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발효 5년, 그 성과와 한계를 되돌아보다
한미 FTA 발효 5년, 그 성과와 한계를 되돌아보다
  • 이용진 기자
  • 승인 2017.10.22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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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가 정식으로 발효된 지 5년이 흘렀다. 2007년 타결 이후 수차례의 재협상을 거쳐 마침내 2012년 발효된 한미 FTA는 상대국이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인 미국이라는 점에서 전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이를 두고 양국에서는 찬반양론이 극명히 갈렸으며, 특히 우리나라에선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발하는 대규모 촛불시위가 일어났을 정도로 많은 논란을 낳기도 했다. 『대학신문』은 발효 이전 한미 FTA의 핵심 쟁점이었던 농축수산업, 자동차 산업, 서비스 무역, 그리고 ISD 조항에 대해 당시의 전망과 비교해 현주소를 점검해보고자 한다.

한미 FTA 5년이 가져온 변화는?

한미 FTA는 양국 간의 교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무역장벽을 허무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로써 자동차·농축수산물·철강 등 상품 시장에서의 관세 철폐와 더불어 의료·법률 같은 서비스 시장의 개방이 이뤄졌으며, 이는 양국 간의 교역 증대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받는다. 지난 3월 국제무역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인 「한미 FTA 5주년 평가와 시사점」에 따르면, 한미 FTA가 발효된 지난 2012년 이후 우리나라 대외 교역량은 전 세계적 경기 침체로 인해 연평균 3.5% 감소한 반면 대미 교역량은 오히려 연평균 1.7%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덕근 교수(국제대학원)는 “우리나라 같이 무역의존도가 높은 나라에겐 더욱 의미 있는 결과”라고 말했다. 한미 FTA 발효 이후 상대국 수입시장의 점유율 역시 양국 모두 큰 폭으로 상승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김영귀 지역무역협정팀장은 “발효 이전에 비해 대미 수출액은 약 12.5% 증가했는데 이 가운데 1/3 정도인 4% 가량이 한미 FTA의 효과라고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수치만 가지고 한미 FTA가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우선 상대국에 진출해있는 지사와 자국에 위치한 본사의 내부거래도 양국 간의 교역량 집계에 포함되는 등 실적이 부풀려져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귀 팀장은 “미국 기업인 한국GM이 우리나라에서 생산해 미국에 판매하는 물량도 대미 수출로 집계되는 등 수출액이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발효 당시 정부가 홍보했던 만큼 한미 FTA의 효과가 크지 않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해영 교수(한신대 국제관계학부)는 “FTA가 발효되면 GDP가 5.6% 성장하고 34만 개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는 등 장밋빛 전망이 쏟아졌지만 전혀 달성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반면 지금까지의 결과만으로 한계를 이야기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다. 장용준 교수(경희대 무역학과)는 “발효된 지 5년밖에 지나지 않은 데다 관세가 점진적으로 철폐되는 중이기에 아직 관세가 덜 떨어진 종목도 많다”고 지적했다.

1. 우려했던 농업, 피해는 현실화됐나

자동차 업계와 달리 농업계는 한미 FTA로 인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고, 이에 농민들의 반발도 거셌다. 하지만 지난 5년간의 통계만 놓고 보면 이러한 전망은 기우였다는 평가가 주류다. 한미 FTA 발효 이후 미국산 농축수산물의 수입은 오히려 연평균 1.7% 감소했으며 이는 작황 등 미국 현지 상황이 더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라고 분석된다. 한미 FTA가 농업에 끼친 영향에 대해 한국경제연구원 송원근 부원장은 “미국산 농산물에 대한 관세는 장기간에 걸쳐 조금씩 철폐해나가도록 규정해놨기 때문에 당장 우리나라 농업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협상 당시 농민들의 반발을 고려해 쌀은 관세 철폐 항목에서 완전히 제외했고, 오렌지의 주된 수확시기인 9월~2월엔 미국산 오렌지에 계절관세를 부과하는 등 수많은 예외 조항과 보호 장치를 마련했다. 이러한 노력은 한미 FTA가 우리나라 농업계에 미친 피해가 제한적인 원인으로 거론된다.

