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명운을 건 시험을 치르다
대학, 명운을 건 시험을 치르다
  • 김용훈 기자
  • 승인 2018.11.1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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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개혁 및 구조조정의 배경과 쟁점을 짚다

성적을 확인한 여느 학생이 그렇듯, 전국의 대학이 성적표를 받아들고 희비가 엇갈린 표정을 짓고 있다. 9월 3일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진단평가)의 최종 결과가 발표돼 정원 감축 및 재정지원 제한 대상 명단이 확정된 것이다. 명단에 오른 대학은 피해를 줄이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몇몇 대학에선 총장과 책임자가 사퇴하거나 책임 공방이 벌어지는 등 혼란스러운 광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발표 직후 평가 자체의 타당성과 효과에 대한 논란이 점화됐다. 질 좋은 고등교육을 위한 고육책이란 입장의 교육부와 여러 문제를 지적하고 나선 대학 및 전문가가 대립각을 세웠다. 이에 『대학신문』은 대학 당사자와 전문가의 이야기를 통해 대학 평가의 현주소를 점검하고자 한다.

성적표를 받아들게 된 이유는

헌법에 근거해 자율성을 보장받는 대학이 교육부로부터 평가를 받게 된 배경엔 학령인구의 감소가 있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무렵엔 대학 입학자원이 약 40만 명에 불과해 현재 대학 입학정원의 총합인 50만 명에 비해 10만 명가량의 간극이 생기게 된다.

학령인구 감소는 김영삼 정부의 ‘대학설립준칙주의’와 맞물리며 대학의 상황을 악화시켰다. 대학설립준칙주의는 1995년 5.31 교육개혁의 일환으로 기존의 ‘대학설립인가제도’가 까다로운 과정을 요구했던 데 반해, 대학 설립에 필요한 요건을 완화하고 해당 요건을 충족하면 여타 심사 없이 설립을 가능케 한 정책이다. 대학설립준칙주의 추진 당시 교육부는 학령인구 감소 추세로 인한 신입생 미달이 우려된다는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전문가들은 예상했던 우려가 현실화됐다고 말한다. 대학교육연구소 임은희 연구원은 “대학설립준칙주의 도입으로 대학 설립이 쉬워지면서 7~80개의 대학이 신설됐다”며 학령인구가 줄어들 것이 예상됨에도 대학과 학생 수가 늘어날 정책을 실시함으로써 현재 상황이 불거졌다고 설명했다. 대학설립준칙주의는 비리 대학과 부실 대학의 설립을 방관했다는 비판으로 2013년에 폐지됐지만, 그 폐단은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처럼 정원 감축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대학 전반에 걸친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구조조정의 선택지는 정부가 주도하는 구조조정과 시장 원리를 통한 구조조정 두 가지가 있었지만, 후자의 부작용이 우려됐다. 시장 원리에 따라 대학의 구조조정 및 존폐를 학생의 선택에 맡긴다면, 좋은 교육을 목표로 노력함에도 폐교되는 대학이 속출할 가능성이 농후하며 그 과정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에 돌아간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교육부에서 정책 집행을 경험한 배상훈 교수(성균관대 교육학과)는 “학생이 대학을 선택할 때 주어진 정보가 불충분하거나 선택 기준이 비합리적일 수 있다”며 “학생을 가르치는 대학의 역량보다 수도권에 자리 잡았는지의 여부가 주된 선택의 기준이 되는 입시 현실에서 지방대학이 억울하게 고사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또한 박주호 교수(한양대 교육학과)는 “사립대학은 설립자가 재산을 회수하기 어려운 구조로 인해 여건이 낙후돼도 폐교 직전까지 버틸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사립학교법」 제28조가 ‘학교법인이 그 기본재산을 매도·증여·교환 또는 용도변경하거나 담보에 제공하고자 할 때 또는 의무의 부담이나 권리의 포기를 하고자 할 때에는 관할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해 설립자는 폐교 및 법인 해산을 꺼리게 된다. 이에 해당 학교는 대책 없이 교육과 운영의 질적 하락을 거듭하고, 한계에 도달해서야 구성원에 큰 충격을 안기며 돌연 문을 닫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역대 정부는 교육부 주도 정책을 통해 정원을 선제적으로 감축하는 방안을 택해왔다.

2014년 1월 교육부가 대학구조개혁의 추진을 발표하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본격화됐다. ‘대학구조개혁 추진계획’은 2014년부터 2022년까지 총 3주기를 설정해 두고 각각 4만, 5만, 7만 명, 도합 16만 명의 정원 감축을 예정했다. 그렇게 1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2014-2016)가 실시됐고 문재인 정부의 교육부는 2주기 평가를 진행하게 됐다. 교육부는 1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가 △대학 간 서열화를 고착시키고 △지역대학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으며 △교육여건 개선의 방향성 제시가 미흡했다는 점을 주의하며 진단평가로의 전환을 통해 평가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성적에 이의를 제기하다

하지만 평가를 개선하겠다는 교육부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대학과 전문가는 여전히 진단평가에 만족하지 못했다. 비판의 주요 내용으론 △지역대학 고려가 미흡하다는 점 △상이한 대학을 획일적인 지표로 평가했다는 점 △서열을 평가하는 데 그치고 대학경쟁력 신장엔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 제기됐다.

