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회 대학문학상 소설 가작
제60회 대학문학상 소설 가작
  • 대학신문
  • 승인 2018.12.02 05: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기견

소년은 가로 세로 1미터 깊이 40cm가량의 2층으로 쌓은 플라스틱 박스에 작은 개들이 즐비하게 들어선 방을 방호 유리 너머로 힐끗 보았다. 문 쪽에 가까운 놈은 마치 노인이 앉아서 조는 것처럼 고개를 치켜들고 눈을 감고 있었다. 지긋이 감은 하얀 눈썹 쪽에 작은 종기가 붙어있었다. 건너편의 녀석은 앉아있다가 소년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맹렬히 짖어대었다. 그 옆 놈들은 한 마리가 짖기 시작하자 따라 허공을 향해 짖었다. 그러자 그 작은 네모난 교도소가 증오에 찬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 산을 순식간에 가득 채우는 붉은 단풍처럼. 반대편에는 큰 개들이 있는 철창 울타리 방이 있었다. 소년은 그곳에서 어떤 개가 두 앞발을 바닥과 철장 사이 공간에 삐죽 내놓고 코만 철장 사이에 빼놓은 것을 보았다. 오만한 현대미술의 한 장면처럼. 어떤 방에서는 하늘에 대고 절규하는 물음 같은 울음소리가 들려 오기도 했다. 큰 개들이 있는 복도의 문이 닫혔다. 그러자 버려진 것들의 보관소는 다시 모두에게서 버려졌다. 소년은 카운터에 서서 방명록에 흐릿한 펜을 들어 이름을 적었다. 카운터 건너편에 앉은 접수원은 푸른 작업복을 두르고 자판을 두드렸다.

이 한 실

x고등학교 3학년

2018년 9월 *일

봉사 시작 시간 : 2시 00분

봉사 종료 시간 : 4시 00분

고등학생이세요? 접수원이 물었다. 미성년자는 이 봉사 못해요.

소년은 지갑에서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였다. 소년은 스무 살이었다. 접수원이 그것을 받아 소년의 얼굴을 슬쩍 훑고는 불편한 신음을 내며 고개를 꺾었다.

끝나고 봉사증 프린트해 줄게요. 옷 저기 사물함에 넣으시고 손 닦으시고 나갈 때도 손 닦고 나가세요.

소년은 그녀의 말대로 한 뒤 카운터 코앞의 좁은 복도 긴 의자에 두 손을 깍지 끼고 앉았다. 20평도 안 될 공간에 30마리의 개들이 있었다. 접수원은 그에게 잠시 기다리라 하고 울타리를 열고 어딘가 들어갔다.

잠시 후 직원은 목줄을 죈 큰 개를 데리고 복도로 나왔다. 직원은 산책로가 빨간 펜으로 표시된 지도를 보여주며 비닐봉지와 물, 목줄을 소년에게 넘겼다.

나이가 많은 개라서 멀리 못 가요. 횡단보도 전 까지만 갔다가 오세요.

큰 개는 이름이 ‘호동’이었다. 호동은 밝은 흰색의 긴 털을 가졌고 무게가 30kg은 나가 보이는 중대형 견이었다. 호동은 한쪽 눈이 멀었다. 흰색의 오롯한 석조 조형물이 투명한 각막 안에 박혀있었다. 그나마 남은 눈도 거의 보이지 않는지 소년의 무릎이나 철제 울타리에 자꾸 머리를 박았고, 신중하지 못하게 걸음을 내디뎠다. 후각에 감각을 대부분 의지하는 듯, 언제나 코를 들이대고 냄새를 맡았다. 호동은 다소 턱이 높은 한 번 꺾어지는 계단을 느릿느릿 내려갔다. 셀 수도 없이 많은 한 번뿐인 만남들의 냄새가 묻어 있는, 냄새의 안치소 같은 계단의 턱들을.

직원은 소년에게 그가 만져지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소년은 그 마음을 잘 이해했다. 호동 역시 성대 수술을 받았는지, 혹은 온통 흐릿한 세상 속에서 입을 굳게 다물고 살기로 마음먹은 것인지,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소년은 호동 앞에서 문을 열고 보호소를 나섰다. 너비 이 미터의 보도타일 인도가 펼쳐지고 그 너머는 아스팔트 도로였다. 소년은 산책을 시킬 공원이 있는 쪽으로 목줄을 끌었고 호동은 몇 걸음 그의 발걸음을 따라 걸었다. 오후의 거리는 먼지가 날렸으나 이따금 한두 명이 그들을 스쳐 갔다. 호동은 사람들에게 달려들지도 않았으며, 이를 드러내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마주치는 사람들은 한쪽 눈이 허연 호동을 보고 놀라 숨을 들이켰다. 겨우 몇 걸음 문을 나섰을 때 호동은 멈춰 섰다. 그는 산책길이 아닌 반대 방향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목줄을 당겼지만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소년 몸무게의 절반의 개를 억지로 끌어당기기는 쉽지 않았다. 호동은 네 다리로 버텨서 흔들리지 않고 한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수십 년 전 버려두고 온 핏덩이의 자식이라도 있는 듯이. 소년은 그가 바라보는 곳을 응시했다. 이 무의미한 움직임과 떨림 속에서 그는 어떤 뚜렷한 시간을 느끼고 있을까, 무슨 기억을 코끝에서 만들어내고 있을까.

소년은 호동의 등에 손을 올렸다. 눈이 먼 개는 손이 닿자 움찔했지만 뒤돌아보지는 않았다. 소년은 손을 허공에 떼었다. 그는 바지 아래 허벅지를 손끝으로 긁었다. 개는 여전히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남녀가 지나가다가 호동의 얼굴을 마주하고 흠칫 놀라 비켜섰다. 소년은 다시 손을 올렸다. 호동은 들판을 바라보는 사자처럼 고개를 쳐들고 가만히 섰다. 등, 목덜미, 머리 가죽, 옆구리, 목과 등이 이어지는 부분. 소년은 바닥을 잔잔하게 고르는 농부처럼 털들 사이를 헤집었다.

호동은 가려고 한 산책길의 반도 가지 않아서 다시 뒤돌아섰다. 소년이 조금 강하게 목줄을 당기자 잠깐 일어나 걷다가 다시 멈춰섰다. 눈이 먼 개는 한사코 산책 방향의 반대쪽을 보았다. 소년은 마침내 시멘트 턱에 엉덩이를 대고 주저앉았다. 개는 그 앞의 차의 타이어의 냄새를 맡다가 후미에 머리를 박았다. 소년은 손을 뻗어 개의 목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거친 덥숙한 털이 손가락 사이로 솟아났다.

노견은 기이하리만치 소년이 있는 쪽을 보지 않았다. 그가 소년의 눈길을 피하는 것 같지는 않고, 그저 소년의 존재를 머릿속에서 깨끗이 지운 듯했다. 의미 없는 일생에 대한 기억에게 했던 것처럼. 소년은 고개를 숙이고 그의 신발을 코로 훑는 개를 바라보았다. 미약한 풀들이 시멘트 틈 사이로 머리를 드리우고 잔뜩 짓눌려 있었다. 소년은 조금 더 호동의 몸을 쓰다듬다가 말했다.

그래. 돌아가자.

