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젠트리피케이션의 대안을 점검하다

개성있는 작은 가게들이 들어선 샤로수길을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최근 서울대입구역에서 낙성대역에 이르는 이른바 ‘샤로수길’이 관악구 주민은 물론 시민들 사이에서 떠오르는 상권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원래 재래시장이었던 샤로수길은 인근 거주민들만이 찾는 평범한 골목에 불과했지만, 강남 일대의 비싼 임대료에 못 버틴 젊은 상인들이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한 이곳에 자리를 잡으며 변화의 조짐이 일었다. 프랑스식 홍합 음식점, 드립커피 전문점 등 샤로수길의 작지만 개성이 넘치는 가게들이 조금씩 입소문을 타면서 강남, 신촌, 홍대 등 비슷비슷한 번화가들에 질린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샤로수길을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임대료나 보증금이 급등해 이런 작은 가게들이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대학신문』은 샤로수길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제도적·공동체적 대안을 점검해보고자 한다.

재주는 상인이 부리는데, 돈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상류층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gentry’에서 파생된 단어로, 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되며 중산층이 대거 유입되고 이에 따라 원주민들이 급등한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내몰리는 현상을 일컫는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거나 미디어에 노출되는 경우뿐만 아니라 정부나 지자체의 사업으로 구도심이 활성화되면서 발생하기도 한다. 예컨대 마포구 연남동에 정부와 구청이 시민들의 휴식공간을 만들고자 경의선 숲길공원을 조성했는데, 이로 인해 임대료가 엄청나게 상승하면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이 일대에서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박태원 교수(광운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는 “‘관(官)트리피케이션’이라는 단어가 생길 만큼 지자체가 특정 지역을 띄워서 관광객이나 매출액을 늘리기 위해 온갖 지원과 홍보에 나서는 것이 오히려 젠트리피케이션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활성화된 구도심은 투기자본의 유입으로 과열되면서 임대료가 치솟게 된다.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 공기(활동명) 활동가는 “부동산 투기의 목적으로 차익투자를 노리고 임대료를 더 많이 받기 위해 원주민들을 내쫓고 프랜차이즈 매장을 입점하도록 하는 임대인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지난 8월 서울대입구역 인근의 한 빌딩에선 임대인이 재건축을 이유로 임차인들에게 퇴거를 요청했는데, 이 같은 요구가 높은 임대료의 점포를 입점시켜 매매가를 끌어올리고자 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장기적으로 상권을 몰락시킨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는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이강훈 변호사는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원주민들의 개성 있는 가게들이 내몰리고 급등한 임대료를 감당할 여력이 되는 거대 상업자본의 프랜차이즈 매장이 그 자리를 대체하면서, 각 상권의 특색이 사라지는 백화현상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백화현상이 발생하면서 고유한 특색이 사라진 상권에 소비자들은 금방 질리게 되고, 이에 따라 상권이 다시 쇠락하는 악순환을 낳게 된다. 실제로 홍대 역시 독특한 예술가들의 활동 터전으로 주목받았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이 급격하게 진행되며 예술가들의 본고장이라는 위상을 합정 등 인근 지역에 넘겨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태원 교수는 “사람들의 취향이 다양한 만큼 상권 역시 다양화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 각 상권의 정체성을 지켜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원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빼앗긴다는 점에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상인들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문제다. 현재 젠트리피케이션이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마포구 망원동의 조영권 망원동주민회 대표는 “오랫동안 장사한 많은 분들이 임대료 상승을 버티지 못하고 쫓겨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영권 대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망원동 상점 20곳의 보증금은 평균 58%, 월세는 24.9% 상승했다. 샤로수길에서 분식집 ‘참새방앗간’을 운영하고 있는 A씨 역시 “지난 2~3년 사이에 임대료가 평균적으로 2배 이상 뛰어 우리도 몇 년 후에 떠날 예정”이라고 말했다.

상인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상가임대차보호법

이와 같이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현재 상가임대차보호법(상가법)이 마련돼 있지만, 실질적인 보호가 이뤄지기엔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임대인의 무분별한 소유권 행사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상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토지+자유연구소 조성찬 연구위원은 “현행 상가법상 상가의 임차권은 물권이 아닌 채권으로 분류돼 임차인이 자신의 권리를 보호받기 어렵고, 재산권의 행사가 임대인에게 집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임대인이 건물의 재건축을 추진할 경우 임차인은 이를 따를 수밖에 없다. 김상철 전 노동당 서울시당위원장은 “재건축 추진 과정에서 임차인의 동의를 얻도록 하는 등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재산권 행사에 대한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가법의 문제점을 조항별로 살펴보자면, 현재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임대차계약을 의무적으로 갱신하도록 청구할 수 있는 기간이 5년으로 제한돼 5년이 지나면 상인들은 언제 퇴거해야 할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황에 놓인다는 점이 가장 먼저 지적된다. 공기 활동가는 “상인들의 입장에서 5년은 정착하는 시기로, 인테리어비 같은 초기 시설투자비를 회수하기에도 모자라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계약갱신 청구기간을 10년으로 늘리거나 아예 제한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는 또 “적절한 사유가 있으면 임대인이 계약을 거절할 수 있도록 이미 법적 장치가 마련돼 있으므로 계약갱신 청구기간에 제한을 두지 않아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연간 최대 9%까지 임대료를 올릴 수 있도록 허용한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공기 활동가는 “임대인은 월세와 보증금을 각각 최대 9%씩 올릴 수 있는데, 물가상승률을 고려할 때 이는 지나치게 높은 수치”라고 말했다. 게다가 이는 지역별 상권 규모나 물가 등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인 수치기 때문에 임대료 상승률의 상한선을 지역별로 다르게 설정해야 할 필요성 또한 제기된다.

