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을 기점으로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총 주민등록 인구의 14.02%로 국제연합의 기준에 의해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고령 인구의 지속적 증가는 모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 환경에 대한 고민을 증폭시켰다.

지난해 12개의 복지시설에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을 적용한 데 이어 서울시는 누구에게나 안전하고 편리한 보행 환경을 조성하고자 올해 3월 ‘유니버설디자인 통합 가이드라인’을 완성했다. 가이드라인은 ‘편리’ ‘안전’ ‘쾌적’ ‘선택 가능’을 기본 원칙으로 삼아 가로, 공원과 광장, 그리고 공공건축물을 대상으로 디자인의 적용 범위와 구체적 지침을 제시했다. 서울시 디자인정책과 디자인기획팀 민병아 주무관에 따르면 서울시는 매년 초 선정된 개보수 혹은 준공사업에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며, 첫 시범사업지로 선정된 성동구 보건소를 연말까지 완공할 예정이다. 이에 『대학신문』에선 유니버설 디자인의 개념을 짚어보고 우리 주변에 도입된 유니버설 디자인의 사례들을 프레임에 담아봤다.

모든 사람을 배려하는 디자인

‘유니버설 디자인’은 사람들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디자인으로 나이, 신체, 성별, 국적, 질병 등과 관계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환경·정보·서비스를 구현하는 것이다. 미국, 유럽, 일본 등 해외에서 먼저 발달한 유니버설 디자인은 80년대 후반 국내에서도 그 개념이 소개되면서 점차 관심의 대상이 됐다. 학계를 중심으로 건축에 유니버설 디자인을 접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생겼고 이후 사회 전반에 유니버설 디자인의 철학을 반영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동안 제품과 시설 대부분은 평균적인 이용자의 편의에만 맞춰 설계됐다. 따라서 사회가 임의로 설정한 표준에 부합하지 않는 많은 사람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이런 구조를 탈피한 것이 바로 유니버설 디자인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의 개념을 도입하면 처음 계획 단계에서부터 다양한 사람들을 모두 고려할 수 있다. 그 결과 모두가 시설을 이용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사용자의 불편함을 최소화하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 기존의 디자인이 ‘보통’에 맞춰 설계됐다면 유니버설 디자인은 그 ‘보통’의 틀을 깨뜨린 것이다. 덕분에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와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 유모차를 몰고 가는 아이 엄마 등 사회 구성원 모두의 접근성을 보장할 수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의 핵심은 사용자의 폭을 보다 넓히는 것으로 그 바탕에는 시설, 제품, 정보,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모두를 고려하는 인식’이 깔려 있다. ‘정보화 기본법’에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한 전문가 이성일 교수(성균관대 시스템경영공학과)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베리어프리(Barrier-free) 디자인*에서 더 나아간 형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장벽이 있는 환경에 무언가를 덧대고 추가 장비를 도입하는 방법이 베리어프리라면, 처음부터 환경 내에 장벽이 없도록 하는 것이 유니버설 디자인”이라고 설명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대상자 폭을 늘릴 뿐만 아니라 이용절차를 단순화하는 등 감각적 편의와 즐거움까지 고려해 사용자 친화적이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도입됐다가 사회에 녹아든 예시부터 보수작업을 통해 새롭게 탈바꿈한 거리의 모습까지 유니버설 디자인은 다양한 형태로 적용된다.

주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은 의외로 일상적이고 평범한 경우가 많다. 일례로 오늘날 냉·온수를 별도로 조절하는 원형 수도꼭지 대신 레버형 수도꼭지가 보편화됐다. 이 일체형 디자인은 사용자가 손쉽게 온도를 조절할 수 있어 점차 확산됐다. 큰 길거리의 횡단보도에서 남은 시각을 알려주는 신호등 역시 유니버설 디자인의 예다.(사진 ①) 화장실 양변기와 비데, 지하철 손잡이(사진 ②), 심지어 컴퓨터의 ‘실행취소(Ctrl+Z)’ 기능에도 유니버설 디자인이 접목됐다. 모두 기존에 노인, 장애인 등 소수 이용자의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개발된 디자인이 편리함을 인정받아 보편화된 것이다.

