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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의 동상에 살아있는 이야기를 불어넣다

넓은 관악캠퍼스를 누비다 보면 심심찮게 여러 동상을 만날 수 있다. 대부분의 동상은 그 사람의 업적을 기리거나,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서울대 관악캠퍼스 내에는 그러한 동상이 14기 가량 존재한다. 그중 일부 동상은 단순히 그 자리에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후대에 영향을 주고 또 다른 역사의 출발선이 되기도 한다. 이에 『대학신문』에서는 이번 특집을 통해 서울대의 ‘살아 숨 쉬는 동상’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박은식 흉상

사범교육협력센터(12동)•2015년 10월 30일 건립•광복회 회장 박유철 씨

박은식 흉상
박유철 회장은 “박은식 선생의 후손으로서 서울대에 동상이 건립된 것은 굉장한 영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범교육협력센터(12동) 앞에는 서울대 사범대의 전신인 한성사범학교에 재직했던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백암 박은식의 흉상이 있다. 백암 박은식의 한성사범학교 교관 임명 기록이 발견된 이후 사범대와 박은식의 후손들이 뜻을 모아 2015년 10월 30일 흉상을 세웠다.

지금은 양손자인 박유철이 제19대 광복회장 활동을 통해 그의 뜻을 기리고 있다. 광복회는 위문행사, 독립유공자 증손 자녀를 위한 장학금 지원사업 등을 하는 단체다. 올바른 역사기록의 중요함을 강조했던 백암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편향된 서술로 논란이 됐던 국정교과서의 보급을 반대하고 2016년 12월 24일 국정교과서 반대 서명부를 교육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박유철 회장은 백암 박은식을 ‘나라의 혼이 살아있다면 잃어버린 나라는 반드시 돌아온다고 호소했던 분’이라고 회상한다. 실제로 박은식은 나라의 혼을 역사 그 자체로 보고 한평생을 역사서, 위인전 등 지난 시대를 기록하기 위한 책 집필에 몰두했다. 한국의 아픈 역사를 서술한 『한국통사』부터 독립운동을 하며 피를 흘린 긴 투쟁사를 담은 『독립운동지혈사』까지, 그가 서술한 책은 단순한 역사서를 넘어선 사라진 나라를 되찾기 위한 운동의 일부분이었다. 박 회장은 “1895년 대한제국의 황후가 일제의 칼에 시해된 이래로 촉발된 의병투쟁부터 1945년 광복이 될 때까지 50년간 300만 명이 넘는 선열들이 피를 흘렸다”며 “우리나라의 근본정신인 ‘독립운동 정신’이 후대에도 살아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종철 흉상

중앙도서관 인문대 사잇길•1997년 6월 10일 건립•박종철기념사업회

박종철 흉상
박종철 기념관 안 ‘509호 조사실’은 그가 고문받던 당시 상황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공간이다.

중앙도서관과 인문대 사잇길에는 박종철 추모 흉상이 굳건히 앞을 바라보고 있다. 사망 30주기를 맞은 민주열사 박종철은 공권력에 의한 인권탄압은 은폐될 수 없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으며 6월 민주항쟁의 계기를 마련했다. 서울대는 6월 항쟁의 불씨가 된 박종철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1997년 6월 10일 추모비와 흉상을 건립했다. 2001년에는 6월 항쟁 당시 언어학과 학생회장이었던 그에게 언어학과 명예 졸업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학교 밖에서도 1989년 2월 동문과 지인들이 ‘박종철기념사업회’를 만들어 그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박종철기념사업회는 국가권력의 부당한 폭압에 맞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려고 노력한 사람 혹은 단체에 ‘박종철 인권상’을 수여하고 고문치사 사건 관련자의 증언, 기억을 수집해 책으로 펴내는 출판사업 등을 하고 있다.

또한 박종철기념사업회는 지금의 민주주의를 이룩하기까지 있었던 아픔을 보존하고 기억하자는 취지의 ‘박종철 기념관’을 운영하고 있다. 기념관에서는 그가 살아생전 자주 입었던 옷, 자주 치던 기타까지 전시하고 있으며 서울대에서 진행된 흉상 제막식 사진 또한 볼 수 있다.