소년이 일어서 보호소를 향해 걷자 개는 처음으로 소년을 치켜보았다. 흐릿한 그림자의 중첩들이 스쳐 지나가고, 어떤 표정인지 알 수 없는 목줄을 쥔 자가 앞에 서 있는 광경. 구름처럼, 신의 뜻처럼. 호동은 머리를 내리고 바닥을 훑으며 나아갔다. 소년은 그에 발맞춰 천천히 걸어갔다.

보호소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그는 여전히 기묘한 지혜가 깃든 신중함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검은 코를 계단 턱에 대고 좌우로 헐떡거리는 모습은 어떤 엄숙한 비참함을 자아냈다. 개는 몇 계단을 남기고 멈췄다. 그리고 주의성 없는 아이처럼 소년의 무릎에 머리를 또 부딪혔다. 소년은 계단에 앉았다. 계단이 있는 복도는 몹시 어두웠다. 먼 창에서 흰빛 한줄기만 아른거렸다.

가자.

소년의 목소리가 암석으로 된 방에서 웅웅 울렸다. 개는 여전히 소년 쪽을 보지도 않았다. 대신 귀가 쫑긋했다. 소년은 팔을 호동의 등에 얹었다. 그는 느릿느릿 털을 골랐다. 그의 뒷다리엔 원형으로 털이 빠진 자국이 여러 군데 있었다. 소년은 어두운 복도에서 그것을 발견했다. 개가 코를 숙여 소년의 겨드랑이를 훑었다. 거의 다한 생명처럼 작고 꺼져가는 숨결이 코에서 흘러나왔다.

가기 싫어?

소년은 일어섰다. 그리고 목줄을 손에서 놓았다. 개는 떨어진 푸른 색의 목줄에 코를 박고 킁킁거렸다. 소년이 한 발자국씩 계단을 내려가자, 호동은 냄새 맡던 것을 멈추고 뒤돌아 그쪽을 보았다. 어떤 것도 담기지 않은 흰 눈동자로.

네가 원하는 게 이거야?

호동은 목을 숙이더니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넌 멀리 가지 못해. 아까 직원이 말했잖아.

호동은 네 개의 털 뭉치 같은 발로 소년 옆에 섰다. 소년은 청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그리고 계단을 타박타박 내려갔다. 맨 아래에서 그는 흰 눈과 마주쳤다. 어둠 속에서 안광에 빛나는 투명한 눈. 호동은 늙은 늑대처럼 어깨를 구부리고 코를 계단에 박고 기어 내려왔다.

소년은 그대로 뒤돌아 문을 두 번째로 열어제쳤다. 호동이 그의 발치에서 어슬렁 걸어 넘어갔다.

소년은 열여섯 살 때 첫사랑을 했다. 그는 같은 반의 어떤 아이를 봤고 그 순간 그의 인생은 영원히 달라질 것을 깨달았다. 그 이전에도, 그 누군가에게도 그 비슷한 단어조차 배우지 못했는데도. 아침에 아스팔트를 걸으며 학교로 향하는 오르막을 오르면 완벽한 평원에서 아이가 걸어왔다. 그는 단 하나의 문장을 건네기 위해서 며칠을 고민했고 그를 창문 너머로 훔쳐보았으며 숨결과 존재를 느꼈다. 얼굴에 울긋불긋한 것이 올라오는 것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고, 떠올리는 것으로 어지러웠다. 일 년 동안. 파도처럼 생각과 감정이 굽이쳤다.

소년은 다르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었지만 경험한 적은 없었다. 그만큼이나 순수한 사랑이었다. 소년은 겨울에 첫 고백을 했고 그날 처음으로 자살을 시도했다. 그는 끝이 날카로운 볼펜으로 손목을 후벼 팠다.

다음 날부터 소년에게 완전히 다른 세상이 감싸 눌러왔다.

소년은 호동의 목에 질질 끌리는 목줄을 들어 잡고 호동이 바라보던 산책로 반대편의 길로 걸어갔다. 호동은 자꾸만 걸음을 멈추던 아까 와는 달리 고개를 쳐들고 쉬지 않고 발을 내디뎠다. 소년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터벅터벅 호동을 따라 걸었다. 오후 세시의 굴러떨어지듯 따가운 햇살이 얼굴을 비추었다. 다른 손에는 목줄과 휴지, 물이 든 주머니가 들려 있었고 마주치는 사람들은 그들을 힐끗 바라보고 지나쳤다. 소년과 개는 큰 자전거가 지나가는 전용 길을 피해 걸었고 사거리에 도달했다. 흰 원기둥 모양의 볼라드가 석상처럼 번듯이 서 있었다. 야외 테라스에 의자가 머리를 책상에 처박은 채 아무도 없는 커피집, 문 닫힌 핸드폰 가게, 검은 유리에 햇빛만이 음울하게 비치는 이름 없는 건물들의 창문들, 귀와 눈들. 호동은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횡단 보도에서 멈출 줄 알았다. 개는 앞발을 내놓고 납작 엎드렸다. 소년은 허리를 펴고 신호등을 기다렸다가 신호가 바뀌자 천천히 걸어갔다. 개가 볼라드에 이마를 한번 처박고 따라 걷기 시작했다.

호동은 쉼 없이 걸었다. 소년은 묵묵히 목줄을 쥐고 걸었다. 그들은 음식가로 들어섰다. 대학로와 식당 골목이 적당히 섞인 그곳에는 이른 오후 문 열지 않은 술집들과 몽환적인 불 꺼진 간판들이 즐비했다. 배달점 앞에는 빨갛고 하얀 오토바이가 덩그러니 짝다리를 짚고 서있었다. 분식집과 고깃집에서는 연기와 냄새가 흘러나왔다. 호동은 고개를 돌려가며 코를 열심히 비벼 댔다. 골목 끝의 사거리에서 개 짖는 소리가 연신 들려 오는 애견 ㅤㅅㅑㅍ이 나타났다. 작은 희고 갈색의 까만 눈동자를 가진 개들이 앙칼지게 짖으면서 허리 높이의 아크릴 판 울타리 안에서 까불었다. 호동은 그 개들에게 전혀 관심을 주지 않았지만, 어떤 개 한 마리가 아크릴 판에 바싹 다가와 호동을 주시했다. 새하얀 털이 몸을 둘둘 만 듯한 말티즈였다. 그들이 그 앞을 지나치자 그 조막 만한 개는 캉캉 짖으며 앞발을 대고 섰다. 신경질적인 그 목소리는 모든 색깔을 축낸 꽃들이 갈구하는 것을 바랬다. 작은 하나의 눈길과 손짓을.

개는 따스한 햇살이 저물어가고 짙고 더러운 하천처럼 푸르고 어두운 하늘이 퍼져 나갈 때까지 걸었다. 그들은 막 아파트 단지를 벗어난 참이었다. 번쩍이는 차양을 머리에 쓴 주민들이 산책을 하다가 그들을 보고 작은 목소리로 탄식 비슷한 소리를 냈다. 안경을 쓴 세명의 갈색 교복을 입은 덥수룩한 남자아이들이 웃으면서 지나가다가 그와 개를 보고 동시에 말을 멈추고 시선을 따라갔고, 전화를 하던 얇은 노란 등산 점퍼를 걸친 머리가 벗겨진 남자가 그들을 힐끗 보고 얼굴을 찌푸리며 차도로 내려가 자리를 피했다. 수백 년 동안 버려진 신전의 기둥같이 거대하고 검은 고가도로의 다리들이 발을 내리고 섰고 그 아래 무성한 풀이 자란 개천이 지나갔다. 호동은 고개를 숙이고 주의 깊게 코로 사방을 탐색하며 그곳으로 나아갔다. 호동은 결코 서두르지도, 멈춰있지도 않았다. 소년은 무릎까지 올라오는 꺼슬꺼슬한 풀들, 민들레들, 비릿한 풀내음을 헤치고 개천의 버려진 산책로로 내려갔다. 호동은 졸졸 흐르는 개천에 머리를 처박고 몇 모금 마셨다. 마셔도 되는 물인지 판가름이 나지 않았다. 어쨌거나 소년이 멍하니 바라볼 무렵 개는 이미 고개를 세차게 털고 방향을 틀어 앞으로 나아갔다. 인도교 위에서 어떤 남자가 멈춰서 그들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동화 속으로 걸어가는 것을 목격한 어른들처럼.