2008년 광우병에 대한 국민적 공포로 대규모 촛불시위가 일어났을 만큼 관심이 집중됐던 미국산 쇠고기는 얼마나 수입됐을까. 지난 5년간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량은 가파르게 증가해왔지만, 한우 소비의 감소로 이어지진 않았다. 이는 수입산 쇠고기에 비해 가격대가 높아도 한우를 더 선호하는 고정 소비자들이 상당수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분석된다. 국제무역연구원 제현정 연구위원은 “미국산 쇠고기는 한우보단 호주산 등 다른 수입산 쇠고기들과 경쟁했다”고 말했다. 국내 외국산 쇠고기 시장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점유율은 5년 만에 38.9%에서 45.3%까지 늘며 선두인 호주산 쇠고기와의 격차를 크게 줄였다. 김영귀 팀장은 “미국산과 호주산 모두 40%의 관세가 15년간 균등 철폐되는데, 한미 FTA가 먼저 체결돼 미국산 쇠고기가 꾸준히 가격 격차를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수입산 쇠고기 시장에서 미국이 강세를 띠는 이유를 설명했다.

소비자 입장에선 한미 FTA로 인해 보다 다양한 식품을 부담 없이 섭취할 수 있게 됐다. 안덕근 교수는 “예전엔 비싸서 사기 힘들었던 블루베리의 수입이 크게 늘면서 이제는 누구나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가격이 낮아졌다”고 평가했다. 미국산 바닷가재의 수입 또한 연평균 111.6% 증가하는 등 국내에서 거의 생산되지 않는 농축수산물의 수입이 크게 늘었다. 하지만 한미 FTA가 농산물 시장을 과도하게 개방했기 때문에 장기적인 식량안보의 관점에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로 영국 조사기관 EIU가 발표한 우리나라의 식량안보지수 순위는 2012년 21위에서 2015년 25위로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박형대 정책위원장은 “이전까지의 다른 통상협정에 비해 과도한 수준으로 농업시장을 개방한 한미 FTA가 식량자급률의 붕괴를 촉발시켰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2. 최대 수혜주로 꼽히는 자동차 업계, 실상은 과연

발효 이전부터 자동차 업계는 한미 FTA의 최대 수혜주로 꼽히고 있는데, 이는 사실일까. 우리나라 자동차 업계의 대미 수출액 통계만 보면 사실인 것처럼 보인다. 지난 5년간 자동차의 수출 증가율은 연평균 12.4%로 타 업계와 비교해 압도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하지만 보다 깊이 통계를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미 FTA는 미국이 우리나라 자동차에 대한 2.5%의 관세를 철폐하는 시기를 2016년까지 유예하도록 규정했는데, 한국 자동차의 대미 수출은 지속적으로 증가해오다 정작 관세가 철폐된 2016년에는 소폭 하락했다. 따라서 우리나라 자동차의 대미 수출 증가는 FTA가 아닌 다른 요인으로 설명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최원목 교수(이화여대 법학과)는 “그동안의 수출 증가는 한미 FTA보단 미국 시장에서 우리나라 자동차의 브랜드 가치가 상승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현대자동차 등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들이 미국 현지 공장에서 생산되는 물량을 늘리는 추세인데, 이 경우 원산지가 미국으로 분류돼 한미 FTA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이러한 점에서 한미 FTA가 우리나라 자동차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의견이 주류를 이룬다.

더불어 한미 FTA는 자동차 부문에서 미국에 더 유리하게 규정돼 있고, 이 때문에 실질적으론 미국이 더 큰 이익을 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미국은 발효 이후 지난 4년간 한국 자동차에 대한 2.5%의 관세를 유지한 반면, 우리나라는 발효 즉시 미국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8%에서 4%로 인하했다. 김영귀 팀장은 “미국 시장이 상대적으로 커서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들에게 더 유리한 것 같지만, 수출 증가율로 따져보면 미국이 훨씬 이익을 봤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5년간 우리나라 자동차의 수출액이 연평균 12.4% 증가하는 동안 미국 자동차의 수출 증가율은 연평균 37.1%에 달했다.

