도 알지 못하는 인간이 망원경을 통해 우주 속에서 찾으려 하는 건 무력한 개인과 광대무변한 신이 아닐까요? 인간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암흑과 고요를 어떤 자는 부처라고 일컫고 어떤 자는 여호와, 어떤 자는 알라, 그리고 어떤 자는 시바라고 일컫는 게 분명합니다. 절대적인 것에 편의적으로나마 이름마저 붙이지 않는다면 인간은 자신의 삶을 설명할 수조차 없으니까요. 인간은 늘 대상을 통해서만 자신을 인식한다고 배웠습니다.

코란에 “깜깜한 바다와 육지에서 너희를 인도할 별들을 가리키시는 분은 바로 알라시니라”라는 구절을 읽었습니다. 무슬림에게 천문학 연구는 알라가 허락하신 성스러운 작업이라고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천문학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왔는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가령 9세기 초 칼리프 알마문은 바그다드와 다마스쿠스에 천문대를 설치하고 지리학자와 수학자들로 하여금 우주를 연구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중세 이슬람시대의 가장 위대한 학자였던 아부 라이한 알비루니는 요하네스 케플러가 태어나기 5백 년 전인 1031년에 이미 행성들이 타원 궤도를 따라 공전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알 잘르칼리가 11세기에 아스트롤라베(Astrolabe)와 물시계, 그리고 톨레도 표를 발명하지 않았더라면 세상의 어떤 천문학 책도 결코 열 페이지를 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알라의 충실한 종인 나시르 알 딘 알 투시는 13세기 초 이란 북부의 말라크에 천문대에서 오랫동안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한 끝에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부정하고 지동설을 주장하는 논리와 근거를 『천문학입문』에 기록하였습니다. 이는 크리스천이자 천문학의 혁명가인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보다도 3백 년이나 앞선 발견입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유명한 저서 『천구의 회전에 대하여』가 알 투시의 저서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 무슬림의 역사를 배제하고 현대 천문학의 성과를 이야기하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 일이겠습니까? 하긴 수학이나 물리학, 화학, 생리학, 의학 분야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이 모든 은혜가 알라에게서 비롯되었겠지요.

인샬라. 부디 알라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지만 저 같은 이교도는 알라의 깊은 뜻을 결코 헤아릴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위원장님의 도움이 간절합니다.

아마 크리스천인 제가 천문학 발전과 무슬림의 역할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 위원장님을 놀래게 만들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건 제 스스로 깨우친 게 아니라, 제 절친한 친구로부터 듣고 기억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걸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그는 제가 이런 편지를 위원장님께 쓰는 걸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저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는 독실한 무슬림이자 조만간 천문학의 미래를 바꿔놓을 만큼 명민한 천재입니다. 저 같은 범인들은 도저히 크기조차 가늠할 수 없는 능력을 지녔지요. 아마도 알라는 그를 통해 자신이 설계한 우주의 역사와 원리를 설명하려고 하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한계는 알라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의 지성과 열정이 조만간 우주에 대한 인간의 이해 범주를 획기적으로 확대시킬 것이라는데 의심하는 자 또한 아무도 없습니다. 그가 성공하면 인간은 알라와 부처와 여호와와 시바의 가르침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단, 그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낸다면 말이죠.

그의 재능을 아끼는 많은 친구들과 교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두 달 전에 마스원(Mars-One) 프로젝트에 지원했습니다. 자신의 주검조차도 지구로 돌려보낼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지만 지구를 출발하여 화성에 이르는 전 과정을 경험하고 기록하면서 그는 자신의 이론과 신앙심을 직접 증명해 보이고 싶어 합니다. 비록 화성 표면이 너무 뜨겁거나 차가워서 발을 내딛는 순간 불타거나 얼어붙는다고 하더라도 위대한 도전을 끊임없이 시도하지 않는다면 우주가 완전히 닫히는 순간까지도 인간은 태양계조차 빠져나갈 수 없다고 그는 주장했습니다. 그 결정에는 종교적인 사명감도 포함되어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오스만투르크 시대의 왕실 천문학자였다는 소문도 들었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사실 여부를 확인할 방법은 저는 모릅니다.