고가 도로 아래에서 그 개천은 풀과 날벌레와 악취가 점령한 음지였다. 이따금 축축한 흙이 바닥에서 느껴졌다. 호동과 소년의 숨소리와 발소리는 검은 극장에서 웅웅 울렸다. 호동은 이미 원래 산책로의 열 배는 넘는 거리를 걸어왔음에도 걷고 또 걸었다. 호동이 있던 유기견 보호소는 이곳에서 이미 수 킬로미터 멀어졌다. 어디로 가는 거니? 소년의 목소리가 다리 아래에서 메아리쳐 빽빽한 공기를 흐트러뜨렸다.

너는 어쩌다 세상에 태어났고 어쩌다 버려졌니? 누구에게 버려졌니? 호동, 그게 네 진짜 이름이니? 너는 암컷이니, 수컷이니? 내가 누군지 아니? 사람을 믿니? 신은?

니가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어. 아 씨발… 말 걸지 마. 저리 꺼져.

겨울날 소년은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의 앞에선 일 년의 첫사랑은 하교길의 주택가 사이에서 탁한 구슬에 비친 것처럼 일그러졌다.

미안해.

아니 소름 돋았잖아. 빨리 장난이라고 말해. 좆같은 장난 치지 마, 진짜.

소년은 그와 다섯 걸음 떨어져 있었다. 오래전에 문 닫은 가게의 회백색의 유리창에 그들의 모습이 희미하게 비쳐 보였다. 소리 없이 이름 없이 방들에 들어찬 모든 이곳 사람들이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다.

소년은 고개를 숙였다. 다른 아이는 침을 뱉고 누가 듣기라도 할까 등 뒤를 살폈다. 소년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키가 소년보다 조금 작은 그 아이는 작게 경고했다. 따라오지 마. 그리고 사라졌다. 흰 쓰레기 종량제 봉투 위에 얹힌 눈이 미끄러져 시멘트 바닥으로 사라지듯. 소년은 다리에 피가 통하지 않아 저릴 때까지 서 있었다.

개와 소년은 두 시간을 다리 밑을 걸었다. 이따금 꺾어지거나 더 깊은 곳으로 걸어 내려가야 했다. 무언가가 도사리는 함정을 경계하는 것처럼 호동은 신중히 탐색하고 확신에 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개천의 물줄기가 조금 더 깊고 거세어질 무렵 그들 앞에 두 개의 벌린 구멍이 나타났다. 소년의 키보다 조금 더 큰 그것은 커다란 하수도로 통하는 입구였다. 소년은 문득 개가 옛 주인을 찾아 돌아가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에게 이름을 주고 삶을 주고 잘 곳을 주었다가 돌연 사라진 옛 냄새. 소년은 저 하수도 끝에 잔뜩 부패한 시신이 있는 것을 상상했다. 다행히 호동은 고개를 돌려 개천 위로 나아갔다. 몇 시간 만에 다리의 그늘을 벗어났다. 그곳엔 더 정교한 어둠이 기다렸다.

야광으로 빛나는 간판들이 높은 건물에 다닥다닥 붙어서 이름을 내세웠다. 눈이 먼 개는 물론이거니와 소년 역시도 그것에 눈길이 갈 턱은 없었다. 저속한 불빛이 그들을 순식간에 감싸고, 호동의 흰 눈은 물 속에 잠긴 하얀 달처럼 푸르고 붉은빛이 둥둥 떠다녔다. 소년은 주변을 돌아보며 개에게 먹일 것을 파는 가게를 힐끔힐끔 찾았다. 호동은 지친 기색도 없이 호기롭게 나아갔지만 소년 본인이 배가 고픈 만큼이나 그도 배가 비었을 것일 테다. 마침내 나무로 된 계단을 오르면 있는 애견 까페를 찾았고 소년은 호동의 목줄을 쥐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직원은 소년이 데려온 호동을 먼저 바라보며 인사를 했다. 이 개가 먹을 만한 사료를 주세요.

오늘 분양 받으셨나요?

아뇨. 얼마이죠?

네, 삼만 팔 천원입니다.

이것 말고 더 작은걸로 주세요.

직원은 아, 소리를 내고 재빨리 새것을 찾으러 그를 지나쳐 진열품을 골라 손을 뻗었다. 직원은 호동의 얼굴을 보고 무어라 말없이 되돌아가 그에게 새 사료를 권했다.

만 칠 천원입니다. 그녀가 처음의 친절이 벗겨진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고 지갑을 꺼냈다. 호동은 그곳에 들어온 이후로 내내 숨을 헐떡이며 한 곳만을 바라보았다. 작은 개들이 쉬는 투명한 플라스틱 요람. 인공적인 따스함과 보살핌의 공간이었다. 소년은 1.5kg 사료를 가방에 넣고 뒤돌아 걸어갔다. 직원은 호동의 목에 묶인 등산 로프 같은 푸른 목줄을 눈여겨보았다.

소년은 나무 계단에 앉아 가방에서 물 담는 원형의 그릇을 꺼내어 그곳에 사료 봉지를 뜯어 탈탈 털어 넣었다. 호동은 그것이 담기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소년이 그릇을 내려놓자 입을 처박고 맹렬히 오도독오도독 입에 담았다. 소년은 개를 기른 적이 없어 한 끼에 어느 정도를 주어야 하는지 몰랐고, 적당히 담은 것을 개가 다 먹으면 다시 채우고, 다시 채우고, 그렇게 네 번을 반복하고 같은 그릇에 물을 따라 주었다. 천천히 먹어. 소년이 호동의 목덜미를 쓸며 중얼거렸다. 소년은 배를 움켜쥐고 몸을 웅크렸다. 주황 가로등이 그 옛이야기의 한 장면을 비추었다.

