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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비틀어진 풍경 속으로 굽은 나무 하나를 그리다작가와의 대화 | 소설가로 데뷔한 송호근 교수(사회학과)를 만나다
  • 박태현 기자
  • 승인 2018.05.13 02:45
  • 수정 2018.07.04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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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안정과 고요의 탑을 쌓아 올리려 하고 문제아는 끊임없이 이를 부수려 한다. 문학은 이 문제아들의 이야기이기에 소설가도 자연히 ‘문제적 개인’이 된다. 이를 고려할 때 송호근 교수(사회학과)가 지난해 소설가로 데뷔한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송 교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사회학자로 김호동 교수(동양사학과)와 함께 인문·사회계열에서는 최초로 서울대 석좌교수에 임용됐다. 그런 그가 평생을 연구해 온 사회과학을 비판하며 문제적 개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첫 장편소설 『강화도』로 이병주 국제문학상을 수상하며 성공적으로 데뷔한 그는 최근 『다시, 빛 속으로』를 펴내며 문학계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학신문』은 그와 만나 소설가 송호근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왜곡과 결핍의 근대가 열리고 모순이 자랄 때

송호근 교수가 본격적으로 소설가의 길을 걷게 된 이유는 연구자로서 느낀 사회과학의 한계 때문이다. 그는 강화도 조약이 근대의 시작이자 비극의 시작점이라며 “근대의 문이 강제로 열렸는데 조선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이 사건 때문에 사회 전반에서 모순이 열려 무럭무럭 자라났다”며 “한국 근현대사가 불완전한 절름발이가 돼 전쟁과 분단, 정치 탄압의 몸살을 앓았고 오늘날의 판문점 선언까지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20세기 사회과학은 이런 근대의 왜곡을 바로잡고 수정하기 위해 몸부림쳐왔다. 그러나 송 교수는 사회과학이 끝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광수는 인간의 정신 활동이 지(知), 정(精) 의(義)로 구성된다고 말했다”며 “지는 과학적 논리며 정의 영역은 감정과 정서, 의는 철학적 사유”라고 설명했다. 조선 시대 이전까지는 지정의가 문(文)이라는 하나의 영역으로 통합돼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근대화 이후 분화됐고 과학적 논리가 굳어 사회과학이 됐다. 송 교수는 “세상은 점점 복잡해져갔고 논리만 가지고 밝힐 수 있는 것은 전체의 백분의 일, 천분의 일로 작아져만 갔다. 결국엔 갈 수 있는 길이 다 막혀버렸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나는 지만 했잖아요. ‘정을 한 번 해보자’라고 생각한 거지”라며 “이제는 정서와 감정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탐조등으로 써서 근대적 모순이라는 단단한 벽을 두드리고 싶었다”며 소설을 쓰게 된 계기를 밝혔다. 그는 “문학은 상상이니까 논리를 놓고 이 벽을 자유롭게 녹여보기도 하고 부숴보기도 하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문학은 상상력과 신화의 노래로 빚어진 언어의 그릇이다. 송 교수는 그 속에선 사람들이 이해관계를 놓고 정서와 정서로, 연민과 연민으로 만나 근대의 비극을 끝내고 화해를 이뤄낼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상상력으로 말뚝을 잇고 심리로 인물을 만들다

송호근 교수의 작품은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역사소설, 그 가운데에서도 근대사 소설의 형태를 띤다. 『강화도』는 강화도 조약(조일수호조규)이 체결될 당시 조선 측을 대표해 협상을 진행했던 유장(儒將) 신헌의 이야기를 담았다. 『다시, 빛 속으로』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신분으로 당대 일본 최고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후보작을 수상한 천재 작가 김사량의 행적을 다루고 있다. 이런 소설은 갈래의 특성상 큰 틀은 주어진 역사적 사실을 따라가면서 알려지지 않은 공백을 작가의 역량으로 메워가게 된다. 송호근 교수는 “역사적 팩트가 이렇게 있다”고 말하며 종이 위에 어지럽게 점을 찍었다. 송 교수는 “‘이 사건 이후에 이 사건이 일어나고 그 다음에 이게 일어났습니다’고 말하는 건 역사학”이라고 말했다. 그는 점을 이으면서 “말뚝과 말뚝 사이의 공간을 연결할 수 있는 구조를 짓는 게 문학”이라고 설명했다.

송 교수는 문학의 구조를 상상의 집이라 일컬으며 집을 짓는 데 있어 핵심을 인물 창조로 꼽았다. 그는 “스토리 전개는 결국 인물을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작품의 성패는 인물을 얼마나 잘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했다. 이때 잘 만들어진 인물이란 그 사람의 인간성, 언어, 얼굴 됨됨이, 출신, 행동거지 등이 세세하고 치밀하게 설정된 것을 말한다. 송 교수는 리얼리티와 문학적 허구를 고려해 인물을 만들고 이들을 작가의 문제의식과 대결시킨다고 말했다. 그는 “인물이 타락한 세상을 타락한 행동으로 대면하면서 독자에게 세상이 얼마나 모순덩어리인가를 보여주게 된다”며 “그게 일종의 성찰을 불러일으켜 역사와 사회를 재해석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차창 밖 풍경도 떠오르지 않았다. 앞에 앉은 숙영을 눈물겹게 바라봤던 기억은 선명하다. 숙영도 가끔 사량을 바라볼 뿐 말이 없었다. 두 사람의 눈길은 겹쳐졌다가 흩어지곤 했다. 새로운 탈출의 가능성은 그믐달처럼 소멸됐음을 두 사람은 깨닫고 있었다. 뜻은 있었으나 실행에 옮기기가 얼마나 무모하고 어려운 일인가를 두 사람 모두 애초에 알고 있었다.

