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장에 갇힌 인간들, 폭력의 세계를 관조하는 시선
사육장에 갇힌 인간들, 폭력의 세계를 관조하는 시선
  • 이경인 편집장
  • 승인 2017.09.17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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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작가를 만나다
편혜영 작가에게 소설 창작의 원동력을 묻자 그는 "처음에는 제 안에 고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 자체가 즐거웠어요"라고 말했다. 등단 직후에는 별다른 원고 청탁이 없다가 첫 소설집 『아오이 가든』(2005)으로 독창성을 인정받으며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된 당시에는 그 상황 자체가 즐거웠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는 인제는 그저 이야기를 풀어내는 게 즐거워서 작품을 쓰는 시기는 지났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지금은 다음에는 제가 어떤 이야기를 써내고, 또 어떤 성과와 실패에 도달할지 궁금한 마음에 계속 소설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라며 여전히 왕성한 창작활동의 동인을 설명했다.

초가을의 저녁 어스름, 연희동의 한 카페에서 편혜영 작가를 만났다. 단편 「이슬털기」(2000)로 등단한 이후 지금까지 네 권의 단편집과 네 권의 장편소설을 펴내는 등 이제는 17년차 문인으로서 소설가의 입지를 굳혔지만, 인터뷰의 첫머리에서 그는 자신의 꿈이 처음부터 소설가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할 때까지도 막연히 글을 쓰는 게 좋다고만 생각했지 소설을 쓰고 싶다 생각한 것은 아니었어요”라며 “소설 창작 수업을 들으며 나를 숨길 수도 있고 드러낼 수도 있는 소설에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시작된 그와의 인터뷰는 그의 삶과 문학 세계를 아우르며 어느새 또 하나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저 불 꺼진 창문 뒤편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편혜영 작가의 소설을 읽다보면 그의 작품 전체에 걸쳐 비슷한 소재나 배경이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달리 말하면, 특정 모티브들이 자주 활용되며, 소설의 배경이나 분위기 역시 일관성을 가진다는 말이다. C국으로 파견 근무를 나간 주인공이 지진과 전염병이 창궐한 도시에서 도망자이자 노숙자로 전락해 밑바닥의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재와 빨강』(2010)에는 지진, 개, 쥐 등의 모티브가 반복적으로 활용된다. 이는 그의 소설에서 자주 눈에 띄는 대표적인 소재다. 더불어, 그의 작품의 배경은 주로 더럽고, 어둡고, 암울하며, 섬뜩하다. 더러운 늪지대 옆동네의 밤을 배경으로 하는 「밤의 공사」(20 05)나 한밤중에 교통사고로 불타는 트럭이라는 섬뜩한 설정을 담고 있는 「저녁의 구애」(2009)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구성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를 작가에게 직접 물었다.

»» 작가님의 소설을 읽다보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지진, 교통사고, 쥐나 개 등의 반복적인 모티브의 활용입니다. 이런 모티브가 반복되는 이유를 여쭙고 싶습니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우연적인 고통이나 재해를 떠올리자면 가장 먼저 지진을 떠올려요. 지진은 사람들이 가장 견고하게 유지될 거라 믿고 있는 대지가 흔들리는 경험이잖아요. 흔들림의 파동도, 시기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삶에서 우연적으로 닥치는 가장 두려운 사고가 지진이 아닐까 생각해요. 통제할 수 없는 고난이나 재해를 떠올리면 저는 가장 먼저 지진을 떠올리게 됩니다.

교통사고가 소설 속에 반복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은데, 제가 더 좋아하는 소재는 사실 고속도로예요. 고속도로는 통제된 것 같으면서도 우연적인 공간이에요. 고속도로에선 일단 한 번 달리면 IC에 도달할 때까진 목적지에서 벗어나게 되더라도 달려야만 해요. 고속도로에서의 속도감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길 왕복하는 대형차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요. 통제와 우연, 멈출 수 없음과 사고의 위험 등에서 이상하게 인간의 삶도 고속도로에서와 같이 운용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현대사회의 불가해한 공포의 대상으로 고속도로나 화물차를 자주 사용하는 것 같네요.