사진①: 보행자 형상의 불빛 우측에 위치한 역삼각형 형태를 통해 점차 줄어드는 시각을 도식화했다. 남은 소요시간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 편리하다. 숫자를 알아볼 수 없는 이용자도 남은 시각을 파악해 횡단보도를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돕는다.
사진②: 지하철 5호선 승차칸의 손잡이는 그 높이가 서로 다르다. 이 ‘높낮이 손잡이’ 역시 유니버설 디자인의 범주에 해당된다. 시민단체 ‘희망제작소’에 의해 2007년 제안된 이 손잡이는 지하철 손잡이보다 약 10cm 가량 낮은 위치에 매달려 키 작은 승객을 배려한다. 교통약자 석에는 이보다 낮은 손잡이를 더 설치해 임산부, 노약자, 장애인 등 교통약자까지 그 접근성을 향상시켰다.

사회적 약자도 별도의 설비를 사용하지 않고 대다수 사람과 같은 제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유니버설 디자인의 철학을 입힌 예도 있다. 음료 캔 뚜껑에 있는 점자 표시는 캔 디자인을 확인할 수 없는 시각장애인에게 음료 정보를 제공한다.(사진 ③) 그 결과 동일한 캔을 집었을 때 이것이 ‘음료’라는 사실을 지각할 수 있는 인구가 5% 증가한다. 이 작은 변화 덕분에 더 많은 사람이 동일한 캔으로 음료를 사 마실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일부 스마트폰의 ‘접근성’ 기능은 같은 제품을 이용할 수 있는 구매자 폭을 확대한 유니버설 디자인에 해당한다. 아이폰의 ‘손쉬운 사용’ 기능은 글자 크기 확대, 색상 반전 등 디스플레이 조절, 음성 지원 및 자막 서비스 등을 통해 다양한 사용자를 고려했다.

기존에 있던 시설 및 환경을 보수하면서 유니버설 디자인을 도입한 경우도 있다. 행촌 성곽 마을에 위치한 행촌이음길(통일로12길)은 지원 사업을 통해 공공 가로 및 건축물에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한 예다.(사진 ④) 한양도성에서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에 이르는 이 길은 과거 도로 폭이 좁아 차도와 보행로의 구분이 없었다. 가파른 오르막길이 대부분인데 인근 초등학교에 통학하는 아이들과 고령층의 사용 빈도가 높아 사고의 위험이 컸다. 새 단장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서울시는 이 길에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했다. 얕은 단차와 볼라드로 보행로를 확보하고, 초등학교 인근 횡단보도에 ‘옐로우존’을 설치했다.

*베리어프리(Barrier-free) 디자인: 사용자가 제품이나 시설을 이용할 수 없도록 제약을 거는 환경 요소를 제거하는 디자인.

사진③: 관악구 한 대형마트 가판대에 놓인 캔 음료. 뚜껑에 ‘ㅇㅡㅁㄹㅛ’를 의미하는 점자가 표시돼 있다. 다만 아직까지 캔음료의 점자표시는 음료와 주류만을 구분하고 있다. 실제로 탄산음료, 이온음료, 카페인음료 등을 담은 캔에는 모두 ‘음료’를 뜻하는 같은 점자가 찍혀있다. 캔에 든 음료가 펩시인지 코카콜라인지까지 알 수 있도록 점자가 표시하는 내용의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사진④
사진④(위아래 2개): 서울 종로구 행촉 성곽마을에 적용된 유니버설 디자인. 더 많은 이용자를 고려해 보행환경을 개선했다. 얕은 단차를 둬 보도와 차로를 구분하고, 길을 따라 노란색과 검정색의 뚜렷한 색채대비를 둔 볼라드를 설치해 보행로를 확보했다. 독립문 초등학교 정문의 ‘옐로우존’은 횡단보도를 지나는 운전자의 경각심을 높였다. 볼라드의 선명한 ‘웃음표시’가 시야에 들어온다.

