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재 박사과정 수료
국어국문학과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언젠가 여행을 마치고 공항에 도착한 순간, 그간의 밀린 일과 돌아가서 해야 할 이런저런 일들이 떠올라 무심코 한숨을 쉬며 푸념을 하고 말았다. 한숨을 쉬는 내게, 한 후배가 “무사히 돌아왔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에요”라고 말했을 때,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무사 귀가와 무탈함에 대한 고마움을 잊은 나를 깨우는 말이었다. 떠나기 전에는 떠나고 싶어 하고, 떠나고 나서는 떠나온 곳을 걱정하는 어리석음을 종종 반복한다. 그러는 중에 내가 놓치는 것은 무엇일까. 이렇게 뒤이어 묻고는 마음이 초조해진다. 그리고는 다시,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나는 지금 안녕(安寧)한 걸까?’와 같은 물음들을 쏟아낸다.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떠나는 친구와 몇 년 뒤에도 우리가 지금의 싱그러움을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한동안 그 친구와의 대화를 기억했고, 마음으로 약속했던 것을 지키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어느새 친구와의 연락도 끊기고, 예전에 우리가 나눴던 대화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지내던 어느 날, 『대학신문』에서 그 친구의 이름을 발견하고, 문득 예전의 대화와 약속이 떠올랐다. 내가 지키고 싶던 싱그러움, 그리고 그 때 빛나던 것들 모두 무사한가? 괜찮은가? 이렇게 물으면서 거울 속의 나와 눈을 마주쳤던 때로부터도 또 몇 년이 지났다. 그 때는 고맙게도 괜찮다고,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은 이런 물음 앞에서 작아진다.

고마움도 잊고, 머릿속에 어떤 어휘도, 시 구절도, 어떤 소설의 대목도 남아 있지 않아 가난하고 또 가난하고, 가난하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기억전달자』로 유명한 로이스 로리의 3부작 중 하나인 『메신저』에 나오는 ‘조언자’의 거래가 떠오른다. 학생들에게 더없이 너그럽고 상냥한 선생님이었던 그는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기가 아끼던 것들을 시장에 갖고 나가 판다. 그 거래의 댓가로 그는 구부정한 허리 대신 꼿꼿하고 단단한 몸을 얻고, 얽은 자국이 있는 피부 대신 탄력있는 피부와 한결 젊어 보이는 얼굴을 얻으며, 수줍은 침묵 대신 달변가의 언어를 얻는다. 그러나 그 결과 그는 아이들을 대하는 넉넉한 마음과 자상함, 조용히 기다려주던 인내심과 선한 미소, 그리고 사랑의 마음을 잃어갔다. 그 거래의 시작은 시집을 파는 것부터였다. 그에게 시는 그를 가장 그답게 해주는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그것을 ‘다른 어떤 것’과 교환한다.

이 거래를 생각하면 내 마음의 가난이 어쩌면 가장 지키고 싶고, 가장 가치 있다고 여겼던 것들을 다른 무엇과 교환한 데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보게 된다. 오늘 나는 나와 우리의 안녕(安寧)을 해치는 거래를 한 것은 아니었는지 말이다. 나는 나의 안녕, 그리고 우리의 안녕을 위해 어떤 거래를 하고 있을까. 나는 ‘아직’ 내 삶의 사건과 사고, 그리고 세상의 사건과 사고를 아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고 할 만한 확신도, 만물이 하나라고 할 만큼의 깨달음도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내 매순간의 선택과 내가 하는 거래의 엄정함에 대한 사리분별만큼은 갖추기를 바란다. 나와 우리의 무분별이 우리 모두의 무사 귀환과 반대편에 서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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