3. 서비스 무역 적자는 어디에서 비롯됐나

우리나라가 꾸준히 흑자를 기록하는 자동차·철강 등 상품 교역과는 달리 의료·법률 같은 무형의 서비스 교역에서는 지속적으로 적자를 내고 있다. 서비스 부문 대미 무역적자는 한미 FTA 발효 이전 109.7억 달러에서 2016년 140.9억 달러를 기록하며 그 폭이 확대되고 있으나 당초 우려에 비해선 선방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태호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FTA 발효 이전에도 미국 유학생 및 관광객 증가로 우리나라의 서비스 무역수지는 꾸준히 적자를 기록해왔다”며 “한미 FTA는 미국 영리병원의 설립을 경제자유구역 내에서만 허가하고 방송에 대해선 간접투자만 허용하는 등 서비스 부문을 제한적으로 개방해, 서비스 무역적자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서비스 무역 적자의 주된 항목은 지식재산권 사용료다. 한미 FTA가 지식재산권의 보장 기간을 기존 50년에서 70년으로 확대시켜 발효 이후 사용료 지불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김영귀 팀장은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로 인해 사용료가 크게 늘었으나 장기적으로 보면 창의적 지식재산의 창출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의 일환으로 도입된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제도’는 복제약품의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제약업계의 특성상 큰 관심을 끌었다. 이 제도는 복제약품 판매 시 미리 특허권자에게 허가를 받고, 만약 특허권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최장 9개월간 시판을 금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제도’의 시행이 한미 FTA 발효 이후 3년간 유예된 덕분에 시행되기 전 국내 제약사들이 미리미리 허가를 받아둬 아직까지 큰 타격은 없었다. 하지만 여태껏 다국적 제약사들의 신약을 복제해 판매하는 방식에 의존해오던 국내 제약사들이 장기적으로는 막대한 특허권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의료비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김영귀 팀장은 “미국산 신약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이 제도가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을 줄 것”이라며 신약 개발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4. ISD, 우려는 그저 기우였을까

ISD(Investor-State Dispute, 투자자-국가소송제도)는 해외 투자자가 상대국의 정책으로 인해 손실을 입었을 경우 제3의 중재기관(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에 제소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한 제도로, 협상 초기부터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꼽혀왔다. 현재까지 한미 FTA 상에 규정된 ISD에 의해 우리 정부가 직접적으로 제소된 바는 아직 없다. 하지만 ISD가 그 존재만으로 당국자들이 정책을 펴는 것을 위축시키는 ‘겁주기 효과’가 상당하다는 지적이 많은데, 실제로 지난 2013년 미세먼지를 줄이고자 도입된 저탄소차량지원제도의 시행이 ISD 때문에 유예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배기량이 큰 대형차 위주의 미국 자동차 회사는 가격경쟁력 측면에서 불리해져 ISD 조항으로 제소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재 과정에서 정책의 정당성보다는 해외 투자자의 실제 피해 여부를 중점적으로 고려하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선 더욱 신경 쓸 수밖에 없다.

한미 FTA 상의 ISD 조항은 소외계층 및 중소기업 보호를 위한 공공정책에 한해 예외를 둘 수 있다고 규정하지만 이조차 명확하지 않아 해석에 이견이 있을 여지가 충분하다. 김영귀 팀장은 “우리나라 시장이 막대한 ISD 제소비용을 감수할 만큼 크지 않아 아직까지 제소된 바가 없을 뿐 제소될 위험을 안고 있는 정책들이 많다”고 말했다. ISD가 미국 같은 강대국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여전하다. 국제법 전문 정하늘 변호사(법무법인 세종)는 “미국을 대상으로 하는 소송은 재판부를 구성하는 인원이 강대국에 편중되는 등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지금까지의 ISD 소송에서 단 한 차례도 패소하지 않았다. 특히 사드 보복 사태에 한국 기업들이 중국 정부의 보복을 우려해 한중 FTA 상의 ISD를 활용하지 못한 사례처럼 향후 사업을 이어나가야 하는 우리 기업 입장에서 강대국을 대상으로 제소하기엔 부담이 따른다.

이와 같은 우려에도 ISD 조항은 해외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필수적인 장치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안덕근 교수는 “우리나라 기업들 역시 캄보디아, 베트남과 같은 개발도상국에 투자할 때 가장 먼저 ISD의 보장 여부를 고려한다”고 지적했다. 박태호 전 본부장도 “ISD는 해외 투자자들에게 ‘안심하고 들어와서 투자하라’는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향후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과 FTA를 체결할 때 ISD를 보장받기 위해서라도 한미 FTA 상의 ISD 조항을 무조건 반대할 순 없다. 무엇보다 여론의 예상과 달리 한미 FTA에 규정된 ISD 조항이 국제적인 기준과 비교해 우리나라에 불리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정하늘 변호사는 “미국계 펀드회사인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제소할 때 한-벨기에 투자협정의 ISD 조항을 활용했던 것도 다른 나라와의 ISD 조항과 비교해 한미 FTA의 ISD로는 제소가 쉽지 않은 편에 속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미 FTA의 ISD 조항은 제소하기 위해 충족시켜야 하는 최소 요건이 엄격하고 절차가 까다롭다고 지적된다.

재협상에 대처하는 우리의 대응 방안은?

후보 시절부터 한미 FTA가 미국에 불리한 통상협정의 대표적 사례라며 재협상의 필요성을 역설해온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한미 FTA 재협상을 둘러싼 논란이 점점 커졌다. 올여름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가 거론된 데 이어 최근 미국 무역대표부가 재협상 논의를 위한 공동위원회 개최를 요구해 두 차례의 특별회의가 열리는 등 한미 FTA 재협상 논의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에 『대학신문』은 한미 FTA가 재협상에 이르기까지의 배경을 살펴보고, 이 국면에서 우리나라가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모색해보고자 한다.