◇지방대학에 대한 미흡한 고려=평가가 지역사회에서 대학이 수행하는 역할을 간과해 국토 발전의 불균형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2017년 12월 교육부가 발표한 ‘2018년 대학기본역량진단 추진 계획’은 “권역별 평가를 통해 질 높은 지역대학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전국을 5개의 권역(수도권, 강원·대구·경북, 충청, 호남·제주, 부산·울산·경남)으로 나눠 평가함으로써 균형을 추구하겠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평가 결과 수도권 대학의 자율개선대학 선정 비율보다 지방 소재 대학의 선정 비율이 저조하게 나타났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전현정 평가기획팀장은 “1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처럼 2주기 진단평가 또한 정원 감축 대상이 된 대부분 대학이 지방 소재 대학교”라며 지역대학을 보호하겠다는 정부 주도 구조조정의 취지가 무색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조선대 김수관 대외협력처장 역시 “지방대학은 산학 기반과 학령 인구수에 있어 수도권보다 불리할 수밖에 없다”며 “대학의 노력, 교육 수준과는 무관한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배상훈 교수는 실제 진단평가의 핵심지표인 학생 충원율과 취업률이 근방의 일자리가 많지 않는 입지 조건 탓으로 학생에게 선호되지 못하는 지방대학에 불리함을 안겨준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배 교수는 “지역사회에서 교육뿐 아니라 경제, 문화, 복지를 책임지는 대학의 역할을 인지해야 한다”며 국토 균형 발전의 당위를 위해 지방대학에 불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다잡을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특색, 같은 지표=설립 이념, 운영 형태, 규모가 서로 다른 대학을 획일적인 지표로 평가하는 것 또한 문제가 되고 있다. 획일적인 평가로 대학의 특색이 사라지고 특정 대학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지적이다. 전현정 팀장은 “대학이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선 진단평가의 지표에 대학 운영을 맞춰야 한다”며 대학이 계획한 운영 방안을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양광호 고등직업교육연구소장은 “예술계 대학이 공과 대학보다 취업률이 낮은 게 당연하지 않겠냐”며 “설립 형태에 따라 몇 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평가해야 한다”고 일률적 지표의 불합리함을 지적했다. 사립대학에 대한 정부지원금이 부족한 현실을 상기시키며 상대적으로 재정이 안정적인 국공립대학과 그렇지 못한 사립대학을 나눠서 평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전문대학도 진단평가로 인한 애로를 호소하고 있다. 양광호 소장은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의 자율개선대학 선정 비율 격차에 대한 불만을 전했다. 외견상으로는 비슷한 수치이지만 진단에서 제외된 대학을 비율의 분모에 넣지 않아, 전문대학의 선정비율이 저조하다는 것이다. 더불어 전문대학은 평가 준비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양 소장은 “일반대학보다 인력이 부족한 전문대학은 평가를 준비하기 위해 학생 교육에 소홀해진다”며 배보다 배꼽이 큰 전문대의 상황을 알렸다.

시험의 본 목적은 실력 향상에

교육 전문가들은 대학 경쟁력 강화를 위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현재 진단평가는 정원을 감축하는 구조조정에 집중해 대학의 학사구조, 교수 방법 등 실질적인 내실을 다지는 데 효과적이지 못했다.

배상훈 교수는 한국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제3의 독립적인 평가기관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 교수는 “평가를 담당하는 국장, 과장급의 인사가 끊임없이 교체됐다”며 “연속성 없는 평가로 인해 평가의 노하우와 자료가 축적되지 않고, 평가는 개선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평가기구가 정부, 대학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아야 연속성 있는 평가를 수행하며 경쟁력 강화와 교육의 질적 향상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제3의 기구가 대학의 다양한 특성을 고려한 평가를 수행하고 컨설팅을 진행하면서 대학의 역량을 보완할 수 있으리라 전망했다.

한편 박주호 교수는 대학의 혁신에 초점을 맞춘 평가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일반적인 대학운영 기준이나 성과지표를 적용하는 평가가 대학교육을 획기적으로 향상할 순 없다”며 수월성 제고에 적합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 경쟁력에 부합하는 특정 영역의 고등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평가 기준과 방법을 차별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예컨대 정량적인 지표보단 대학이 전문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교육여건과 발전계획을 갖췄는지를 확인할 질적 평가 기준을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평가가 대학 간 경쟁을 심화하는 것도 비판됐다. 동일한 지표로 상대평가를 실시해 처우를 결정하기 때문에 0.1점이라도 올리려는 소모적인 행태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배상훈 교수는 “국내 대학끼리 경쟁하더라도 해외 대학을 넘어서지 못했다”며 “소모적 경쟁보다는 공유와 상생의 리더쉽을 펼치도록 정부가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대학이 서로 노하우와 장점을 공유하며 같이 발전할 수 있는 제도가 제안된다.

지금까지 대학은 학생에게 학점을 매기거나 학생에게 평생을 좌우할 간판을 부여하는 구실을 했다. 진학률이 세계 수위를 다투는 대한민국에서 오히려 대학의 역량과 역할이 한정됐다는 점은 우리 사회가 새겨들어야 할 역설이다. 미래가 청년 세대에게 달렸다면 청년을 가르치는 대학 또한 미래의 모습을 결정할 요인일 것이다. 그렇기에 대학 사회와 교육부뿐 아니라 사회 전반이 대학의 경쟁력 강화와 사회적 역할 제고를 위해 진중한 고민과 논의에 나서야 할 것이다.

삽화: 손지윤 기자 unoni0310@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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