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렬한 이념적 토론과 거대담론의 시대는 가고 캠퍼스에는 불황과 불확실성 속에서 현실적인 고민을 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20대 청년층의 이상주의적 열정을 바탕으로 기성세대에 비해서는 진보적인 성향을 나타낸다. 그래서 학생들은 한국사회에는 개인의 노력을 넘어서는 구조적 불평등의 요소가 존재하고, 불공정한 경쟁이 많아서 이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인식한다.

하지만 치열한 입시경쟁을 뚫고 들어왔지만, 눈앞에 닥친 취업경쟁에 ‘샌드위치’가 된 때문일까? 서울대생들의 눈에 비친 한국 사회는 방심할 수 없는 곳이다. 남을 돕기 보다는 자신만을 위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인식하고(14% 대 22%), 자신을 공정하게 대하기보다 이용하려 드는 사람이 더 많다고 인식한다.(12% 대 23%) 일반적 신뢰도 27%에 불과하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자리 잡게 되면서 학생들의 정치성향과 사회의식은 과거 386세대에 비해 보수화하되, 다양한 새로운 문제들을 생활문화의 수준에서 쟁점화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생들의 탈정치화는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하는 학생들의 비율이 무려 57.3%에 달하는데서 잘 드러난다. 기존 정당체제에 대한 염증과 정치적 무관심이 그만큼 강하게 반영된 것이다. 정당별 지지도는 민주노동당 14.3%, 열린우리당 13.8%, 한나라당 12.7%의 순이다.

 

전국 사회학과 연합 조사에 따르면 한국 대학생들의 정치성향은 지난 3년간 매우 급속하게 진보적 색채가 줄어들고 있다. 서울대생들에게 이러한 경향은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매우 진보적인 태도를 1이라고 하고, 매우 보수적인 태도를 -1로 하여 척도를 구성했을 때, 서울대생들의 진보성향은 0.06으로, 2004년 대학생 평균 0.16, 2001년 대학생 평균 0.29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위치에 와 있다.

 

물론, 서울대생들 내에서도 지지하는 정당별로 정치성향에 큰 차이가 존재한다.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학생들의 이념성은 0.03으로 중도적인 반면,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0.37로 보수 쪽에 기울어 있고,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은 0.18,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은 0.43으로 진보 쪽으로 기울어 있다.

 

한편 서울대생들은 대학생 평균에 비해 탈물질주의적 가치관을 강하게 드러낸다. 잉글하트(Inglehart)는 전통적인 부국강병과 국가기강확립, 물가안정, 범죄소탕 등을 강조하는 태도를 ‘물질주의’로, 보다 인간적인 사회와 정신적 풍요, 언론자유와 여론 활성화 등을 강조하는 태도를 ‘탈물질주의’로 하는 척도를 개발한 바 있다. 이 척도를 이용한 결과 서울대생들의 13.9%가 물질주의자들이고, 13.2%가 탈물질주의자들이며, 나머지 72.8%는 혼합형에 속했다. 지난 3년간 한국 대학생들 중 물질주의자의 비율은 10%에서 17%로 급격히 증가했으며, 탈물질주의자는 10.4%에서 9.7%로 미약하게 감소했다.

 

따라서 서울대생들은 전국 대학생들에 비해 정치적으로는 보수화했지만, 문화적으로는 보다 탈물질주의적으로 나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나 독일, 스웨덴 등 서구 선진국 청년들에게서 탈물질주의자들의 비율이 30%이상에 달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높은 탈물질주의적 경향을 보이는 민노당 지지층을 중심으로 한 일부를 빼면, 일반적인 서울대생들의 경우에 한국적인 가치지향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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