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그리며 한국적 산수화 창시한 대가

 
▲ © 강정호 기자

 

 

겸재 선생께,

지금으로부터 328년 전 이 땅에 태어난 당신께 ‘선생’이라는 호칭이 무척 어색하고 외람스럽습니다. 하지만 우리 화가들 모두에게 있어 당신은 위대한 스승으로 불려짐이 마땅하다는 간절함으로 감히 당신을 선생이라 불러 봅니다.

 

지난 5월에는 간송미술관에서의 ‘대겸재전’을 통하여 선생의 호흡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으며, 가까이에는 최근 서울대 박물관에서의 ‘화가와 여행’이라는 전시를 통하여 당신의 <만폭동도(萬瀑洞圖)>를 다시금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여행’이라는 표현이 50여 년에 걸친 선생의 금강산 그림에 비추어서는 한없이 미약하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만, <청풍계도(淸風溪圖)>와 더불어 제가 좋아하는 그림이라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하지만 ‘반가웠다’라는 말이 허황한 표현이라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지요. 왜냐하면, 선생과 같은 위대한 화가에 관하여 알고 있는 부분이 불과 몇 마디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며, 어쩌면 반 고흐나 피카소 같은 서양화가들보다 오히려 모른 채 살고 있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의 예술적 업적은 무엇보다도 진경산수(眞景山水)에 있고, 그것은 금강산 그림을 통하여 완성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아직 금강산에 가보지 못한 저로서는 그것이 어떻게 실경을 즉물적으로 사생하지 않고 회화적으로 재해석하는 이형사신(以形寫神)의 진수인가를 가늠하기 어려우나, 그 시점(視點)이 부감법(俯瞰法)으로 되어있는 <금강전도(金剛全圖)>의 경우 서양미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현대미술에서조차 이룩하지 못한 독특한 사실정신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선생은 중국풍의 그림을 답습하던 종래 화가들의 관념산수에서 벗어나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사생하는 데 가장 알맞은 우리 고유의 화법을 창안해내어 우리 산천을 소재로 그 회화미를 성공적으로 발현하여 이를 감동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진경산수의 창시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완성하기까지 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크나큰 가르침을 주고 계십니다. 가히 한국적 산수화풍의 창시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는 비단 그림의 세계에서만이 아니라 당시의 조선 사대부들이 사물을 바라보고 세계를 인식함에 있어 더 이상 중국을 의식하며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눈앞의 현실과 자연과 인간에서 출발할 수 있는 의지가 생긴 것이며, 숙종ㆍ영조 연간의 사실적ㆍ현실적 기류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문화적 자존심이 절실한 지금, ‘해체’가 ‘해체주의’로 변형되고 있는 오역(誤譯)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더욱, 선생의 진경산수가 주는 교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다 할 것입니다.

살아있는 필치- 활필(活筆)… ‘천취(天就)’를 향한 선생의 경지는 84세까지 천수를 다하며 남긴 말년의 수많은 명작들에서 더욱 확연히 찾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선면 <금강전도>에서의, 만년의 자신감이 아니면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대담한 구도의 변형을 통하여 나타나는 박진감이란! 실로 원숙미의 극치가 주는 황홀경 바로 그것일 것입니다. 76세에 그리신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또한 최고작이라 칭송됨에 손색이 없을 것이며, 노화가의 필치라 여겨지지 않을 만큼의 치밀한 화면 경영은 만년에도 최선을 다했던 선생의 창작태도를 말없이 웅변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그림의 본질에 관하여 얼마나 질문을 하고 있습니까? 그림을 위하여 자신의 전부를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생각하면, 선생의 그림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장인적 성실성에 다시 한 번 고개가 숙여집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으나 선생이 쓴 글을 묶어 만든 문집이 여러 권 있고 『도설경해(圖說經解)』라는 저서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료들이 하루 빨리 빛을 보아 선생을 보다 깊이, 그리고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면서 하늘 드높은 가을 날, 외람된 글을 이만 줄입니다.

 

 

▲ © 대학신문 사진부

김춘수 교수

(미대ㆍ서양화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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