그가 자살 시도를 하고, 며칠 뒤 학교에 갔을 때 소년이 한 짓이 모두 알려져 있었다. 소년의 첫사랑은 그를 모르는 척 했다. 소년은 견딜 수 있을 것이라 착각했다. 쉬는 시간에 세 명의 남자애들이 그의 자리에 와 둘러쌌다. 그들은 소년이 한 말의 진위와 그 진정성에 대한 토론을 그 자리에서 벌였는데, 아직 그것을 몰랐던 아이들이 놀란 눈으로 그들이 하는 말을 집중해서 경청했다. 남자애 중 하나가 소년에게 무언가를 물었고, 대답하지 않고 무릎에 올린 자신의 손등만 지켜보던 소년은 책상 위의 책들이 바닥에 쓸려 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다음은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이었다. 그들은 수가 늘어나며 이따금 구성원이 변해가면서 매시간 소년을 찾아왔다. 소년은 의자에 앉은 채로 발로 차이기도 했다. 소년이 가장 놀랐을 때는 소년의 첫사랑이 그를 증오의 눈빛으로 쳐다보며 울음을 터뜨렸을 때였다. 그 아이에게는 소년의 고백이 뜻하지 않은 사고와 같은 것이었다. 소년은 그를 위로해주고 싶다고 생각했으나, 곧 가장 비참한 것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일주일이 지나자 소년을 찾아오는 무리는 흥이 식어 사라졌다. 그 무렵 소년은 삶에 대한 어떤 흥도 사라졌다.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했다. 마지막으로 한 자살 시도 때문에 소년의 어머니는 그를 입원시켰고, 겨울이 지날 때까지 그곳에 있도록 하였다. 그런데 소년의 겨울은 일 년을 갔다.

공원이 가로등 빛 아래 펼쳐졌다. 가운데 인라인 스케이트를 탈 수 있게 평평한 바닥을 한 광장을 끼고 있는 공원이었다. 소년과 개처럼 크고 작은 개들과 함께 걷는 사람들, 조그만 아이들과 손을 잡은 부모, 연인들이 다가와 그들을 유령처럼 지나쳤다. 오후에 탄 버스에서 앞 좌석에 드리운 머리통의 그림자가 섰다 누웠다를 강박적으로 반복하듯이 그들은 불빛과 웃음들의 간격을 성큼성큼 계속해서 지나쳤다. 둘 다 그곳에 어울리지 않았고, 어울린 적도 없다.

마침내 조용한 곳에 도달했다. 그들 옆으로 이따금 시끄러운 지상 지하철이 지나갔지만 어둡고 마른 나무들과 십년 전부터 퇴적되어 온 무성한 낙엽들 외에는 그 누구도 없는 길이었다. 소년의 입에서 가벼운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소년은 허리를 펴고, 손을 주머니에 넣고, 호동이 이끄는 곳을 따라 걸었다. 소년은 조용히 호동의 등을 바라보았다. 나이가 허락하는 최대치를 한참 전에 뛰어넘은 거리를 걸어온 네 다리가 규칙적으로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는 털들과 허리. 어둠 속에서 검은 털은 더 눈에 띄지 않았지만 그 윤곽은 느껴졌다. 그리고 호동의 헐떡이는 소리. 개가 이렇게 큰 소리로 숨을 몰아쉬었던가. 색색거리는 작은 짐승의 심장 소리 같기도 했다. 그런 것들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었다. 누가 나이 들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날짐승 같은 개를 받아주겠는가? 가진 것은 방랑에 대한 광적인 집착뿐. 이 개는 개가 아니라 우주를 떠도는 혜성으로 태어났어야 했다. 공허를 흘러 다니는 차가운 불꽃. 소년은 은하를 가로지르는 지하철이 지나갈 때 흘러나온 빛에 자신의 손을 비추어 보았다. 그는 그가 울고 있음을 깨달았다.

개는 입구가 폐쇄된 굴다리 앞에서 처음으로 멈췄다. 그것엔 두 얇은 노끈이 X자로 걸쳐 있었고 접근 금지라고 적힌 역삼각형의 오래된 스티커도 달려있었다. 소년이 그것을 걷고 안에 들어가자 의외로 곧장 바람이 들지 않아 꽤 따듯했다. 소년은 노숙해 본 적은 없었으나 동요하진 않았다. 개는 앉아서 혀를 빼물고 숨을 내쉬며 입구 앞에 앉아있었다. 이리 들어와. 소년이 말했다. 네가 찾았잖아. 호동은 그쪽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저 입구의 냄새를 열심히 맡을 뿐이었다. 소년은 등을 기대고 앉아 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가 안 들어오면 나도 나가서 자야겠다. 그래도 개는 입구에 코를 박고 헐떡일 뿐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지하철이 그들 머리 위로 호된 소리를 내며 지나갔고 개는 놀라 걸어 들어왔다. 소년이 호동의 몸을 두 손으로 감싸며 아직도 좁은 굴다리에 웅웅 울리는 마찰음의 여운을 달랬다.

소년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년 뒤, 그의 가족은 꽤 먼 곳으로 이사 갔다. 그 고등학교에서 소년은 키가 크고 얼굴이 둥근 전학생이 되었다. 그는 그의 과거가 들킬까봐 거의 말도 하지 않았고, 저주받은 것을 내뱉듯 이름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그보다 한살이 어린 동급생들이 찾아와 그에게 말을 물을 때도 그랬다. 놀랍게도 그러한 태도는 그의 인상에 도움을 주었다. 그는 몇 달이 되지 않아 스스로 그것을 깨달았다. 입을 닥친 채 마음을 숨기면, 적어도 그의 인생에서 일어난 가장 끔찍한 순간이 재현되지는 않을 터였다. 그리고 세상은 그의 노력에 합당한 보상을 주었다. 그는 평범한 사춘기 소년으로 살았다. 그러기 위해 노력했다. 이듬해에는 여자친구가 생겼다.

그 애의 이름은 진아 였다.

소년은 진아에게 상처를 입히지도, 뚜렷한 진심을 전하지도 않아서 서로에게 몹시 만족스러운 연애를 하였다. 진아는 가끔 소년에게 거리를 느꼈지만 다행히 소년이 느끼는 만큼은 아니었다. 그들이 손을 잡거나 입맞춤을 할 때마다 소년은 속이 울렁거렸다. 진아는 그럴 때마다 예쁜 손으로 얼굴을 붉히는 소년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완벽한 꿈. 자폐적인 위안이었다. 소년은 그맘때쯤 어떤 망상을 자주 했다. 일 년 전 자신의 첫사랑을 손에 쥔 몽둥이로 마구 쥐어패는 것이었다. 소년과 영문 모를 매질을 당하는 그 아이 모두 벌거벗은 채로였다. 그 아이는 울고 있었다. 심지어는 진아를 옆에 두고서도 그런 망상을 했다. 차가운 노을이 그의 머릿속을 씻길 때까지 학교에서 하루종일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호동은 소년이 몸을 기대도 거의 미동도 하지 않고 숨을 쉬느라 등이 오르내리기만 하였다. 호동이 몸을 바꿔 서자 소년이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면서 눈을 떴다. 멀리 새벽차가 지나가는 몽롱한 소리가 흩날렸다. 깊은 굴다리 안에서 점점 분명해지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넌 뭐야?

좁은 굴다리의 어둠 속에서 머리가 온통 벗겨진 납작한 구두 같은 남자의 얼굴이 튀어나왔다. 어둠 속의 희미한 먼 불빛 속에 남자의 쌍심지를 켠 눈썹과 지저분한 수염, 얼룩덜룩한 스포츠 티셔츠와 회백색의 조금 두꺼운 모직 정장 코트가 드러났다. 바지는 버려진 녹색이었다.

당신이야말로 누구세요?

여긴 내 집이야. 니가 내 집을 뺏는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어.

소년이 몸을 뒤척여 바로 세워 앉았다. 노숙자는 허리를 숙이고 있어 몹시 왜소해 보였다.

내일 나갈 거니 걱정마세요. 노숙자는 한 눈이 하얀 호동을 슬쩍 보았다.

개새끼랑 같이 가출했냐?

소년은 그의 개를 바라보았다. 호동은 별달리 경계하는 기색도 없었고, 차분하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네.