동물은 특정 시기에 많이 썼는데, 특히 『사육장 쪽으로』(2007)에서는 거의 모든 소설마다 동물 모티브가 들어간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많이 줄여보려 했는데도 개는 반복해서 등장하네요. 사육되는 동물들이 인간과 비슷한 느낌이 있으면서도 야생성의 측면에서 인간을 초월하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사용하는 동물들은 야생성이 그대로 있다기보다는 시스템 속에서 제도화된 동물들입니다. 시스템화된 야생성이라 할까요. 제가 그리는 인간 역시도 시스템에 복종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런 맥락으로 동물 모티브를 자주 사용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 소설의 분위기가 대부분 어둡고, 더럽거나 폐쇄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이와 같은 분위기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것도 앞서와 맥락이 비슷해요. 우선, 제가 소설로 쓰는 데 실패했던 이야기부터 시작하자면, ‘아파트먼트’라는 제목으로 하나의 공동주거공간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보려고 했었어요. 제가 장편으로 준비한 첫 이야기였지만 결국 실패로 끝이 났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그 안의 사람들의 삶이 되게 실제적인 것들일 수밖에 없는데 저는 그런 현실의 이야기를 쓰는 게 재미가 없더라고요. 제가 현실과 형태가 지나치게 닮아있는 것을 재현하는 일에는 흥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은유로서의 세계를 만들기로 했는데, 그 세계가 말씀하신 대로 다 어둡고 암울하고 재난에 처해있는 세계였던 거죠.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실질적 재난을 담기보다는 재난 상황을 알레고리화하는 데 더 관심이 있었어요. 알레고리 상황은 되게 극단적일 테니까 그게 더 삶의 총체를 잘 담아낼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고요. 이렇게 보니 제가 은유적이라 생각한 세계가 사실은 꽤나 직설적이었네요.

제 소설 속의 어두운 분위기는 제 세계관 자체와도 많이 맞닿아 있어요. 저는 사람들의 밝은 측면보다는 어두운 측면을 파고드는 게 더 좋아요. 마을 전체의 이야기보다는 집 한 채, 그 집에서도 불 꺼진 창을 유심히 보게 돼요. 어딘가 불이 꺼지고, 어둡고, 버려지고, 암울한 곳에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숨어 있지 않을까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계속 그런 식의 배경을 구상하게 됩니다.

환멸과 연민의 시선, 방황하는 인간을 담다

‘섬뜩하게 보기’ ‘웰컴 투 하드보일드 헬’ ‘재와 피로 덮인 얼굴’과 같은 수식어를 보고 있자면, 대체 어떤 작가의 작품이기에 이러한 평론이 따라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들은 편혜영 작가의 작품에 대해 내려진 어떤 별명과도 같은 평이다. ‘섬뜩함’ ‘지옥’ ‘밤’ 등의 분위기로 가득한 그의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애써 외면해오던 인간의 어두운 단면을 마주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의 작품이 갖는 묘미는 기괴하고 폭력적이며 심지어 모호하기까지 한 이야기가 그려내는 세계와 그 속의 인간이 몹시도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생각하는 세계의 작동 방식은 무엇이고, 그가 그리려는 인간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 명확한 목표가 있으나 이를 이뤄낼 수 없음에서 비롯된 불명확성, 그리고 모호함이 작가님이 그리는 세계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대한 작가님의 견해가 궁금합니다.

단편 「사육장 쪽으로」(2006)를 쓸 때 재밌었던 건 계속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사육장이 저기 있다고 사람들이 다 얘기하는데 정확히 그게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소설 속 주인공은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려면 사육장을 넘어야 하니 개 짖는 소리를 따라가야 하죠. 하지만 명확한 목표에도 불구하고 거길 찾아갈 수가 없어요. 과정을 모르는 채로 일이 진행되고, 수행하고 있지만 확인할 수는 없고, 피하고 싶은 곳으로 점점 되돌아가게 되는 상황이 흥미로워요. 해야 할 게 아주 분명한데 이를 이뤄낼 수 없을 때 갈등의 진폭은 훨씬 커지게 돼요. 그런 상황을 좋아하다 보니 인물에게 해소해야 할 목표를 주지만 거기에 닿기까지의 길은 아주 흐리게 처리하게 되네요.

