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산초등학교 앞, 종이 상자 안에 노란 병아리들이 울고 있었다.

‘한 마리 500원.’ 나는 가장 크고 건강해 보이는 병아리 한 마리를 골라 집으로 돌아왔다.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무엇을 줄지 몰라 그냥 집에 있는 쌀 몇 알을 줘보니 잘 먹던 모습이 생각난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병아리는 더 이상 눈을 뜨지 않았고, 울면서 엄마 손을 잡고 뒷산에 올라 병아리를 묻어줬다. 그 병아리는 나에게 ‘반려동물’이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나는 아무렇지 않게 치킨을 시켜 먹고 아침에 종종 계란프라이를 먹었다. ‘살충제 계란 파동’ 이전까지는. 뉴스에 나온 살충제 계란은 공장형 축사에서 농약을 맞으며 자라난 산란계로부터 얻어지고 있었다. 문득 어린 시절 병아리가 떠올랐다. 어린 나에겐 무척이나 소중했던 병아리는 생각보다 훨씬 끔찍한 환경 속에서 사육되고 있었다. 농장주들의 잘못이었을까? 하지만 『대학신문』은 다르게 말한다.

현재 대한민국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은 반려동물을 기른다고 한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기르는 동물은 단연 강아지다. 누군가는 가족처럼 소중하게 키우는가 하면, 누군가는 하나의 소비재처럼 소비하다가 가치 없게 느껴지면 버린다. 또한 어느 농장에서는 개를 식용으로 사육한다. 이처럼 하나의 동물이더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길러지고 있다. 여기서 개식용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 두 가지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유기동물 관련 문제고, 다른 하나는 열악한 가축 사육 실태다.

먼저 유기동물 관련해 유기동물보호소의 인력과 보조금이 턱없이 부족해 보호소에 입소한 유기동물들 중 절반 가까이가 안락사하거나 자연사하고 있다. 이쯤 되면 보호소라는 이름이 무색해진다. 이러한 실태 속에 유기동물보호소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과 운영 형태 개선을 통해 동물복지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반려동물이 쉽게 유기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의 형성이다.

가축 사육과 관련해서는 최근 ‘살충제 계란’ 사건을 통해 열악한 농가의 사육환경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만, 경제적인 면과 수요에 맞는 공급량 유지 측면과 가축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농가들을 비판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실제로 ‘살충제 계란 파동’과 관련해선 진드기를 잡기 위한 방법에 대해 국가가 침묵하고 살충제 사용을 묵인했기에 양계업자들은 억울한 입장이라고 한다. 사실 모든 가축 사육 환경의 시작점은 소비자라고 할 수 있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소비자가 조금 비싸더라도 좋은 사육 환경에서 생산된 축산물들을 충분히 소비한다면 사육 환경은 굳이 나빠야 할 이유가 없다. 동물복지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실제 판매까지 이어진다면 가축 사육 환경은 자연스레 개선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동물복지축산농장은 언젠가 필수적으로 전환될 시대적 흐름이라고 하지만 그러한 흐름의 전반에는 개인의 인식 통합 및 집단 간 갈등의 완화가 진행돼야 한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현 시대에 통합된 인식을 갖기란, 어렵고 모순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동물을 소비재로서 인식하고 소비하는 순간, 무시된 동물의 권리는 독이 든 성배로 돌아온다는 것을 항생제가 범벅인 개고기, 과포화 상태에 있는 유기동물보호소 그리고 살충제가 든 달걀 등을 통해 우리는 이미 겪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어쩌면 어른이 된 우리가 병아리를 ‘반려동물’로 생각할 수 있는, 하나의 소중한 생명으로 생각할 수 있는, 그때의 어린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더욱 쉬운 일이 되지 않을까.

강용우
재료공학부 석박통합과정·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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