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없는 신문은 없다. 억울하지 않은 기자도 없다. 대학언론에 몸담은 친구에게 지난 호를 쥐여주며 한 번 물어보시라. “원래 더 재밌는 기사가 있었는데…” “이 사진을 어떻게 건진 거냐면…” 그가 전하는 구구절절한 이야기에 눈물이 찔끔 나올지도 모른다.

1953호 『대학신문』도 분명 많은 사연을 갖고 가판대에 걸렸을 테다. 가장 눈길이 간 부분은 선거의 결과와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담아낸 보도면이다. 마감일인 금요일에 마무리되는 학내 선거가 무려 8개라는 사실은 편집국 모두에게 재앙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대학신문』은 각 단위의 선거 과정에서 제기된 다양한 문제점을 차분히 짚고, 현 총학이 차기 총학에 건네는 조언까지 알차게 담아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해낸 셈이다.

기획면 역시 훌륭했다. 티켓팅 대란, 젠트리피케이션, 유니버설 디자인 등 날카로운 주제의식과 기자의 발품이 기사 전반에 녹아들어 있는 기사가 많았다. 『대학신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이런 종류의 기획기사다. 일상에서 흔히 마주치지만, 미처 느끼지 못했던 현상에 대해 독자들이 많은 고민을 할 수 있도록 편집국 차원에서 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러나 이는 언제까지나 독자가 신문을 읽을 때의 경우다. 1953호 『대학신문』은 ‘읽히는’ 신문이었을까. 대학언론에 관심이 멀어진 학생사회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신문 편집에 대한 이야기다.

1면에 쓰인 헤드라인의 폰트만 세 종류다. 사진 역시 당선의 환희를 한 눈에 느끼기 어려웠다. 1면을 넘기면 텍스트의 바다다. 2면과 3면 양면에 인쇄된 글자는 어림잡아도 15,000자를 훌쩍 넘기지만 기사에 쓰인 이미지는 한 장에 불과했다. 전반적으로 헤드라인과 본문 사이의 공백 간격이 제각각인 문제도 있다. 기준을 짐작할 수 없는 헤드라인 폰트 선정은 기사의 경중을 가늠키 어렵게 했고, 3단으로 편집된 기사를 읽을 땐 한 줄도 넘기지 못한 채 힘이 빠졌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신문을 집어 들었을 때 읽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예측하자면 대부분의 독자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대학신문』의 주 독자층을 학생으로 볼 때, 짧은 글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이런 편집을 내보이는 것은 윽박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사연이 넘칠 것이다.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독자가 만나는 것은 편집국이 아닌 신문이라는 결과물이다. 지면에 담아낼 수 없는 사정은 변명일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2년의 학보사 생활에 있어 『대학신문』은 대단히 훌륭한 교재였다. 양질의 기사를 읽으며 뛰어난 소재와 통찰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신문』의 본질은 교재가 아닌 신문이어야 하지 않을까. 편집국의 사정보다는 독자의 사정을 먼저 헤아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신문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읽히는 것’이다.

김범석
고려대 독립언론 「고zip」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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