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 위해서는 소주라도 한 병 필요하다”


▲ © 신문수 기자

10번 마을버스는 지하철 4호선 미아삼거리 역을 지나 언덕 사이로 난 골목을 굽이굽이 올라간다. 고층빌딩과 아파트 단지가 깔끔하게 정돈된 ‘강북 뉴타운’에서 버스로 15분도 채 걸리지 않는 하월곡동 산 2번지에는 갈라진 지붕과 외벽에서 빗물이 새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풍경이 펼쳐져 있다. 이곳에서 구멍가게를 하는 김순자씨(56)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굳이 말할 필요가 있느냐”며 “지금 보이는 것 그대로가 우리 삶의 현실”이라 말한다.

 

하월곡동에 살고 있는 400여 가구 중 100가구 이상이 기초생활보장을 받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5년에 한번씩 소득ㆍ재산ㆍ지출실태를 조사해 최저생계비를 산출하고, 소득이 이에 미치지 못하는 가구를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수급권자)로 지정해 최저생계비에 모자라는 금액만큼을 지원한다. 지난 1999년 12월에 정한 최저생계비는 1인 가구 기준 월 36만 8천원이다. 이곳에서 산 지 20년이 가깝다는 심묘임 할머니(70)는 “겨울이 되면 상황이 더 악화된다”며 “얼어 죽을 만큼 추워도 연탄 한 장 땔 수 없는 사람이 대다수이고, 그나마 보일러가 있는 사람도 기름값이 없어 연탄을 산다”고 전한다.

 

  ‘인간다운 생활권은 추상적 권리에 불과’

헌재, 현행 최저생계비 제도에 전원일치 합헌 판결

 

하월곡동의 복잡한 골목길 사이로  리어카를 끌고 오는 서이순씨(54)는 폐품을 모아 팔며 생계를 꾸리고 있다. 그는 매일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지만 하루 수입은 기껏해야 1만원을 넘지 못한다. “살기 위해 이것저것 안 해본 일이 없다”는 서씨는 담배 노점을 하다가 깡패에게 맞아 머리에 일곱 바늘을 꿰매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사고 당시 응급치료를 했을 뿐,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 정기적 치료를 받을 수는 없었다. 서이순씨는 “지금은 그나마 내 힘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더 나이가 들면 어떻게 살지 앞이 깜깜하다”고 걱정한다.

 

 

65세가 넘으면 노인복지법에 따라 경로수당을 받지만, 이를 위해서는 부양가족이 없음을 증명해야만 한다. 부양가족이 있으면 자식에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거나, 본인의 소득이 전혀 없는 경우에도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편 지난 10월 28일 헌법재판소는 1급 지체장애자 이승연씨 등 2명이 2002년 5월 “장애로 인한 추가 지출비용을 반영하지 않고 가구별 인원수로만 최저생계비를 결정하는 것이 헌법에 명시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와 ‘평등권’등을 침해한다”며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해 재판관 전원 일치로 합헌 판결을 내렸다. ‘인간다운 생활을 한 권리’가 추상적이라 기준을 정할 수 없고, 장애인은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장애수당이 공제되며 각종 급여 및 부담감면을 받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열악한 지원보다 사회적 편견 서럽다

그러나 하월곡동에서 소망이(5)와 바람이(3)를 키우고 있는 이은영씨(33,가명)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발달장애 1급을 앓고 있어 실제 나이는 세 살이지만 발육수준이 생후 6개월에 불과한 바람이 때문에 일터에 나갈 수 없는 이씨는 “장애인이 있는 가정은 재활치료와 약값 때문에 일반 가정보다 지출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참여연대 전은경 간사는 “장애수당은 중증 장애인에게만 월 6만원이 지급되며, 1999년부터 수급권자인 1, 2급 장애인의 보호자에게 주기로 되어 있는 장애인보호수당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지급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전간사는 “차량 구입시 특별소비세 면제, 철도ㆍ항공 요금 감면, 휴대폰ㆍ인터넷ㆍ전기료 할인 등의 혜택은 소비생활을 할 수 있는 장애인에게만 해당돼, 대다수 빈곤층 장애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 © 신문수 기자

 

 

보건복지부는 2005년부터 최저생계비에 장애ㆍ무능력 노인 가구 등 가구별 특성을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빈곤사회연대 류의선 사무국장은 “가구유형별 특성을 반영하는 것은 물론이고, 물가수준 등 현실을 고려한 금액을 설정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한국의 최저생계비는 OECD국가 중 최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 생활보장과 왕진호 과장은 “최저생계비는 5년마다 결정되기 때문에 사실상 현재 물정에 맞지 않을 수 있다”고 인정하며 “올해 최저생계비 개칙 때는 정확한 실태 조사를 통해 현실을 최대한 반영하도록 노력할 것”이라 말했다. 

 

 

노점상을 하고 있다는 김철수씨(58, 가명)는 “웃음짓기 위해서는 소주라도 한 병 마셔야 한다”며  “열악한 지원보다, 우리를 ‘아까운 세금만 축내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사회적 편견이 더욱 서럽다”고 말한다. 구인회 교수(사회복지학과)는 “납세자에게 무한정 세금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수급권자의 어려운 실정도 고려해야 한다”며 “연대의식을 바탕으로 빈곤층에 대한 복지 문제에 접근해야 할 것”이라 말했다.

 

 

지난 6일(목), 햇살놀이방 아이들은 문화예술진흥원이 주최한 ‘소외계층 아동을 위한 발레공연’을 보러갔다. 2003년 3월, 하월곡동에 문을 연 햇살놀이방은 맞벌이, 편부모 가정 아이들 12명을 돌보고 있다. 놀이방 일을 돕는 김형심 할머니(67)는 “처음 경험하는 문화생활에 아이들이 무척 설레어 했다”며 “아이들에게까지 빈곤을 물려 줄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다들 어려운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이 돌아가며 놀이방에서 자원봉사를 한다”며 웃는 박춘옥 루세아 수녀의 말에서 아직 잃어버리지 않은, 하월곡동 주민들의 ‘희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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