개 좋아하냐?

남자를 좋아하는 것같이 끔찍한 것도 세상에 있는데 뭘요.

좆같은 취향이네.

소년은 바로 선 호동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노숙자는 팔짱을 끼고 기이하게 편안한 자세로 움츠리고 드러누웠다. 타는 듯이 지독한 쉰 냄새가 올라왔다. 소년은 찬찬히 노숙자를 바라보았다. 치켜든 소년의 눈이 흐릿한 주황 가로등 빛에 반짝 빛났다. 노숙자가 콧방귀를 킁 하고 뀌었다.

자살이라도 하려고? 애새끼야. 대답해봐, 어디 손목 좀 그었었니? 응? 그 개새끼랑 같이 꼭 끌어안고 뛰어내리기라도 하게?

소년은 그를 노려보았다. 그럴지도 모르죠. 노숙자가 갑자기 자세를 일으켜 세웠다. 그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붉은 생쥐처럼 번뜩였다.

우리 같은 인간들 만큼 신앙심이 깊은 작자들이 없을 거야. 신은 가져가는 존재야. 네가 가진 것을 모조리 가져가는 게 바로 신이라는 거야. 타고난 배우이지. 이따금 너한테 뭔가를 주는 것 같이 연기하기도 하거든. 노숙자는 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신은 배신 따윈 하지 않지. 그리고 돌아누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소년은 구정물이 벤 코트의 등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호동이 어둠 속에서 안광에 빛나는 허연 눈을 들어 노숙자를 바라보았다.

햇빛이 길고 눅눅한 굴다리의 입구 모양대로 들어왔다. 호동도 없고, 노숙자도 없었다. 소년은 퍼뜩 눈을 뜨고 부랴부랴 굴다리 밖으로 나왔다. 호동은 멀리 떨어지지 않은 마른 나무에 코를 박고 머리를 흔들고 있었다. 노숙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는 가방을 들고 걸어가 호동의 목에서 나온 긴 푸른 목줄을 주워들었다. 차가운 아침 공기가 몸을 옥죄었다.

소년은 호동이 움직일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거의 삼십 분을 같은 자리에서 발을 떼지 못하던 그들은 마침내 호동이 덜덜 떨리는 발로 걸음을 내디디면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신에게서 달아날 길을 찾았다는 듯이. 전날보다 훨씬 느린 것 같았다.

그들은 지상 지하철 옆의 산책로가 끝나는 역을 지나쳤다. 흐린 오전의 안개에 머무른 상가의 간판들이 일렁였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막연히 움직였다. 소년과 개는 커다란 사거리의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섰다.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여인이 걸어와 그들 옆에 섰다. 아이는 여인의 다리에 꼭 붙어서 불안한 표정으로 개를 관찰했다. 호동은 전날보다 확연히 지쳐 보였다. 침을 입에서 흘리기도 하였다. 여인은 개를 바라보며 말했다.

개 안 물어요?

소년은 그녀를 보았다. 트럭이 그들 앞을 지나갈 때마다 짧게 으르렁거리는 바람 소리를 내고 사라졌다.

안 물어요. 훈련이 잘돼서. 아이는 여전히 불안하다는 듯이 여인 뒤에 숨어서 힐끔거렸다.

오늘 너 안 좋아 보여. 전부터 좀 그래. 괜찮은 거야? 진아가 그에게 물었다. 작은 티비 소리가 웅웅 울렸다. 거기서는 공포 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응.

진아와 소년은 다시 입을 맞추었다. 진아는 그 상태로 셔츠 웃옷을 천천히 벗어 내렸다. 그리고 입을 떼고 소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만져봐도 돼.

소년은 진아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진아가 웃으면서 벗어줄까 하고 속삭였다. 소년은 말없이 그녀의 눈을 보았다. 진아는 소년의 옷 단추를 벗겼다. 그녀는 손을 더 내려 소년의 바지 속으로 넣었다.

이상하네. 진아가 중얼댔다. 소년이 그녀의 가슴에서 손을 올려 어깨에 짚었다.

미안해. 오늘 좀 안 좋은 가봐. 진아가 입을 다물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나 별로야?

아니 아니야, 미안해.

진아는 말없이 등에 손을 뻗어 속옷을 벗었다. 그리고 소년의 얼굴을 끌어안아 가슴에 파묻었다. 너 되게 떨고 있어. 긴장했어?

소년은 무언가 저항하듯이 손을 올려 그녀를 붙잡았다. 그들은 한참 동안 그러고 있었다. 진아는 천천히 소년의 머리를 아래로 아래로 내렸다. 진아의 숨소리가 유언을 내뱉는 노인의 그것처럼 가빠졌다.

소년은 진아의 배꼽 근처에서 토했다.

소년은 진아와 두어 달을 더 사귀었다. 물론 진아도, 소년도 알고 있듯이, 그들은 한 번도 어울린 적도 없고, 어울릴 수도 없었다. 결코 진아가 다시 그에게 입을 맞추는 일도 없었다. 그리고 진아는 며칠을 말도 없다가 끝냈다. 그는 그래도 여자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그의 과거를 들킬 염려가 더 적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소년은 미안해, 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울면서 이 년 만에 또다시 볼펜으로 손목을 후벼 팠다. 허벅지를 찌르고, 목 근처를 찌르고, 성기를 찌르기도 했다.

개는 걸으면서 오줌을 지리거나 똥을 싸기도 했다. 네 다리를 짚은 땅이 갑자기 꺼진 것처럼 비틀대기도 했다. 소년은 걸음을 멈췄다. 호동은 한결같이 나아가다가 목줄이 팽팽해지자 고개를 흔들면서 멈췄다. 개가 다시금 나아가려 해서 소년의 손목에 걸린 매듭이 꽉 묶였다. 그러자 개는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앉았다. 시선을 나아갈 방향에 흔들림 없이 두고.

날 봐. 자동차가 쌩 지나가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번들거리는 반투명 플라스틱의 방음벽에 검은 그림자가 휙 지나갔다. 만 년이 지나도 그대로 서 있을 것 같은 곧은 아파트들이 수직 절벽처럼 섰다.

소년이 개에게 다가갔다. 목줄이 느슨해지자마자 호동은 즉시 걷기 시작했다. 소년은 멍하니 개에게 끌려 둔덕을 터벅터벅 올랐다. 소년은 날카로운 판자로 된 가드레일을 손으로 쓸었다. 개는 그것에 앞발을 올리고 넘어가려 애썼다. 소년은 그것을 바라보다가 배에 손을 집어넣고 번쩍 들어 가드레일 너머로 옮겼다. 4차선의 고속도로에는 갖은 크기의 차들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소년도 울타리를 넘어갔다. 개는 가만히 멈춰 환영처럼 흘러가는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여기가 네 목적지야? 소년이 소리쳤다. 큰 차들이 그의 소리를 먹었다.

여긴 너의 세상이 아냐. 네가 있어야 할 곳. 여기가 아냐. 소년이 개에다가 대고 소리쳤다.

