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열의로 세상을 빛나게

서울대학생 여러분께,

 

먼저 글을 통해서나마 반가운 만남이 이루어지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얼마 전 대입수능시험이 끝났지요?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치열한 경쟁을 뚫고 우리나라 최고의 엘리트들만 모인다는 서울대학생이 되신 여러분들께 먼저 축하의 말씀부터 전해야겠네요.

 

오늘 저는 여러분들과 진정한 실력이란 무엇일까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간판 중심의 사고방식, 속보다는 겉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통념과 편견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반성해보면 어떨까 하는 것입니다.

 

제 얘기를 먼저 해볼까요.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저는 1980년 독일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KBS 교향악단의 전임지휘자가 되었습니다. 삼십대 초반이었던 제가 우리나라에서 최고라는 오케스트라의 지휘봉을 잡은 것이지요. 사람들은 경험도 적고 젊은 지휘자가 오랜 연륜과 권위를 가진 오케스트라를 이끌게 되었다는 데 더 큰 관심을 가졌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로부터 십수 년이 흐른 뒤 수원시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금난새가 KBS에서 수원으로 쫓겨났다고 수군대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더군요.

 

과연 그랬을까요? 수원시향에서 지휘자로 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연주회에 가보았더니 무대에 있는 연주자 수와 객석에 앉은 청중들의 수가 거의 비슷한 정도더군요. 그나마 협주곡이 끝나고 휴식시간이 되자 청중들은 반으로 줄어들더랍니다. 협연자를 보러 온 청중들이 눈도장을 찍고 돌아가버린 탓이었지요. 씁쓸했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 음악계의 현실이었답니다.

 

그 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훌륭한 지휘자란 과연 누구일까. 베를린 필이나 뉴욕 필하모닉처럼 명성 높은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사람? 아니 그보다는 자신으로 인해 그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보다 훌륭해지고 단원들의 태도가 더욱 진지해지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지휘자의 진정한 능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파산한 회사를 혁신하여 건실한 기업체로 다시 살려내는 능력을 가진 자가 훌륭한 CEO인 것처럼.

 

저는 수원시향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결심했고 그곳에서 열정을 바쳐 일했습니다. 이제 수원시향은 주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연간 50회의 연주를 소화하는 내실있는 오케스트라로 성장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연주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가져봅니다. 예술의 전당이나 카네기홀처럼 훌륭한 시설과 권위를 가진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연주? 아니 그보다는 내 연주로 인해 그 장소가 보다 값지고 의미 있는 곳이 되도록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훌륭한 연주라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도심의 빌딩로비나 도서관, 병원, 사관학교 등을 찾아가며 꾸준히 연주해온 것은 바로 이런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KBS 교향악단 지휘자 시절 청와대로부터 연주초청을 받은 적이 있었답니다. 단원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일과 후 시간까지 맹연습을 하더군요. 하지만, 같은 단원들이 지방 소도시의 이름없는 공연장에서 연주를 요청받았을 때는 긴장 풀린 모습으로 연습에 그다지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이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얘기를 마무리해야겠지요? 예술의 전당에서 연주한다고 해서 꼭 훌륭한 연주일 수 없듯이 서울대생이란 간판 뒤에 안주해서는 진정한 실력을 쌓을 수 없으리라는 말씀을 전하고 싶군요. OECD에 가입한 경제 강국이 된 지금이지만 여전히 세계 100위권에 우리나라 대학은 하나도 포함되지 못한다는 얘기가 들려오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의 열정과 노력으로 서울대학이 명실공히 세계 속에 우뚝 선 지성의 요람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이만 펜을 놓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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