◇과연 한국에만 도움이 된 협정인가=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FTA가 일방적으로 한국에만 유리하게 규정됐기 때문에 미국이 지속적으로 무역 적자를 보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수치적으로만 따지면 한미 FTA 발효 이후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 흑자 폭이 지속적으로 확대돼왔으며, 이에 따라 미국의 무역 적자는 꾸준히 증가해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박태호 전 본부장은 “미국 무역 수지가 적자인 것은 한미 FTA의 영향보다는 지난 수년간 미국의 경기가 좋아서 소비가 늘었기 때문”이라 분석했다. 실제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가 발표한 FTA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한미 FTA를 체결하지 않았을 경우 미국의 대(對)한 상품무역은 440억 달러의 적자가 예상됐지만 실제 적자는 2015년 283억 달러에 그쳤다는 점에서 한미 FTA가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를 완화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미 FTA를 자세히 살펴보면 오히려 미국에 유리한 측면이 더 많다. 김영귀 팀장은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 및 철강은 한미 FTA 발효 이전부터 아예 무관세거나 낮은 수준의 관세를 적용받았기 때문에 그 효과가 미미했던 반면, 미국은 농산물 등의 관세가 낮아지며 큰 이익을 봤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 곡물협회(USGC)가 한미 FTA가 미국 농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하는 등 한미 FTA에 대한 미국 내 긍정론도 적지 않다.

◇재협상, 위기인가 기회인가=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재협상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이유는 그의 주요 지지층이 과거 제조업의 호황으로 번영했지만 FTA와 같은 자유무역으로 유입된 값싼 외국산 제품들로 인해 몰락한 러스트 벨트 지역의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을 달래기 위해 보호무역 기조를 내세우고 있는데, 이번 한미 FTA 재협상 요구 역시 그 일환으로 평가된다. 김영귀 팀장은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한미 FTA 재협상에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전문가들은 이번 재협상 국면이 우리에게 위기가 아닌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최남석 교수(전북대 무역학과)는 “미국의 주된 목표는 당장 가시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자동차·철강·기계 등 제조업 분야에서의 단기적인 무역수지 호조”라며 “이런 부분에서 한 발 물러서는 대신, 서비스 무역이나 ISD 조항에서 양보를 이끌어낸다면 장기적으론 우리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협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요구해야 할까=그렇다면 한미 FTA 재협상이 현실화된 지금, 우리 정부는 어떤 자세로 재협상에 임해야 할까. 제현정 연구위원은 “미국의 명분을 살려주며 개정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수세적 대응을 주장했으며, 최원목 교수는 “전선을 확대해 유통업계의 과도한 개방 등의 독소조항을 제거해야 한다”며 새로운 협정 수준의 적극적인 재협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렸지만 공통적으로 ISD 조항에 대해선 다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김영귀 팀장은 “ISD 제소 전 단계에 투자국 정부에 문제를 제기하고 협의할 수 있는 제도를 신설한다면, 정부가 제소당할 위험을 줄일 뿐만 아니라 막대한 소송비용을 아낄 수 있어 투자자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일각에서는 EU와 캐나다 간의 무역협정에서 규정한 것처럼, 양국의 관계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 법원을 설치하는 방향으로 개정하면 ISD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제안도 나온다. 안덕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도 ISD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요구한다면 개정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기업과 달리 한미 FTA를 잘 활용하지 못하는 중소기업에 배려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미 FTA의 관세 인하 혜택을 적용받기 위해선 원산지가 한국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한 복잡한 절차와 서류들이 필요한데, 중소기업은 인력, 예산 부족으로 이를 위한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한미 FTA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김영귀 팀장은 “중소기업들에 한해서 원산지 증명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별도의 보호 조항을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개방 수준을 되돌리지 못한다고 규정한 래칫(ratchet) 조항을 개정해 일부 피해가 심각한 산업의 개방을 완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거나, 향후 개성공단이 재가동되면 여기서 생산되는 제품도 한국산으로 인정해 한미 FTA의 관세 인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처럼 사회 각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한미 FTA는 이제 양국의 통상관료들의 손에 맡겨졌다. 과연 한미 FTA가 국민들에게 더 큰 효용을 가져다주는 방향으로 개정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삽화: 손지윤 기자 unoni0310@snu.kr 강세령 기자 tomato94@snu.kr

레이아웃: 조수지 기자 s4kribb@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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