두 달 동안 황홀경에 빠져 있던 그가 이주일 전에 이슬람 종교 기부 당국이 무슬림의 화성 여행을 금지하는 판결을 내렸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뒤부터 식음을 전폐한 채 나흘 동안 기숙사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슬람에서 엄격히 금하는 자살을 시도한 자와 똑같은 수준의 형벌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는 더욱 움츠러들었습니다. 중간고사에 불참한 사실이 걱정되어 찾아온 친구들조차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911을 불러 방문을 강제로 열어야 했지요. 그는 죽음의 문턱에 이를 때까지 기도를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응급실에 입원했는데도 일체의 치료와 음식을 거부해서 의료진과 친구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지요. 결국 뉴텍사스주에서 급히 모셔온 이맘의 설득 덕분에 그는 자신의 혈관에 포도당액을 주입하는 걸 허락했답니다. 하지만 포도당액만으로 천문학에 대한 그의 열정을 되살리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그는 나흘 동안의 금식과 기도 끝에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우주의 경계를 확대하겠다는 포부를 폐기했다고 말했습니다. 대신 알래스카로 가서 연어잡이 어부가 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가 알래스카를 선택한 이유는 그곳이 화성과 가장 비슷한 자연환경을 지녔기 때문이었죠. 나중엔 사하라 사막 한복판으로 가서 낙타몰이꾼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부나 낙타몰이꾼을 폄훼할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후손들이 모두 어부나 낙타몰이꾼의 운명에 갇히게 되는 걸 몹시 걱정할 따름입니다.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자는 위대한 알라와 위원장님뿐입니다. - 아랍에미리트에 살고 있는 그의 부모님은 이미 그를 설득하는데 실패했습니다. - 그렇다고 이슬람 종교 기부 당국의 결정을 번복해달라는 무례한 요청을 드리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이교도인 저에겐 그런 요구를 드릴 자격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의 무모한 도전을 막아준 당국과 위원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를 화성으로 보내지 않은 알라에게 다른 목적이 있으실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알라가 그의 기도 속에 나타나서 그의 사명과 운명에 대해 이야기해주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만, 만약 그럴 수 없다면 위원장님께서 편지나 전화로 그를 위로하고 설득해주실 순 없을까요? 그는 이슬람 율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보다도 더 완벽하게 율법을 알고 집행하시는 위원장님께서 알라의 자비를 그에게 알려주신다면 분명히 그는 본연의 열정과 지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차피 인간은 마스원 프로젝트 이후로도 우주를 향한 도전을 계속할 것이고 시행착오를 겪다 보면 언젠가는 지구와 화성을 왕복할 수 있는 유인우주선을 발명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그가 다시 신청서를 내더라도 그리 늦진 않을 겁니다. 물론 그때도 그에겐 이슬람 종교 기부 당국의 파트와(율법해석)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말입니다.

그의 재능만을 아까워하는 건 아닙니다. 또한 그것을 미국의 자산으로 선점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지니지도 않았습니다. 그와 같이 비범한 재능을 타고 나지 못한 저로서는 그가 없는 우주를 상상하는 게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그리고 그건 분명히 제 자식들에게도 불행이 되겠지요. 왜냐하면 천문학자로서의 그의 미래를 거세하는 건 인간의 역사를 뒤로 돌리는 일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와 케플러를 상정하지 않고서 어떻게 허블망원경과 우주왕복선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금 위원장님께 간곡히 요청 드립니다. 천문학의 역사에 공헌해야 할 숙명을 부여받은 그가 한여름 밤의 신기루에 불과한 불안감과 자책감에 마비되어 인류의 미래를 훼손하지 않도록 율법으로서 그를 인도해주십시오. 만약 그가 위원장님의 설득마저도 수긍하지 않는다면 자살을 시도한 무슬림에게 내리는 형벌로서 그를 독방에 가두고 일깨워주십시오. 신체가 부자유스러워지면 비로소 영혼이 날개를 얻는 법. 누가 알겠습니까? 그가 독방에서 현대 천문학독본을 혼자서 완성해 낼지.

앗살람 알라이쿰, 그리고 인샬라.

“화성여행은 자살처럼 이슬람 율법상 죄악”

(연합뉴스. 2014. 02.21)

김솔 소설가

201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제7회 젊은작가상, 제3회 웹진문지문학상 등 수상

올해 1월 짧은소설집 『망상, 어』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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