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1인 시위 현장

2016년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혼술남녀〉는 청년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며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정작 〈혼술남녀〉 제작현장에는 따뜻함이 없었다. 과도한 업무와 존중받지 못한 노동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조연출 이한빛 PD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은 열악한 방송 노동환경을 들췄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이 잇따라 나타났다. 그런 흐름의 한 줄기로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한빛센터)는 지난 8일부터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대학신문』은 지난 17일 한빛센터의 외로운 1인 시위 현장을 찾아갔다.

◇현장은 흐리다=한빛센터는 미디어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설립됐다. 이한빛 PD의 죽음으로 누구보다 슬펐을 유족들이 또 다른 희생자를 막기 위해 재단과 센터를 만든 것이다. 한빛센터는 이런 설립 목적에 맞춰 주요 방송사를 대상으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17일 CJ E&M 건물 앞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하늘 아래서도 홍승범 한빛센터 사무차장은 1인 시위에 나섰다. 이한빛 PD를 사지로 내몬 열악한 드라마 제작환경의 개선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피켓엔 △스텝의 노동기본권 보장 △적정 수면시간 보장 △안전한 제작환경 보장이라는 요구가 적혀있었다. 이런 권리들은 드라마 제작현장이 살인적인 노동 시간과 안전하지 못한 환경을 관행처럼 받아들이면서 그동안 지켜지지 않았다. 실제로 해외의 촬영현장과 달리 한국에선 자동차 신(Scene) 촬영 시 산업 안전 가이드가 부재한 점이 수차례 지적된 바 있다.

◇맑은 날을 위한 투쟁=흐린 하늘 아래서도 한빛센터는 맑은 날을 바라며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1인 시위만이 아니다. 한빛센터는 ‘미디어 신문고’를 통해 제작현장의 노동자들에게 부당 대우를 제보받고 이들에게 법률 상담을 제공한다. 또 ‘드라마 제작현장 노동인권 개선 토론회’를 공동 주최해 방송 노동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이 점차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났다. ‘미디어 신문고’의 제보 접수는 SBS 드라마 〈시크릿 마더〉 제작현장의 개선을 이뤄냈고, 17일 1인 시위의 장소가 MBN 드라마 〈리치맨〉 촬영장에서 CJ E&M 사옥으로 바뀐 것 또한 〈리치맨〉의 제작사가 인원을 충원하고 적정한 노동 시간을 보장하라는 한빛센터의 요구를 수용했기 때문이다.

◇방송 노동자들을 위해 맞는 비=활동 중 힘들었던 점이 있냐는 물음에 홍승범 사무차장은 짧게 고민하곤, 지난 16일 JTBC 앞에서 진행한 1인 시위를 떠올렸다. 그는 “사옥 처마 밑에서 시위를 하려 했으나 관계자들이 폭우가 쏟아지는 밖으로 내쫓았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홍승범 사무차장을 비롯한 한빛센터의 사람들은 과로와 무시, 폭언이 비처럼 내리는 현장의 노동자들에게 우산을 씌워주려 한다. 정작 그들은 비에 흠뻑 젖어 가면서 말이다. 어둡고 흐린 현실이지만 환한 미래를 위한 그들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언젠가 그들의 희생이 멈추고 맑게 갠 하늘 아래 모두가 웃을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

사진: 대학신문 snupress@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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