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아 강사
미학과

소크라테스는 억울하다. 그는 짓지도 않은 죄목으로 고소당하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회적으로 명망 높은 지식인, 예술가, 기술자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괘씸죄치고 과한 판결이다. 사형 집행이 임박한 어느 밤, 친우인 크리톤이 옥중에 있는 소크라테스를 찾아와 탈옥을 권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국가의 법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크리톤의 권유를 물리친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결정은 때로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로 요약돼 오용되기도 했다. 악법이 법이라는 말은 ‘붉은 사각형은 사각형이다’라는 말과 같은 논리적 형식을 가지고 있고 이렇게 논리적으로 분석될 경우에만 참이다. 법은 올바르고 정의로워야 하며 그럴 경우에만 그것을 모두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나쁜 법률은 법률이 아니다. 어떤 법률이 나쁘다고 판단됐다면 그것은 따라야 할 것이 아니라 폐기되거나 개정돼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법의 심판을 받아들이고 독배를 마신 것은 나쁜 법률도 법률이므로 무조건 지켜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법률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의인화한 법률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 그대(소크라테스)가 떠난다면, 그대는 해를 입고서 떠나게 되는 것이나 이는 법률인 우리로 해서가 아니라 인간들로 해서인 것이다.” 소크라테스를 죽게 한 것은 나쁜 법이 아니라 나쁜 사람들이므로 법을 어기고 탈옥해 법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은 엉뚱한 곳에 앙갚음하는 결과를 낳는다. 아테네의 법체계가 나쁜 것이었다면 소크라테스는 칠십 년 이상 그러한 법을 따르며 살지 않았을 것이고 법에 근거한 재판 절차에 따라 자신을 변론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B 학점을 받은 학생은 억울하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상대평가라는 평가 규칙으로 인해 A 학점을 받지 못했다. 재수강을 해서라도 학점을 올리고 싶지만 B 학점은 재수강을 할 수 없다는 또 다른 규칙이 발목을 잡는다. 이 극한 경쟁 시대에 B 학점이라는 오점이 있는 성적표를 가지고 어떻게 저 좁은 취업 문을 통과할지 막막하다. 고민 끝에 학생은 어느 날 밤 담당 과목 교수에게 메일을 보낸다. B 학점을 C로 내려주실 수 있을지를 묻는.

김영란법 시행이 한참 이슈였던 당시 잠시 사라지는 듯했던 이러한 요청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학점을 올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내려달라는 것인데 무엇이 문제인가? 정당한 사유 없이 학점을 조정해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문제지만 B를 C로 내리는 것은 A를 B로 내려달라거나 C를 D로 내려달라는 것과 다르다.(물론 이런 요구를 하는 학생은 없다) B를 C로 내리는 것은 B 학점 재수강 금지 규칙을 피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에 문제다. B 학점 재수강 금지 규칙이 나쁜 규칙이라면 고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B 학점을 없애기 위한 재수강으로 학생들이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규칙의 취지에 공감한다면 자신이 불리한 입장이 됐다고 해서 규칙을 위반해서는 안 된다. B 학점 재수강 금지 규칙이 학점 인플레이션 방지 효과도 있다면, 이 규칙을 어기고 재수강해 얻은 A 학점은 부당한 이득이 된다.

학생들의 요구를 받아주는 교수들도 문제다. 학생들의 상황을 헤아려 좋은 게 좋은 거로 생각해서인가? 김영란법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부당한 요청에 동조하는 것은 좋은 가르침이 아니다. 법의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 법은 무용하다. 나쁘게 사용된 법은 소크라테스를 죽인다. 학칙 위반에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끌어다 대는 것은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닐까? 요즘 국가의 사법 체계가 나쁜 사람들에 의해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지를 보며 이것이 과연 관련 일부 법조인들만의 문제일까 생각해본다. 앞으로 우리가 죽일지도 모르는 소크라테스를 살리는 방법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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