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나는 활자 중독자였다. 읽을 수 있는 것은 뭐든지 읽었다. 배달된 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빠짐없이 읽고 끼어온 전단지까지 다 읽었다. 나는 읽을 것이 좀 더 있었으면 하고 소망했다. 교수가 되는 바람에 내 소망은 이뤄졌다. 그러나 좋은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 나는 이제 매일 책과 논문과 서류에 파묻혀 허우적거린다. 읽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나는 더 이상 신문을 통째로 읽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번 기고 요청을 받아 지난 5월 14일 발행된 『대학신문』 1964호 전체를 꼼꼼히 읽은 것은 오랜만에 갖는 경험이었다. 나는 기사에서 두 가지를 기대했다. 밀도와 젊음. 온라인 매체가 신속성에서 강점을 가질 수 있다면, 『대학신문』과 같은 인쇄 매체는 심층성에서 강점을 가질 수 있다. 한정된 지면에 심층적인 기사를 싣기 위해선 밀도 높은 글쓰기가 필요하다. 아울러 기자들이 대학생이라는 『대학신문』의 특성이 강점으로 승화되기 위해선, 학생만이 가질 수 있는 젊은 시각에서 사안에 접근하는 글쓰기가 필요하다.

밀도의 측면에선 이번 호 「기획」면에 실린 시리아 내전에 대한 기사가 돋보였다. 내전의 구도가 권위주의 대 민주주의에서 세속주의 대 이슬람주의의 투쟁으로 바뀌었다는 점, 그리고 내전의 본질이 사실은 종교보다 지정학적 패권 다툼에 있다는 점을 깊이 있으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서술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반면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관련 기사들은 밀도의 측면에서 아쉬웠다.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과의 인터뷰 기사와 2018 한반도 정책 세미나 토론회 기사 모두 기자의 관점이 아니라 취재 대상자의 관점에서 정상회담의 의의와 회담 이후 전망을 분석한 내용만을 담고 있었다.

젊음의 측면에선 ‘타투(tattoo), 몸에 피어나는 이야기’와 ‘로켓에 빠지다’라는 기사가 돋보였다. 앞의 기사는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문화적 트렌드로 자리잡은 타투를 소재로 삼아 흥미를 유발하면서도 타투의 문화적 의의 및 관련된 법적, 사회적 쟁점들을 충실하게 소개함으로써 내용의 심층성을 확보했다. 다만 제목을 ‘문신, 몸에 피어나는 이야기’로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음의 저항적 성격을 감안한다면 “문신”이 더 나은 단어인 것으로 보인다. 뒤의 기사는 로켓에 심취해 관련 동아리 활동을 하며 로켓 제작에까지 빠져든 학부생을 인터뷰함으로써 우리 학교에 얼마나 다양한 관심과 취미를 갖고 있는 학생들이 존재하는지 새삼 일깨워줬다. 다만 좋은 소재에도 불구하고 기사의 내용이 소략한 점이 아쉬웠다.

장터에서 주류 판매가 불허됐다는 기사와 관해 장터 주류 판매 문제를 더 근본적으로 논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요즘 학생들이라면 장터에서 당연히 술을 팔아야 한다는 통념 자체에 비판적 시각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나아가 술이 들어가야만 즐겁게 놀 수 있다거나 서로의 진심을 털어놓을 수 있다거나 정말로 친해질 수 있다는 통념에도 비판적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럴 때만 1차 폭탄주와 2차 호프집, 3차 노래방이라는 우리 세대의 문제 많은 회식 문화가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강진호 교수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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