서울대는 유니버설한가

학내에는 유니버설 디자인이 얼마나 도입됐을까?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중앙도서관 관정관(62-1동)과 법학관2(72동), 우천법학관 진입로(사진 ⑤) 등은 사용자를 고려해 설계된 편이다. 2015년 신설된 관정관의 2층 출입로는 단차 없는 경사로가 자동문으로 이어져 장벽 없이 중앙 엘리베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 열람실 내에는 휠체어 사용자가 이용할 수 있는 좌석이 마련돼 있고, 모든 계단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도블록과 점자 안내문이 부착된 난간이 배치돼 있다. 자연대(500동) 일부 출입구, 해동학술관(32-1동), 유전공학연구소(105동) 등에도 단차를 없앤 진입로와 자동문이 설계돼있다.

그러나 『대학신문』이 둘러본 관악캠퍼스는 충분히 ‘유니버설’하지 못했다. 기존 시설물의 경우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과 같은 법적 기준을 만족하지 못한 곳이 많다. 계단이 시작되는 지점과 끝나는 지점의 0.3m 전면에 계단의 폭만큼 점형블록을 설치하거나 바닥재의 질감을 다르게 하도록 지시하는 법적 지침과 달리, 많은 건물에서 보행 장벽이 될 수 있는 계단에 별다른 설비가 돼있지 않다. 심지어 주출입구에 경사로가 없는 등 캠퍼스 곳곳에는 장벽이 남아있다. 시설 리모델링과 재건축이 이뤄져 왔지만 유니버설 디자인이 고려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올해 재정비된 정문 진입로(사진 ⑥)는 행정관까지의 보행로만 보수돼, 나머지 순환도로에도 노후한 마감재의 보수, 보행로 폭의 확보 등 변화가 필요하다.

사진⑤: 법대 우천법학관 진입로에는 계단과 경사로가 모두 설치돼 오르막의 접근성을 높였다.

사진⑥: 정문에서 행정관까지 이어지는 순환도로 진입로가 재정비됐다. 보행로의 보수작업은 전문 디자인업체와 협력 하에 진행됐다. 빈틈을 최소화해 보도블럭을 깔았고 배수로와 맨홀, 가로수 등은 보행을 방해하지 않도록 최대한 보도의 가장자리에 배치됐다.

가장 큰 문제는 학내 위생시설에서 발견할 수 있다. 캠퍼스 내 많은 건물에는 장애인 화장실이 없다. 특히 인문대(2~8동)에선 오히려 다목적 화장실이 갖춰진 건물을 찾는 것이 더 어렵다. 비교적 최근에 신축된 건물의 장애인 화장실도 법적 기준에 맞추기 급급했다. 아시아연구소(101동), 예술계복합교육연구동(74동) 등에는 ‘넓은 출입구와 자동화 편의시설이 설비된’ 다목적 화장실이 건물 1층에만 존재한다. 모두 2층 이상의 고층건물로 타 층에서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 층간이동을 해야 한다. 사범교육협력센터(12동)와 사범관3(11동)에는 2층에도 장애인 화장실이 있지만 법적 기준인 유효 폭 0.8m 이상의 화장실 출입구나 사용 여부를 알 수 있도록 불이 켜지는 시각설비조차 확보되지 못한 실정이다. 공학관2(31동)도 건물 내 유일한 1층 장애인 화장실이 기존 공간에 조성돼 좌변기 옆 거치대 등 일부 설비만 제한적으로 도입했다. 따라서 ‘설비와 대조되는 벽 마감재, 다양한 이용자를 고려한 위생설비’ 등 유니버설 디자인 가이드라인이 권장하는 다목적 화장실의 조건들을 충족하지 못했다. 농생대(200동)에는 매 층 남녀 장애인 화장실이 있지만, 가이드라인이 지양하는 ‘법적 기준에 의해서만 설치된 차가운 느낌의 장애인 전용화장실’의 모습을 탈피하지 못했다.(사진 ⑦) 화장실 위치 안내사인, 남녀화장실 표시 등에 역시 유니버설 디자인이 고려되지 않았다.(사진 ⑧) 이주희 씨(지구환경과학부·16)는 “알아보기 힘든 일부 화장실 표식은 사용자의 가독성을 더 고려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장애인 화장실’이라는 명칭을 사용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사용할 위생시설을 구분했다는 점에서 다목적 화장실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처럼 대다수 학내 환경에는 ‘유니버설 디자인’의 철학에 따라 이용자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못했다. 시설기획과 홍승우 주무관은 “신·증축사업에 대해서는 법적 기준에 맞춰 설계가 진행된다”며 “장애인 협회 등 다양한 심의기구로부터 허가를 받아 증축이 이뤄진다”고 밝혔다. 유니버설 디자인 가이드라인과 같은 권장 사항에 대한 세부적인 계획은 부족하며 지적사항이 나왔을 때 그에 대한 보수·보완이 되는 셈이다.