-『다시, 빛 속으로』 중

밤새 내린 눈은 관악산을 하얗게 덮었고, 건너편 청계산은 흰 젖무덤처럼 동구마니 앉아 있었다. (…) 저 젖무덤에 사내의 욕망을 씻고 열정을 벼리고 울분을 토해도 끝내 도망치지 못하는 마음의 덫은 남는다.

-『강화도』 중



그 과정에서 송 교수가 주목하는 것은 인물의 심리 묘사와 문장이다. 그는 “훌륭한 작가를 결정하는 바로미터는 바로 심리묘사라고 생각한다”며 “그 사람의 심중에 들어가서 그 사람의 언어를 가지고 나와 현실을 들여다보고, 그 현실에 대해 느끼는 바를 독자에게 얼마나 잘 전달해주느냐에 따라 소설의 수준이 결정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인물의 심리는 1에서 100까지 다양한 정도를 가진다. 작가는 역사적인 상황, 인물들의 공통적 인식과 고민을 바탕으로 적절한 심리를 캐내 인물에게 부여한다. 그는 “이렇게 심리를 부여한 인물들의 언어와 언어가 부딪치며 새로운 언어가 탄생한다”며 “이것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힘이며 이런 언어를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작가의 문체가 결정된다”고 강조했다.



시대가 녹아 있는 정서로 이념을 뚫어라

그는 상상력과 창조의 원천은 곧 작가의 경험이라고 말했다. 송 교수가 대학을 다니던 70년대 말, 80년대 초는 서울의 봄, 광주 민주화 운동 및 대학을 중심으로 학생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던 시기였다. 그는 당시 서울대 대학신문 기자로 활동하며 이를 가까이서 목격했다. 송 교수는 “두 번째 소설의 주인공이 신문기자잖아요. 옛날의 나지. 나랑 성격도 비슷해. 그때는 동아일보에 가서 신문을 만들었는데 토요일에 조판 당번을 서면 신문사 돌아가는 게 다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당시엔 고문당하는 학생이 많았다. 얻어맞고 고문당해 반신불수, 정신이상자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다시, 빛 속으로』는 신문사 기자로 보고 듣고 경험했던 것을 녹여낸 소설”이라고 밝혔다.



“독재타도!” “언론 검열 중단하라!” 이런 현수막이 길게 걸린 동아일보사 사옥에 봉현은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문화부장 이서현이 먼저 나와 봉현을 반겼다. 이서현 부장은 서울대 영문과를 나온 봉현의 대학 선배로 문화예술계가 거의 빈사 상태에 이른 저간의 암울한 상황에 분개하고 있었다. (…) 옆에서 얘기를 듣던 신참 여기자인 강채원이 거들었다. 강 기자도 우연히 영문과 후배여서 타 부서 기자들이 아예 문화부를 영문학과 동창회라고 불렀다.

- 『다시, 빛 속으로』 중



송호근 교수는 이런 정치적 탄압의 원인이 된 ‘반공’이라는 강력한 이념의 장벽을 뚫고 싶었다고 밝혔다. 소설 속의 김사량-김봉현의 부자 관계는 송 교수가 그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로 제시하는 것이다. 김사량은 해방 후 월북해 6.25 전쟁 당시 북한 측 종군기자로 활동했다. 이처럼 반공 이데올로기의 대척점에 위치한 김사량과 달리 그의 아들 김봉현은 남한의 기자로서 반공 이데올로기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송 교수는 “봉현에겐 뭘 선택해야 하고 어디까지 행동해야 하느냐는 딜레마가 있다”며 “이 문제를 이념적으로는 뚫고 가지 못하지만 혈연을 통해서 뚫고 가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를 자기 공간으로 끌어들이면서 이데올로기를 무너뜨리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독자들이 시대에 대한 의문을 던지기를 바랐다고 밝혔다.

사회과학적 입장에서 보면 이는 결국 감정에 호소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송 교수는 감정과 정서가 가진 힘에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니벨룽겐의 서사는 이런 것이고 이게 시간순으로 이렇게 됩니다’라고 설명하는 것과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을 들려주는 것을 비교해보라”고 말했다. 아무런 설명도 말도 없는 음악보다는 전자가 정확한 지식을 제공하고 엄밀한 논리를 세우기에 더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송 교수는 “음악에 말은 없지만 사람들은 후자에 더 큰 감동을 느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예술과 문학엔 어마어마한 울림이 존재하고 그게 문학과 예술이 가진 힘”이라며 이것이 논리가 만들지 못하는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역설했다.

송호근 교수는 이야기를 쓸 때 자신이 궁금해하는 인물을 먼저 꼽는다고 밝혔다. 신헌, 김사량 이후 그가 주목하고 있는 인물은 유길준이다. 송 교수는 “동시대 지식인인 김홍집과 달리 유길준은 연구도 많이 이뤄지지 않았고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며 차기작은 그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고 밝혔다.

송호근 교수는 자신의 학문적 연구와 창작 소설을 나무에 비유하며 둘의 뿌리는 같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사회과학은 높고 곧게만 자라서 ‘봐라. 이것이 정의다’라고 윽박지를 뿐 사람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주지 못해. 세상을 그런 식으로 바꾸겠다는 건 굉장히 메마른 생각”이라며 이제는 꽃도 피고 그늘을 만들어 사람들이 쉴 수 있는 나무를 키워가고 싶다고 말했다. 문학과 사회과학의 상보적인 협력을 이뤄낼 소설가 송호근의 앞으로의 작품을 기대해본다.



사진: 대학신문 snupress@snu.kr

삽화: 권민주 기자 kmj4742@snu.kr

박태현 기자  pth76767@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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