김태영•김영환•홍영걸 추모비

공대 31동•1999년 9월 18일 건립•실험실/연구실 안전 환경 조성

김태영·김영환·홍영걸 추모비

공대 31동 ‘방사선실험조사연구실’ 앞에 실험실 안전표어가 붙어있다.

공대 31동 앞에는 흰 대리석 기둥 세 개가 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지만 기둥에는 세 학생의 얼굴이 부조 형식으로 조각돼 있다. 1999년 9월 18일 실험실 사고로 세상을 떠난 원자핵공학과 김태영, 김영환, 홍영걸 학생을 기리기 위해 2001년 9월 19일 제작된 추모비다.

사고 당시 핵변환에너지연구센터(31-1동) 원자핵공학과 실험실에서는 플라즈마 기법의 폭발물 실험이 진행 중이었다. 알루미늄 가루를 종이로 된 원통형 실험관에 주입하던 중 가루 일부가 날렸으며, 이 과정에서 갑자기 스파크가 생기면서 연쇄 폭발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학생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중앙일보」 1999년 9월 19일자)

사고 이후 본부와 학생들은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학생들은 「공대저널」을 중심으로 ‘실험실안전대책위원회’를 꾸려 대책 마련을 위해 노력했다. 본부는 1999년 12월 10일부터 ‘공과대학 실험실 안전관리 규정’을 시행했고 교수들로 구성된 ‘안전관리위원회’를 설치했다. 강용우 씨(재료공학부 석박사통합과정·16)는 “현재 서울대 공대에서는 실험실을 사용하는 인원들이 환경 안전교육을 받도록 의무화돼 있다”며 “실험실 안전교육뿐만 아니라 실험실을 사용하는 개개인이 항상 안전규칙을 준수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대원 흉상

반도체공동연구소(104동)•2014년 10월 24일 건립•제1회 ‘강대원상’ 수상자 박병국 교수

강대원 흉상
제1공학관(301동)에서 만난 박병국 교수는 강대원 박사의 연구 업적을 찬찬히 설명했다.

2014년 10월 24일 반도체공동연구소(104동)에 반도체 관련 업적을 세운 강대원 박사를 기념하고 미래 인재들에게 동기를 부여하자는 뜻으로 그의 흉상이 건립됐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강대원 박사는 한국에선 생소한 인물이지만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한국인 최초로 헌액될 만큼 해외에서는 연구 업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뒤늦게서야 한국에서 주목을 받게 됐고, 한국반도체학술대회에서는 2015년 2월 반도체 개발자들에게 기술 개발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고 희망을 주고자 ‘강대원상’을 제정했다.

강대원상 제1회 수상자인 박병국 교수(전기·정보공학부)는 “강 박사가 조금만 더 살아있었다면 노벨상 수상자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강 박사가 개발한 저렴하고 적은 전력으로 동작이 가능한 모스펫(Metal-Oxide-Semiconductor Field-Effect Transistor)이라는 반도체 소자가 수많은 IT기기 개발의 기반이 됐기 때문이다. 그는 “강 박사의 모스펫이 없었다면 지금의 컴퓨터는 물론 디지털카메라, 휴대폰 등 거의 모든 IT기기가 나올 수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박병국 교수는 “우리나라가 반도체 선진국인 것은 강대원 박사 같은 훌륭한 분들이 기틀을 마련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무엇이든 당장 빛을 보지 못하더라도 자신감을 갖고 끝까지 추구해야 제2, 제3의 강대원 박사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유 없이 제작되는 동상은 없다. 광복을 열망하며 학문에 몰두하던 독립운동가도, 억울한 죽음으로 국민의 안타까움을 샀던 민주열사도, 비극적인 사고로 세상을 떠난 학생도, 뒤늦게 고국에서 인정받은 인재도 모두 그들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캠퍼스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비록 멈춰 서있지만 누군가는 그들을 기억하고 때론 추모하며 그들이 만들어놓은 길들을 따라 걷는다. 한 번쯤 멈춰서서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사진·삽화: 정다윤 기자 dadala7@snu.kr

정다윤 기자  dadala7@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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