갑자기 호동이 걷기 시작했다. 힘을 거의 다 쓴 듯이 위태로운 발걸음이었다. 그들은 갓길을 따라 걸었다. 개는 날개뼈를 높이 드러내 놓고 힘겹게 나아갔다. 바퀴가 여섯 개 달린 트럭이 경적을 울리며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먼 산에 걸쳐진 농지와 수없이 잘게 가물은 직선의 검은 논밭 같은 아스팔트, 유리창에 가려져 순식간에 흩어지는 사람들의 표정과 눈길, 시멘트로 된 중앙선. 소년은 덜덜 떨면서 개의 목줄을 잡고 뒤를 따랐다.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야. 끝도 없어. 평생을 걸어도 못 갈 껄. 소년이 소리쳤다. 호동은 혀를 빼물고 비틀비틀 걸었다. 털 오라기 하나 없는 자동차들, 맑은 하늘과 마른 타이어의 냄새. 쿵쿵 박동하는 떨림이 목줄을 타고 건너왔다. 개는 머리를 흔들면서, 혀를 땅에 끌면서, 무릎을 구부리고 그렇게 나아갔다.

그리고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호동은 다시 일어서려 다리를 버둥댔지만 또 머리를 바닥에 박았다. 소년이 다가가 호동의 목에 손을 올렸다. 호동의 오른쪽 흰 눈이 미동도 하지 않고 앞을 바라보았다. 호동은 불규칙하게 배를 부풀었다 줄었다 하며 숨을 내쉬었다. 꼼짝할 힘도 없는지 더 이상 다리를 버둥대지도 않았다

소년은 가까이 앉아 호동의 머리를 무릎 위 품에 안아 감쌌다. 그리고 울었다. 검고 흰 도로에서 사람들은 갓길에 놓인 이방인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지나갔다. 누군가 신고했는지 멀리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아득하게 울렸다.

소설 부문 가작

대학문학상

2018년 12월 3일 월요일 |

박경만

표정인지 알 수 없는 목줄을 쥔 자가 앞에 서 있는 광경. 구름처럼, 신의 뜻처럼. 호동은 머리를 내리고 바닥을 훑으며 나아갔다. 소년은 그에 발맞춰 천천히 걸어갔다.

보호소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그는 여전히 기묘한 지혜가 깃든 신중함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검은 코를 계단 턱에 대고 좌우로 헐떡거리는 모습은 어떤 엄숙한 비참함을 자아냈다. 개는 몇 계단을 남기고 멈췄다. 그리고 주의성 없는 아이처럼 소년의 무릎에 머리를 또 부딪혔다. 소년은 계단에 앉았다. 계단이 있는 복도는 몹시 어두웠다. 먼 창에서 흰빛 한줄기만 아른거렸다.

가자.

소년의 목소리가 암석으로 된 방에서 웅웅 울렸다. 개는 여전히 소년 쪽을 보지도 않았다. 대신 귀가 쫑긋했다. 소년은 팔을 호동의 등에 얹었다. 그는 느릿느릿 털을 골랐다. 그의 뒷다리엔 원형으로 털이 빠진 자국이 여러 군데 있었다. 소년은 어두운 복도에서 그것을 발견했다. 개가 코를 숙여 소년의 겨드랑이를 훑었다. 거의 다한 생명처럼 작고 꺼져가는 숨결이 코에서 흘러나왔다.

가기 싫어?

소년은 일어섰다. 그리고 목줄을 손에서 놓았다. 개는 떨어진 푸른 색의 목줄에 코를 박고 킁킁거렸다. 소년이 한 발자국씩 계단을 내려가자, 호동은 냄새 맡던 것을 멈추고 뒤돌아 그쪽을 보았다. 어떤 것도 담기지 않은 흰 눈동자로.

네가 원하는 게 이거야?

호동은 목을 숙이더니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넌 멀리 가지 못해. 아까 직원이 말했잖아.

호동은 네 개의 털 뭉치 같은 발로 소년 옆에 섰다. 소년은 청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그리고 계단을 타박타박 내려갔다. 맨 아래에서 그는 흰 눈과 마주쳤다. 어둠 속에서 안광에 빛나는 투명한 눈. 호동은 늙은 늑대처럼 어깨를 구부리고 코를 계단에 박고 기어 내려왔다.

소년은 그대로 뒤돌아 문을 두 번째로 열어제쳤다. 호동이 그의 발치에서 어슬렁 걸어 넘어갔다.

소년은 열여섯 살 때 첫사랑을 했다. 그는 같은 반의 어떤 아이를 봤고 그 순간 그의 인생은 영원히 달라질 것을 깨달았다. 그 이전에도, 그 누군가에게도 그 비슷한 단어조차 배우지 못했는데도. 아침에 아스팔트를 걸으며 학교로 향하는 오르막을 오르면 완벽한 평원에서 아이가 걸어왔다. 그는 단 하나의 문장을 건네기 위해서 며칠을 고민했고 그를 창문 너머로 훔쳐보았으며 숨결과 존재를 느꼈다. 얼굴에 울긋불긋한 것이 올라오는 것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고, 떠올리는 것으로 어지러웠다. 일 년 동안. 파도처럼 생각과 감정이 굽이쳤다.

소년은 다르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었지만 경험한 적은 없었다. 그만큼이나 순수한 사랑이었다. 소년은 겨울에 첫 고백을 했고 그날 처음으로 자살을 시도했다. 그는 끝이 날카로운 볼펜으로 손목을 후벼 팠다.

다음 날부터 소년에게 완전히 다른 세상이 감싸 눌러왔다.

소년은 호동의 목에 질질 끌리는 목줄을 들어 잡고 호동이 바라보던 산책로 반대편의 길로 걸어갔다. 호동은 자꾸만 걸음을 멈추던 아까 와는 달리 고개를 쳐들고 쉬지 않고 발을 내디뎠다. 소년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터벅터벅 호동을 따라 걸었다. 오후 세시의 굴러떨어지듯 따가운 햇살이 얼굴을 비추었다. 다른 손에는 목줄과 휴지, 물이 든 주머니가 들려 있었고 마주치는 사람들은 그들을 힐끗 바라보고 지나쳤다. 소년과 개는 큰 자전거가 지나가는 전용 길을 피해 걸었고 사거리에 도달했다. 흰 원기둥 모양의 볼라드가 석상처럼 번듯이 서 있었다. 야외 테라스에 의자가 머리를 책상에 처박은 채 아무도 없는 커피집, 문 닫힌 핸드폰 가게, 검은 유리에 햇빛만이 음울하게 비치는 이름 없는 건물들의 창문들, 귀와 눈들. 호동은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횡단 보도에서 멈출 줄 알았다. 개는 앞발을 내놓고 납작 엎드렸다. 소년은 허리를 펴고 신호등을 기다렸다가 신호가 바뀌자 천천히 걸어갔다. 개가 볼라드에 이마를 한 번 처박고 따라 걷기 시작했다.

호동은 쉼 없이 걸었다. 소년은 묵묵히 목줄을 쥐고 걸었다. 그들은 음식가로 들어섰다. 대학로와 식당 골목이 적당히 섞인 그곳에는 이른 오후 문 열지 않은 술집들과 몽환적인 불 꺼진 간판들이 즐비했다. 배달점 앞에는 빨갛고 하얀 오토바이가 덩그러니 짝다리를 짚고 서있었다. 분식집과 고깃집에서는 연기와 냄새가 흘러나왔다. 호동은 고개를 돌려가며 코를 열심히 비벼 댔다. 골목 끝의 사거리에서 개 짖는 소리가 연신 들려 오는 애견 샵이 나타났다. 작은 희고 갈색의 까만 눈동자를 가진 개들이 앙칼지게 짖으면서 허리 높이의 아크릴 판 울타리 안에서 까불었다. 호동은 그 개들에게 전혀 관심을 주지 않았지만, 어떤 개 한 마리가 아크릴 판에 바싹 다가와 호동을 주시했다. 새하얀 털이 몸을 둘둘 만 듯한 말티즈였다. 그들이 그 앞을 지나치자 그 조막 만한 개는 캉캉 짖으며 앞발을 대고 섰다. 신경질적인 그 목소리는 모든 색깔을 축낸 꽃들이 갈구하는 것을 바랬다. 작은 하나의 눈길과 손짓을.