명확한 인과 관계가 있는 소설을 쓰기는 꺼려져요.『홀』(2016)의 경우에도 화자 ‘오기’가 말해주는 이야기만으로 소설이 진행되지만 오기는 아내의 죽음에 관한 중요한 진실을 숨기고 있는 믿을 수 없는 화자예요. 그가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어떤 진실이죠. 거짓말과 진실 사이의 이러한 아이러니를 강조하려다 보니 오기의 말을 계속 통제하게 됐고, 진실과 실제가 아닌 일이 불분명해졌어요.

사실 저는 일상에서도 어떤 일의 인과나 경과를 분명히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생각해요. 상대방의 선택, 사람들의 대화에도 불분명한 게 많아요. 그래서 명확히 어떤 태도를 정하는 게 오히려 진실로부터 멀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스스로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소설 속 인물이 자신의 모든 걸 완벽히 통제할 수 있을까 싶어요. 그런 생각이 들면 모든 게 명확한 상황이 오히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만 같고요. 그래서 불명확한 상황을 그리는 게 더 현실적인 묘사라 생각합니다.

»» 그 불명확성의 탓인지 작가님 작품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방황하는 존재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 방황의 끝에서 체념이 아닌 적응을 택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작가님이 그리고자 하는 인간이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사회의 어떤 시스템에 인간들이 별로 저항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제 소설 속 인물들은 시스템에 아주 열심히 복무하는 사람들입니다. 『재와 빨강』의 주인공처럼 파견 근무를 나가는 인물이나 성실히 직장 생활을 하는 인물들, 「사육장 쪽으로」에서처럼 열심히 대출을 갚아 나가는 인물 등이 그렇죠. 하지만 그들은 시스템에 복무하면서 그걸 냉소하는 인물이기도 해요. 내가 자율의지보다는 누군가의 지시나 질서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걸 명백히 알고 있으면서도 거기에 복무하는 존재들인 거죠.

사실 체념해버리는 건 쉬워요. 하지만 오히려 적응해버린다면 거기에는 이상한 환멸감 같은 게 따라온다 생각해요. 자기가 시스템에 복무하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괜찮겠지만 그걸 다 알면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기 삶에 환멸감을 가지죠. 『재와 빨강』의 주인공도 결국은 자신에게 주어진 밑바닥의 환경에 완벽히 적응하지만, 그 적응은 일종의 체념이기도 해요. 적응이란 자기가 그 세계 외의 다른 데로 나아갈 수 없기에 택하는 체념이기도 하니까요. 그런 이중적인 인물들에게 연민의 감정도 느껴요. ‘기본적인 생존을 위한 적응’에서 드러나는 이중적인 인간상에 대해 연민과 환멸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인터뷰의 말미에서 편혜영 작가는 자신의 상상을 뛰어넘는 극적인 사건들이 빚어지는 현실에 대한 고민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가장 최근에 충격을 받았던 일은 강서구에서 벌어진 장애아동 특수학교 설립 간담회에서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은 일이었어요”라며 “소설적 상황이 아닌 실제 사회에서 벌어진 일을 이해하기 위해 소설 이상의 상상력이 요구된다는 점이 의아해요”라고 설명했다. 이에 덧붙여 그는 “광폭한 현실은 이미 소설적 상상력을 뛰어넘기에 논픽션의 세계로밖에 묘사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도 해요”라며 최근 논픽션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차기작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병원을 무대로 하는 소설을 준비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굉장히 이타적인 공간이어야 할 것 같지만 가장 이해타산적인 공간이기도 한 모순된 지점이 있다”며 병원을 소설화하는 데 끌림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 속에서 그의 다음 작품이 담아낼 ‘하드보일드 헬’의 모습이 기다려진다.

사진: 이문영 부편집장 dkxmans@snu.kr

레이아웃: 조수지 기자 s4kribb@snu.kr

삽화: 강세령 기자 tomato94@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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