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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철학책
  • 대학신문
  • 승인 2018.04.15 21:58
  • 수정 2018.04.15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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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일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나는 4.19 나던 해 문리대 사학과 신입생이었다. 윤명로 선생님의 철학사 중심의 철학개론을 들었는데, 그 중 몇 가지 내용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나 당시 내 두뇌는 철학적이지 못했다. 아무리 옆 자리 이명현 학우의 데카르트 사상을 강청했어도 그 결과는 C학점이었다.

대학원에 가서는 김성근 등 여러 선생님들에게서 허 군은 논리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기는 했다. 로마사 전공의 대학교수가 된 뒤에는 사관 등 역사철학에 대해서도 강의를 해야 했던 고로, 자연히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을 통째로 이해하지 않으면 역사 단독의 이해는 불가하다는 단순 논리를 터득하게 됐다. 정년 후 『다시, 역사란 무엇인가?』를 출간할 때에는 고르기아스, 칸트, 쇼펜하우어, 니체 그리고 포스트모던 철학이 그렇게 재미있을 줄 몰랐다.

가다머는 하이데거의 제자였다. 그런데 스승은 친나치주의자였다. 히틀러 밑에서 대학총장을 지냈던 것이다. 그래서 심심하면 등 뒤에서 연구에 열중하고 있는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스승이 왜 친나치주의자였을까 의문을 품고 연구한 결과가 그의 나이 60에 출간한 『진리와 방법』이었다.

이 책은 난해하다. 후설의 현상학과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그의 ‘지평융합론’과 ‘영향사’의 두 주축 개념으로 진리란 무엇이며 이를 찾는 방법을 알아낼 수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처럼 해악을 끼친 책도 없다고 믿는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와의 대화’란 명구가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면서 무조건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입장에서 재단해서 보는 아주 틀린 악습이 생겨난 것이다. 가다머는 말한다. 현재와 과거 사이에는 시간의 간극이 있는데, 이를 지평융합과 영향사를 통해 봐야 과거의 진실을 제대로 평가할 수가 있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서양 고대 세계에서는 포세이돈 해신이 바다의 태풍도 주관한다고 굳게 믿고 살고 있었다. 이를 카처럼 현대과학의 공기 이동식으로 설명하면 안 된다는 것이 가다머 주장의 핵심이다. 나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암살’의 의미도 변한다고 아주 쉽고도 재미있게 가르치고 또 쓸 수가 있었다.

벌써 수 년 전의 일이다. 안철수가 뛰쳐나가자 열린우리당이 대(大)위기를 맞는 듯 했다. 60년 ‘정통’ 야당사에 최초로 외부인이 당의 비상대권을 거머쥐게 됐다. 문재인이 김종인을 불러온 것이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새누리당의 전력이 거론되면서 공격당하자, 김종인은 그의 명쾌한 단순 논리로 이를 일축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내가 여기 오고 싶어 온 줄 아느냐, 문재인이 삼고초려해 친노 패권주의를 청산해 달라고 해 왔다고 말했다. 결과는 유명세를 타던 몇 명이 날라갔는데, 그 보상으로 제1당이 됐다. 김종인은 여기까지였다. 장차 헌정사가들은 이 대목을 어떻게 이야기할까?

언젠가 프린스턴 대학에서 신학을 해 목사가 된 대학 동창 계지영이 성서해석학으로 리쾨르가 유명하니 꼭 거론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었다. 무릎을 탁 쳤다. 그의 『시간과 이야기』를 탐독했다. 역시 어려웠다. 그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론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나오는 모방이론, 즉 미메시스 1, 2,3을 들어 명쾌한 논리를 펼치고 있었다. 시간은 우주적 시간과 인간의 시간 두 범주로 나뉜단다. 이것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미메시스 이론인데, 1과 3도 어렵지 않다. 미메시스 2가 노른자위다. 이야기를 할 때, 인간 영역의 보통 경험을 말하는데, 이것이 미메시스 1이다. 텍스트를 통해 이야기를 들은 독자들은 그 속에서 미처 자기가 몰랐던 인간의 경험 세계를 알게 되면 이를 자기의 경험 체계에 용해시켜 자기 자신의 경험세계를 변용시킨다. 이것이 미메시스 3으로서 철학과 문학의 미래의 발전의 잠재요소가 된다는 간단한 논리다. 그런데 미메시스 2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이야기꾼의 ‘마치 무엇인 것처럼의 왕국’(the kingdom of as if)이라는 것이다. 여기서는 이야기꾼의 온갖 상상력이 동원돼 사실과 허구의 교류, 과거/현재/미래의 넘나듦, 이질적인 것들의 일원적 구조화 등을 통해 완전히 이야기꾼의 상상의 왕국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런 고로, 미메시스 2는 문사철간의 장벽을 허무는 이야기가 되는 셈이다.

한 마디만 더 하자. 모던 역사의 아버지 랑케와 포스트모던 역사의 원조격인 니체의 언급이다. 랑케는 시와 철학을 합일해 이념적인 것에서 현실적인 것으로 바꿔, 이 둘을 역사 나름의 특유한 제3의 요소로 결합시켜 놓은 것이 역사라고 한 반면, 니체는 위대한 예술적 능력, 창조적 부유, 즐거이 경험적 자료들 속으로의 몰입, 주어진 유형의 계속적인 시화를 추구하는 역사를 강조했던 점이 떠올랐다. 특히 리쾨르는 미메시스 2 부문에서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토마스 만의 『마의 산』,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세 소설의 내용도 소개한다. 이를 통해 오늘날 유럽의 역사 이론가로 유명한 뤼젠의 현재의 체험, 미래의 기대, 과거의 기억을 엮어 ‘역사 의미의 만들기’를 한다는 주장도 이 리쾨르의 이론과 맥이 통함을 알게 됐다.

요즘 나는 특히 철학책을 더 많이 읽는다. 내 경험은 그래야만이 프란시스 베이컨이 말하는 소위 ‘중세적 사고방식’에서 탈피할 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서양고대사가 전공이다. 『로마 공화정의 역사』와 『그라쿠스 형제의 경제개혁』을 집필 중이다.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려면 문학, 역사, 철학 뿐만 아니라 수사학도 연마하고 더 나아가 역사현장도 직접 연구·여행해야 한다는 집념을 실천하고 있다.

대학신문  snupress@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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