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우편집배원의 노동 현실과 개선 방향을 짚다

올해 9월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기획추진단)이 1년 남짓한 활동 내용을 발표하면서 우편집배원의 열악한 처우가 조명됐다. 하지만 기획추진단의 발표는 이미 수차례 제기된 문제를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에 불과했다. 기획추진단에 참여한 김형렬 교수(가톨릭대 직업환경의학교실)는 “우편집배원의 열악한 근무 조건이 사회에 알려진 지 벌써 10년 가까이 흘렀지만 유의미한 변화는 없었다”며 이번에야말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로와 안전·보건 문제 심각해=우편집배원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기획추진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편집배원의 연간 노동시간은 2,745시간(2017년 기준)으로 한국 임금노동자 평균(2016년 기준)보다 693시간, OECD 평균(2016년 기준)보다 982시간 길다. 일수로 따지면 한국 노동자 평균보다 87일가량 더 일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들은 하루 11시간 이상을 일하면서도 휴가를 자유롭게 쓰지 못하고 휴게시간 또한 하루 평균 약 35분으로 여타 노동자에 비해 매우 짧다. 이렇듯 집배원의 노동 강도가 극심한 것은 우편 물량에 비해 집배원의 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버스기사·우편집배원 노동 착취 근절법’을 발의한 바른미래당 이찬열 국회의원은 “집배원들은 하루 평균 1,000통의 우편물을 배달해야 한다”며 작금의 구조에선 집배원이 과로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국우정노동조합 이행무 홍보국장 역시 “1인 가구 세대 및 귀촌, 귀농 세대가 증가하는 등 집배원의 배달 구역이 확대되고 있다”며 우편집배원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밝혔다.

우편집배원은 작년까지 근로기준법의 보호도 온전히 받지 못했다. 이찬열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올해 초에 통과되기 전까지 우편집배원은 근로시간 특례업종으로 분류돼, 제한 없이 연장 근로가 가능했다. 하지만 특례업종에서 제외된 지금도 우편집배원은 여전히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형렬 교수는 공무원 신분의 집배원, 비정규직 집배원, 택배 업무를 전담하는 위탁배달원 등 우편집배원의 형태가 다양하며, 근로기준법이 그 모든 형태의 집배원을 포용하고 있진 않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공무원 신분의 집배원은 근로기준법이 정한 52시간 상한이 적용되지 않으며 택배 업무 위탁배달을 하는 노동자는 자영업자로 구분된다”며 사실상 비정규직 집배원에게만 52시간의 노동시간 상한이 적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심지어 비정규직 집배원의 노동시간 상한을 지키기 위해 공무원 집배원의 노동시간이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며 근로기준법의 취지가 무색한 실정을 지적했다.

안전 및 보건 문제도 심각하다. 지난 5년간 매년 평균 285건의 안전사고가 발생했고 전체 사고의 84.2%는 이륜차 사고였다. 김형렬 교수는 이를 두고 “배달 속도를 높이기 위해 이륜차를 이용하는 것”이라며 집배노동자의 안전보다 일의 효율이 중시되는 현실을 꼬집었다. 기획추진단 또한 우편집배원의 안전을 위해 사륜차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최근 10년간 166명의 우편집배원이 사망한 데엔 교통사고뿐 아니라 자살, 질병이 주된 원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기획추진단의 연구 결과 우편집배원은 직무 스트레스, 대기오염물질 노출 등의 원인으로 심혈관계질환, 호흡기질환, 소화기질환의 발병 위험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환경 개선, 핵심은 증원에=우편집배원 처우 개선을 위해선 무엇보다 우편집배원 증원이 핵심이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과한 업무량과 지나친 근로 시간 때문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을 분담할 인력을 늘리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획추진단은 우편집배원의 주 52시간 이하 근무를 실현하기 위해 2019년 내에 정규직 1,000명을 증원하고 이후 추가재정을 확보해 궁극적으로 2,000명을 증원할 것을 우정사업본부(우정본부)에 요구했다. 작년 6월 우정본부가 올해 안으로 인력 부족을 해소하겠다고 공언했음에도 아직까지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모양새다.

편지를 쓰는 사람도 점차 줄어드는데 불필요하게 공무원을 늘리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존재한다. 하지만 김형렬 교수는 “일반 우편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등기, 택배 등 상대적으로 배달하기 힘든 물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이러한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일반 우편물은 매년 4%씩 감소하는 데 반해 소포와 택배의 물량은 매년 8%가량 증가하고 있다. 더불어 김 교수는 우편 업무가 공공서비스의 성격을 띤다는 점을 강조하며 공무원 신분의 집배원이 증원되는 것이 옳다고 밝혔다.

한편 우편집배원 증원에 필요한 예산 확보를 위해선 우편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실제로 우정본부는 우편 요금을 50원 인상함으로써 우편집배원을 충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행무 국장은 “집배원 노동환경 개선 등을 위해 OECD 선진국 우편요금의 80% 수준으로 우편요금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50g 기준 한국의 우편요금은 350원으로 미국(439원), 영국(725원), 일본(823원) 등에 비해 현저히 낮은 상황이다. 이찬열 의원은 “우정본부의 적자가 누적되고 있으면서도 증원은 절실한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을 국민에게 잘 설명한다면 큰 무리 없이 요금을 인상할 수 있을 것이라 예측했다.

이외에도 우편집배원 노동환경 개선 방안으로 안전보건관리시스템 도입이 거론됐다. 김형렬 교수는 “4만여 명이 근무하는 우정본부에 안전보건을 담당하는 전담인력이 한 명도 없다”고 비판했다. 50인 이상의 사업장은 ‘산업안전보건법’ 제16조 및 그 시행령에 따라 보건관리자를 둬야 하지만, 우정본부는 이런 의무에서 면제돼 안전보건 위험을 방관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기획추진단은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40명의 안전보건 전문 인력을 확보해 전담 기구를 설치할 것을 권고했다. 업무 수행 방식 자체의 개선도 언급됐다. 이행무 국장은 “집배 업무의 기계화, 자동화 설비 확대, 등기우편 배달제도 개선 및 집배업무 절차 개선을 통해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며 집배 시스템의 대대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형렬 교수 역시 등기제도의 비효율성을 지적하며 인원 확충과 더불어 제도의 개선도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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