사진 ⑦
사진⑦(위아래 2개): ‘조금 부족한’ 다목적 화장실. 농생대(200동)에 위치한 장애인 화장실(위) 자동문은 끝까지 다 열리지 않는다. 법적 기준만 만족해 ‘차가운 느낌의 장애인 화장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예술계복합교육연구동(74동(아래)에 위치한 장애인 화장실은 유니버설 디자인 권장사항에 조금 못 미친다. 내부 공간이 비좁고 화장실 사용 여부를 표시하는 설비가 마련돼있지 않다.
사진⑧
사진⑧(위아래 2개): 안내 표식의 크기가 작아 인지하기 어렵고, 화장실 출입구 주변 벽 또는 천장 마감재와의 차이가 없어 시인성이 부족하다.

유니버설 디자인, 사회를 품다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지만 진정한 ‘유니버설’ 사회를 구축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기존 환경에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성일 교수는 “이미 조성된 시설 내에서 베리어를 없애게끔 제조, 보수하고 부가적인 장치를 덧붙이는 작업에는 제약이 따른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경사로를 설치해야 하는 공간이 좁을 시 유니버설 디자인 가이드라인이 권장하는 완만한 기울기를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환경상 제약으로 인해 설치된 급격한 기울기의 경사로는 또 하나의 장벽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건설 또는 생산 초기 단계부터 장벽을 제거한 공정한 디자인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이 교수는 “유니버설 디자인이 퍼지려면 먼저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전환이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히려 비용을 걱정해 유니버설 디자인을 포기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덧붙였다. 제품 생산 시 기업체는 분명 제품 디자인을 고려하지만, 더 나은 디자인으로 구매층이 증가하는지는 모호하다. 그러나 유니버설한 제품은 사용 가능한 구매층이 늘어남에 따라 ‘확실한’ 고객을 더 확보할 수 있다. 추가 비용이 들 것을 우려해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한 투자를 꺼리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도 유니버설 디자인은 환영받고 있다. 지난해 유니버설디자인 국제세미나에서 ‘시민이 체감·공감하는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해 발표한 송파 장애인솔루션자립생활센터 김선이 사무국장은 “모두를 위한 디자인에 대한 고민은 자립하고자 하는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데에서 출발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중증장애인의 탈시설과 자립을 돕고 있는 그는 사회 기반 시설의 사용자 폭을 넓힌다는 점에서 서울시의 가이드라인 제정에 긍정적이었다. 이주희 씨는 “인간의 건강한 삶, 지속가능성, 행복 등을 고려한 디자인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인 것 같다”고 유니버설 디자인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특히 “오르막이 심한 관악캠퍼스에 경사로가 부족하고, 강의동 출입문이 너무 무겁거나 한쪽 방향으로만 열리는 등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다”며 “학내에 유니버설 디자인이 지금보다 더 도입돼야한다”고 말했다. 서울대에서도 기존의 시설환경이 갖는 ‘장벽’을 없애고, 나아가 설계 단계부터 학내 다양한 구성원 모두를 배려한 유니버설 디자인의 도입이 필요하다.

오늘날 휠체어 마크, 임산부 표시 등은 특정 사회 구성원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시설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대부분 시설·환경에 대한 일부 사용자의 접근이 제한돼 있음을 드러낸다. 유니버설 디자인이 보편화된 사회에서는 이런 표식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사회적 약자가 더 쉽게 접근하고 나아가 휠체어 마크가 사라지는 그날까지 유니버설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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