개는 따스한 햇살이 저물어가고 짙고 더러운 하천처럼 푸르고 어두운 하늘이 퍼져 나갈 때까지 걸었다. 그들은 막 아파트 단지를 벗어난 참이었다. 번쩍이는 차양을 머리에 쓴 주민들이 산책을 하다가 그들을 보고 작은 목소리로 탄식 비슷한 소리를 냈다. 안경을 쓴 세 명의 갈색 교복을 입은 덥수룩한 남자아이들이 웃으면서 지나가다가 그와 개를 보고 동시에 말을 멈추고 시선을 따라갔고, 전화를 하던 얇은 노란 등산 점퍼를 걸친 머리가 벗겨진 남자가 그들을 힐끗 보고 얼굴을 찌푸리며 차도로 내려가 자리를 피했다. 수백 년 동안 버려진 신전의 기둥같이 거대하고 검은 고가도로의 다리들이 발을 내리고 섰고 그 아래 무성한 풀이 자란 개천이 지나갔다. 호동은 고개를 숙이고 주의 깊게 코로 사방을 탐색하며 그곳으로 나아갔다. 호동은 결코 서두르지도, 멈춰있지도 않았다. 소년은 무릎까지 올라오는 꺼슬꺼슬한 풀들, 민들레들, 비릿한 풀내음을 헤치고 개천의 버려진 산책로로 내려갔다. 호동은 졸졸 흐르는 개천에 머리를 처박고 몇 모금 마셨다. 마셔도 되는 물인지 판가름이 나지 않았다. 어쨌거나 소년이 멍하니 바라볼 무렵 개는 이미 고개를 세차게 털고 방향을 틀어 앞으로 나아갔다. 인도교 위에서 어떤 남자가 멈춰서 그들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동화 속으로 걸어가는 것을 목격한 어른들처럼.

고가 도로 아래에서 그 개천은 풀과 날벌레와 악취가 점령한 음지였다. 이따금 축축한 흙이 바닥에서 느껴졌다. 호동과 소년의 숨소리와 발소리는 검은 극장에서 웅웅 울렸다. 호동은 이미 원래 산책로의 열 배는 넘는 거리를 걸어왔음에도 걷고 또 걸었다. 호동이 있던 유기견 보호소는 이곳에서 이미 수 킬로미터 멀어졌다. 어디로 가는 거니? 소년의 목소리가 다리 아래에서 메아리쳐 빽빽한 공기를 흐트러뜨렸다.

너는 어쩌다 세상에 태어났고 어쩌다 버려졌니? 누구에게 버려졌니? 호동, 그게 네 진짜 이름이니? 너는 암컷이니, 수컷이니? 내가 누군지 아니? 사람을 믿니? 신은?

니가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어. 아 씨발… 말 걸지 마. 저리 꺼져.

겨울날 소년은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의 앞에선 일 년의 첫사랑은 하교길의 주택가 사이에서 탁한 구슬에 비친 것처럼 일그러졌다.

미안해.

아니 소름 돋았잖아. 빨리 장난이라고 말해. 좆같은 장난 치지 마, 진짜.

소년은 그와 다섯 걸음 떨어져 있었다. 오래전에 문 닫은 가게의 회백색의 유리창에 그들의 모습이 희미하게 비쳐 보였다. 소리 없이 이름 없이 방들에 들어찬 모든 이곳 사람들이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다.

소년은 고개를 숙였다. 다른 아이는 침을 뱉고 누가 듣기라도 할까 등 뒤를 살폈다. 소년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키가 소년보다 조금 작은 그 아이는 작게 경고했다. 따라오지 마. 그리고 사라졌다. 흰 쓰레기 종량제 봉투 위에 얹힌 눈이 미끄러져 시멘트 바닥으로 사라지듯. 소년은 다리에 피가 통하지 않아 저릴 때까지 서 있었다.

개와 소년은 두 시간을 다리 밑을 걸었다. 이따금 꺾어지거나 더 깊은 곳으로 걸어 내려가야 했다. 무언가가 도사리는 함정을 경계하는 것처럼 호동은 신중히 탐색하고 확신에 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개천의 물줄기가 조금 더 깊고 거세어질 무렵 그들 앞에 두 개의 벌린 구멍이 나타났다. 소년의 키보다 조금 더 큰 그것은 커다란 하수도로 통하는 입구였다. 소년은 문득 개가 옛 주인을 찾아 돌아가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에게 이름을 주고 삶을 주고 잘 곳을 주었다가 돌연 사라진 옛 냄새. 소년은 저 하수도 끝에 잔뜩 부패한 시신이 있는 것을 상상했다. 다행히 호동은 고개를 돌려 개천 위로 나아갔다. 몇 시간 만에 다리의 그늘을 벗어났다. 그곳엔 더 정교한 어둠이 기다렸다.

야광으로 빛나는 간판들이 높은 건물에 다닥다닥 붙어서 이름을 내세웠다. 눈이 먼 개는 물론이거니와 소년 역시도 그것에 눈길이 갈 턱은 없었다. 저속한 불빛이 그들을 순식간에 감싸고, 호동의 흰 눈은 물 속에 잠긴 하얀 달처럼 푸르고 붉은빛이 둥둥 떠다녔다. 소년은 주변을 돌아보며 개에게 먹일 것을 파는 가게를 힐끔힐끔 찾았다. 호동은 지친 기색도 없이 호기롭게 나아갔지만 소년 본인이 배가 고픈 만큼이나 그도 배가 비었을 것일 테다. 마침내 나무로 된 계단을 오르면 있는 애견 까페를 찾았고 소년은 호동의 목줄을 쥐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직원은 소년이 데려온 호동을 먼저 바라보며 인사를 했다. 이 개가 먹을 만한 사료를 주세요.

오늘 분양 받으셨나요?

아뇨. 얼마이죠?

네, 삼만팔천 원입니다.

이것 말고 더 작은걸로 주세요.

직원은 아, 소리를 내고 재빨리 새것을 찾으러 그를 지나쳐 진열품을 골라 손을 뻗었다. 직원은 호동의 얼굴을 보고 무어라 말없이 되돌아가 그에게 새 사료를 권했다.

만칠천 원입니다. 그녀가 처음의 친절이 벗겨진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고 지갑을 꺼냈다. 호동은 그곳에 들어온 이후로 내내 숨을 헐떡이며 한 곳만을 바라보았다. 작은 개들이 쉬는 투명한 플라스틱 요람. 인공적인 따스함과 보살핌의 공간이었다. 소년은 1.5kg 사료를 가방에 넣고 뒤돌아 걸어갔다. 직원은 호동의 목에 묶인 등산 로프 같은 푸른 목줄을 눈여겨보았다.

