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우 사진부장

기억 하나. 지난 5월 우리 학교 정원 조정 동아리가 만든 정원에 사진 취재를 갔다. 넓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여기저기 심어놓은 꽃과 정성스레 가꾼 텃밭이 인상 깊었던 곳이었다. 다만 정원을 만들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텅 빈 곳이 많았고 관리되지 않아 잡초가 무성한 땅도 눈에 띄었다. 열심히 촬영했음에도 빈 부분 곳곳이 사진에 그대로 드러났다. 기자는 그렇게 찍은 사진을 편집국에 제출했지만 사진이 너무 휑해 보인다는 말에 다시 촬영을 나가야 했다. 다시 간 취재에서 기자는 최대한 시선을 낮춰 사진을 찍었고 휑한 땅을 감췄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었지만 사진 속 정원은 실제 정원과 어딘가 달라 보였다.

기억 둘. 올해 3월 11일에는 학생들의 본부점거가 153일 만에 해제됐다. 본부 점거 해제 과정에서 학생과 본부 사이에 많은 갈등이 있었고 『대학신문』은 그날 밤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점거 해제 과정에 있었던 일들을 글 없이 사진으로 먼저 보도했다. 그런데 사진이 올라가자 편집국이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벌어졌다. 학내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소화기 사용이 먼저였는지 소화전 사용이 먼저였는지, 누가 먼저 잘못을 한 것인지 시비가 붙었다. 본부에서는 여러 사진 중 유리한 몇 장의 사진만을 뽑아 ‘우리 모두는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라는 카드뉴스를 만들어 배포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자극적인 수식어와 함께 『대학신문』의 사진을 인용하며 ‘불법’과 ‘폭력’을 강조했다. 글 없는 사진은 수많은 해석의 여지를 남겼고 각종 프레이밍에 쉽게 이용됐다. 사진이 전하고자 했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네 학기째 『대학신문』에서 사진을 찍고 편집하며 나는 저널리즘 사진이 당연히 진실을 전한다고 믿었다. 신문사의 구성원이 아니었어도 그랬을 것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포착한 사진이 진실이 아닐 거란 말은 되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사진은 글보다 객관적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대학신문』의 편집 과정에서 이뤄지는 사진 보정도 철저히 신문 윤리를 지키며 작업했기 때문에 이러한 믿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 칼럼을 쓰며 지난 네 학기를 돌이켜보니 여러 기억이 떠올랐다. 저널리즘 사진이 진실을 전하는 건 당연한 게 아니었다. 우리는 빈번히 사진을 통해 진실을 전달하는 데 실패했다. 때로는 무감각한 윤리의식으로 촬영과정에서 사진에 왜곡을 가하기도 했고 미숙한 보도로 우리가 말하려는 진실이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도 했다.

앞서 살펴본 기억들에서처럼 사진이 진실을 감추거나 전달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흔한 일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구도를 다르게 하는 것만으로도 특정 부분을 강조하거나 가릴 수 있다. 아무리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는다지만 이러한 방법으로 기자의 주관을 개입 시키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첫 번째 기억이 그러한 경우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문에 있어 사진 기자의 양심은 매우 중요하다. 취재 현장에서 자신이 사진에 담아야 하는 진실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부릅뜬 눈으로 진실을 좇아야 한다. 사진을 선정할 때도, 캡션을 달 때도 마찬가지다. 보편타당한 사진을 골라 신문에 실어야 하고 오해의 소지나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 있다면 캡션을 통해 충분히 설명해줘야 한다. 두 번째 기억 속 일들은 캡션을 달고 글로 충분한 설명을 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결국 저널리즘 사진이 제 역할을 하는 건 전적으로 사진 기자와 편집국에 달려있다. 매번 사진부의 구호 ‘너의 눈으로 진실을 보게 하라’고 외치면서 진실을 담지 못한 사진을 싣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본다. 『대학신문』은, 그리고 사진부는 진실을 좇겠다. 판단은 독자 여러분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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