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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 이별, 끝없는 원 속에서주목, 이 책 | 젊은 작가 15인의 만남과 이별 이야기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다. 이 당연한 공식을 우리는 때때로 잊고 살아가곤 한다. 만남이 영원할 것으로 생각하거나, 이별 후 어떤 만남도 없을 것으로 생각하거나. 그럼에도 우리는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소설집 『서로의 나라에서』와 시집 『좋아하는 것을 함부로 말하고 싶을 때』는 이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이별과 만남을 주제로 여러 작가가 쓴 작품을 모아놓은 앤솔로지(Anthorogy) 문학집이다. 『서로의 나라에서』에선 8인의 소설가가 모여 ‘이별’을 주제로, 『좋아하는 것을 함부로 말하고 싶을 때』는 7명의 시인이 ‘만남’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특히 이 작품집은 등단한 지 5년 미만인 35세 이하의 젊은 작가들이 뭉쳐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책의 뒷면에 쓰여 있는 문구처럼 “한국 문학의 가장 젊은 시/소설을 만나”는 셈이다. 이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으로 이뤄진 프로젝트로 소설집과 시집에 각각 8편의 소설과 49편의 시가 수록됐다.

사람들은 ‘이별’이라는 단어를 보면 대개 연인과의 이별을 떠올린다. 하지만 소설집 『서로의 나라에서』의 작품 가운데 연인과의 이별을 다루는 것은 두어 개 정도다. 작가들은 우리가 살아가며 빈번히 겪는 일이지만 대개 ‘이별’로 여기지 않는 이별에 주목했다. 과거의 자신과의 이별, 사람들과의 이별, 신체와의 이별이나 믿음과의 이별이 그것이다. 이는 「공설 운동장」 「방갈로, 1996」처럼 작가의 어릴 적 경험을 통해 표현되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좀비가 돼버린 「오직 운전하는 이들만 살아남는다」나 신체가 말끔히 절단되는 병이 퍼지는 「기록_떨어지는 사람들」처럼 허구적인 세계를 바탕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작품 속 각자가 경험하는 이별은 다르지만, 이별 후 지내는 모습은 비슷하다. 「공설 운동장」 속 ‘나’는 “문 닫힌 공설 운동장 주변을 힘껏 달리기 시작”한다. 「오직 운전하는 이들만 살아남는다」 속 여자는 “당장 죽어서는 안 되는 이유 하나”를 막 떠올리며 「커튼콜, 한 번 더 박수」에서의 ‘나’는 “무척 아픈데도 웃음은 계속 삐져나왔”다. 고통스러운 이별이든 담담한 이별이든 멈추지 않는 세상 속에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우리네 모습이다. 하지만 이별 후 시간이 마냥 힘든 건 아니다. 이별을 겪으며 우리는 조금이나마 달라진다. 이별한 대상이 여전히 자신 속에 남아있기도 한다. 「밤의 징조와 연인들」에서 주인공 이수는 연인 석이와 헤어진 이후에도 “눈에 보이지 않아도 석이가 같은 물결 속에 있는 것”을 느낀다. 소설집에 실린 다른 소설들도 이별한 대상이 주인공 안에 남아 자그마한 변화를 끌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별이라는 주제가 서로 다른 문체와 이야기로 확장되면서도 결국 공통된 메시지로 이어지는 것이다.

소설집 『서로의 나라에서』에서 이별의 다양한 대상,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졌듯이 시집 『좋아하는 것을 함부로 말하고 싶을 때』에서의 만남도 다양한 대상, 다양한 과정으로 이뤄진다. “책장 밑에 숨은 거미를 밟”(「어느 날 거미를 삼켰다」)거나 “당신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다”(「혹」)거나 “나를 따라서 교차로를 건너는 물체가 있다”(「주인 없는 개」)는 식이다. 하지만 만남의 순간과 과정은 아주 짧게 표현된다. 무언가를 처음 만났을 때 사람들이 으레 느끼는 설렘, 두려움 혹은 기대감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만남 이후의 고민과 갈등이 표현되고, 이는 만남이 아니라 이별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던 당신은 “이제 책을 반납하고자 한다”(「혹」)고 말한다. 인류가 만난 괴물 히드라는 “인류 연방을 지탱하는 정치 사회 문학에, 자신을 새기고, 흠집 내고, 끝끝내 부숴버릴 것”(「히드라」)이며 책장 밑에 숨어있던 거미는 “나오려고 데굴데굴 구른”다. 시들은 만남에 필연적으로 이별이 속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담고 있다. 물론 모든 만남이 이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시집 속 만남은 끝이 이별일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 담담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만남은 이별로, 이별은 만남으로 이어진다. 시집 속 만남은 언젠간 있는 끝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이별로 나아가고 소설집 속 이별은 자신 속에 남아 자그마한 변화를 이끌어낸다. 그 변화는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지면서 서로 무한히 순환하는 고리가 형성된다. 하지만 다양한 만남과 이별을 작가만의 색채로 담는 과정에서 그 고리가 모호해졌다. 만남과 이별이라는 메인 주제가 모호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수많은 네모난 상자 속 시구를 넣거나 영상을 시로 그려낸 듯한 독특한 형식을 도전한 시들은 오히려 시인의 목소리를 숨기는 듯했다. 시집 속 많은 시가 그려내는 다양한 사물, 뚜렷하지 않은 행동이나 잘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감정도 독자가 시에 다가서기 어렵게 만든다. 그럼에도 그 사이로 드러나는 시인의 목소리는 소설가의 목소리와 함께 만남과 이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또 작품마다 달린 작가의 말은 독자가 작품을 소화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 작가와의 ‘만남’을 주선한다.

시집의 ‘여는 글’에서 윤지양 시인은 “결국 이렇게 당신을 만나게 되어 다행”이라며 글을 맺는다. 누군가는 분명히 이 책을 읽는 독자가 돼 작가와 작품을 만날 테지만 이 만남에도 당연히 이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젊은 시와 소설’은 앞으로도 계속 등장할 것이며 독자의 만남은 분명 다시 이어진다. 이런 만남과 이별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젊은 작가들이 만들어가는 앤솔로지 문학이 계속 출판되기를 바라본다.

서로의 나라에서

정영수 외|
322쪽
은행나무
5,900원




좋아하는 것을 함부로 말하고 싶을 때

윤지양 외
170쪽
은행나무
5,900원



이현정 기자  hyundog96@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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