한편으론 환산보증금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환산보증금 제도는 보증금에 월세의 100배를 더해 계산한 환산보증금이 지역별 특정 상한선을 초과하면 해당 임차인이 영세하지 않다고 판단해 상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도록 규정한 제도다. 서울시 상가임대차 분쟁조정위원회 황규현 담당관은 “주택임대차계약은 타워팰리스 임차인도 보호해주는데, 왜 상가임대차계약은 보호 대상을 굳이 제한해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서울의 경우 환산보증금이 4억 원을 초과하면 상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데, 전반적으로 임대료가 워낙 높은 서울의 특성상 많은 영세 상인이 상가법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이외에 현재 서울시에서만 운영되고 있는 상가임대차 분쟁조정위원회를 전국적으로 확대해 관련된 분쟁을 재판까지 가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제안도 존재한다.

젠트리피케이션, 힘을 모으면 막을 수 있을까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해 현재 우리 사회 곳곳에선 상가법과 같은 제도적인 해결책 외에도 다양한 공동체적 대안이 시도되고 있다. 그 중 임대인이 임대료 인상을 자제하기로 약속하면 지자체 차원에서 여러 혜택을 제공하는 상생협약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성동구의 경우 성수동 카페거리가 뜨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의 조짐이 보이자 2015년부터 상생협약 체결을 추진해왔는데, 현재까지 관내 거주 임대인의 90% 이상이 협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이 상생협약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조성찬 연구위원은 “상생협약은 합의만 된다면 구체적인 조항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그만큼 구속력이 없다”며 “성북구 장수마을의 경우에도 상생협약을 체결하고 지자체가 많은 예산을 지원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외에 신촌, 홍대 등지에서도 비슷한 협약이 체결됐으나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한 채 흐지부지된 전력이 있다. 이에 대해 황규현 담당관은 “협약을 위반할 때 내야하는 위약금이 임대료를 올림으로써 얻는 이익과 비교해 미미해 협약을 어길 유인이 많고, 건물주가 바뀌면 유지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특히 임대료가 오를 여지가 별로 없다고 예상되는 건물들은 주로 협약에 참여하는 반면, 향후 임대료 급등이 예상돼 실질적으로 협약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건물의 건물주들은 협약에 소극적이라는 점에서 그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비판이 있다. 박태원 교수는 “임대인이 협약을 준수함으로써 생기는 손실을 지방세 감세 등 실질적인 혜택을 통해 메워줌으로써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상인들이 공동으로 협동조합을 구성해 상가를 매입하고 이를 공유하는 상가협동조합 역시 또 다른 대안으로 거론된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마일엔드 지역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 조짐이 보이자 주민들이 상가협동조합을 구성해 예술가들에게 임대료를 받고 공동 작업실을 제공함으로써 이들이 내몰리는 것을 방지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이 시도가 폭넓게 실현되기엔 현실적인 제약이 따른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황규현 담당관은 “공동으로 건물을 구매한다고 하더라도 그만큼의 금액을 부담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진 상인들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따라서 정부가 이를 보조하거나 아예 정부 차원에서 상가를 매입해 상인들에게 임대하는 등 공공투자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이미 서울시에서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토지를 매입하고 협동조합과 계약을 맺어 이를 개발해 상가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하거나 상가매입비를 지원하는 사업이 진행 중이다. 이강훈 변호사는 “기존의 사유지를 매입하려면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므로, 도시정비사업으로 공유지를 확보해 공유상가로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궁극적인 해결을 위해선 지대가 소수의 개인에게 귀속되는 분배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성찬 연구위원은 “상가의 가치는 그곳에서 상인들이 열심히 장사하고 지역사회도 함께 노력함으로써 창출되는데, 사회적으로 창출되는 수익이 온전히 임대인에게만 돌아가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상철 전 위원장은 “젠트리피케이션이 비교적 자연적으로 발생한 홍대나 가로수길과는 달리 연남동 일대는 세금이 투입된 관 주도의 공공개발이 주된 이유였으므로, 적어도 이와 같이 창출된 임대인들의 지대는 일정 부분 환수해 임차인들의 부담을 덜어주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근본적으로 임대인과 임차인이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 것이 젠트리피케이션 해결의 첫걸음이다. 박태원 교수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원주민들이 쫓겨나면 정기적으로 상권을 경쟁력을 잃고 쇠락하게 된다"며 "이는 임대인에게도 분명히 손해인 만큼 임차인을 사회적, 경제적 공동체로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신촌에서는 과도한 상업화로 상권이 침체되면서 점포가 입점하지 않은 상가들이 크게 늘어나는 등 건물주들 역시 어려움을 겪었다. 똑같은 모습의 동네들 뿐인 회색빛의 이 도시에서, 샤로수길을 비롯한 여러 특색 있는 지역들이 과연 그 고유한 빛깔을 젠트리피케이션으로부터 지켜냄으로써 무지갯빛으로 물들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 박성민 기자 seongmin41@snu.kr

삽화: 손지윤 기자 unoni0310@snu.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