소년은 나무 계단에 앉아 가방에서 물 담는 원형의 그릇을 꺼내어 그곳에 사료 봉지를 뜯어 탈탈 털어 넣었다. 호동은 그것이 담기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소년이 그릇을 내려놓자 입을 처박고 맹렬히 오도독오도독 입에 담았다. 소년은 개를 기른 적이 없어 한 끼에 어느 정도를 주어야 하는지 몰랐고, 적당히 담은 것을 개가 다 먹으면 다시 채우고, 다시 채우고, 그렇게 네 번을 반복하고 같은 그릇에 물을 따라 주었다. 천천히 먹어. 소년이 호동의 목덜미를 쓸며 중얼거렸다. 소년은 배를 움켜쥐고 몸을 웅크렸다. 주황 가로등이 그 옛이야기의 한 장면을 비추었다.

그가 자살 시도를 하고, 며칠 뒤 학교에 갔을 때 소년이 한 짓이 모두 알려져 있었다. 소년의 첫사랑은 그를 모르는 척 했다. 소년은 견딜 수 있을 것이라 착각했다. 쉬는 시간에 세 명의 남자애들이 그의 자리에 와 둘러쌌다. 그들은 소년이 한 말의 진위와 그 진정성에 대한 토론을 그 자리에서 벌였는데, 아직 그것을 몰랐던 아이들이 놀란 눈으로 그들이 하는 말을 집중해서 경청했다. 남자애 중 하나가 소년에게 무언가를 물었고, 대답하지 않고 무릎에 올린 자신의 손등만 지켜보던 소년은 책상 위의 책들이 바닥에 쓸려 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다음은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이었다. 그들은 수가 늘어나며 이따금 구성원이 변해가면서 매시간 소년을 찾아왔다. 소년은 의자에 앉은 채로 발로 차이기도 했다. 소년이 가장 놀랐을 때는 소년의 첫사랑이 그를 증오의 눈빛으로 쳐다보며 울음을 터뜨렸을 때였다. 그 아이에게는 소년의 고백이 뜻하지 않은 사고와 같은 것이었다. 소년은 그를 위로해주고 싶다고 생각했으나, 곧 가장 비참한 것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일주일이 지나자 소년을 찾아오는 무리는 흥이 식어 사라졌다. 그 무렵 소년은 삶에 대한 어떤 흥도 사라졌다.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했다. 마지막으로 한 자살 시도 때문에 소년의 어머니는 그를 입원시켰고, 겨울이 지날 때까지 그곳에 있도록 하였다. 그런데 소년의 겨울은 일 년을 갔다.

공원이 가로등 빛 아래 펼쳐졌다. 가운데 인라인 스케이트를 탈 수 있게 평평한 바닥을 한 광장을 끼고 있는 공원이었다. 소년과 개처럼 크고 작은 개들과 함께 걷는 사람들, 조그만 아이들과 손을 잡은 부모, 연인들이 다가와 그들을 유령처럼 지나쳤다. 오후에 탄 버스에서 앞 좌석에 드리운 머리통의 그림자가 섰다 누웠다를 강박적으로 반복하듯이 그들은 불빛과 웃음들의 간격을 성큼성큼 계속해서 지나쳤다. 둘 다 그곳에 어울리지 않았고, 어울린 적도 없다.

마침내 조용한 곳에 도달했다. 그들 옆으로 이따금 시끄러운 지상 지하철이 지나갔지만 어둡고 마른 나무들과 십년 전부터 퇴적되어 온 무성한 낙엽들 외에는 그 누구도 없는 길이었다. 소년의 입에서 가벼운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소년은 허리를 펴고, 손을 주머니에 넣고, 호동이 이끄는 곳을 따라 걸었다. 소년은 조용히 호동의 등을 바라보았다. 나이가 허락하는 최대치를 한참 전에 뛰어넘은 거리를 걸어온 네 다리가 규칙적으로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는 털들과 허리. 어둠 속에서 검은 털은 더 눈에 띄지 않았지만 그 윤곽은 느껴졌다. 그리고 호동의 헐떡이는 소리. 개가 이렇게 큰 소리로 숨을 몰아쉬었던가. 색색거리는 작은 짐승의 심장 소리 같기도 했다. 그런 것들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었다. 누가 나이 들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날짐승 같은 개를 받아주겠는가? 가진 것은 방랑에 대한 광적인 집착뿐. 이 개는 개가 아니라 우주를 떠도는 혜성으로 태어났어야 했다. 공허를 흘러 다니는 차가운 불꽃. 소년은 은하를 가로지르는 지하철이 지나갈 때 흘러나온 빛에 자신의 손을 비추어 보았다. 그는 그가 울고 있음을 깨달았다.

개는 입구가 폐쇄된 굴다리 앞에서 처음으로 멈췄다. 그것엔 두 얇은 노끈이 X자로 걸쳐 있었고 접근 금지라고 적힌 역삼각형의 오래된 스티커도 달려있었다. 소년이 그것을 걷고 안에 들어가자 의외로 곧장 바람이 들지 않아 꽤 따듯했다. 소년은 노숙해 본 적은 없었으나 동요하진 않았다. 개는 앉아서 혀를 빼물고 숨을 내쉬며 입구 앞에 앉아있었다. 이리 들어와. 소년이 말했다. 네가 찾았잖아. 호동은 그쪽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저 입구의 냄새를 열심히 맡을 뿐이었다. 소년은 등을 기대고 앉아 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가 안 들어오면 나도 나가서 자야겠다. 그래도 개는 입구에 코를 박고 헐떡일 뿐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지하철이 그들 머리 위로 호된 소리를 내며 지나갔고 개는 놀라 걸어 들어왔다. 소년이 호동의 몸을 두 손으로 감싸며 아직도 좁은 굴다리에 웅웅 울리는 마찰음의 여운을 달랬다.

소년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년 뒤, 그의 가족은 꽤 먼 곳으로 이사 갔다. 그 고등학교에서 소년은 키가 크고 얼굴이 둥근 전학생이 되었다. 그는 그의 과거가 들킬까봐 거의 말도 하지 않았고, 저주받은 것을 내뱉듯 이름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그보다 한살이 어린 동급생들이 찾아와 그에게 말을 물을 때도 그랬다. 놀랍게도 그러한 태도는 그의 인상에 도움을 주었다. 그는 몇 달이 되지 않아 스스로 그것을 깨달았다. 입을 닥친 채 마음을 숨기면, 적어도 그의 인생에서 일어난 가장 끔찍한 순간이 재현되지는 않을 터였다. 그리고 세상은 그의 노력에 합당한 보상을 주었다. 그는 평범한 사춘기 소년으로 살았다. 그러기 위해 노력했다. 이듬해에는 여자친구가 생겼다.

그 애의 이름은 진아였다.

옆에 두고서도 그런 망상을 했다. 차가운 노을이 그의 머릿속을 씻길 때까지 학교에서 하루종일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호동은 소년이 몸을 기대도 거의 미동도 하지 않고 숨을 쉬느라 등이 오르내리기만 하였다. 호동이 몸을 바꿔 서자 소년이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면서 눈을 떴다. 멀리 새벽차가 지나가는 몽롱한 소리가 흩날렸다. 깊은 굴다리 안에서 점점 분명해지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넌 뭐야?

좁은 굴다리의 어둠 속에서 머리가 온통 벗겨진 납작한 구두 같은 남자의 얼굴이 튀어나왔다. 어둠 속의 희미한 먼 불빛 속에 남자의 쌍심지를 켠 눈썹과 지저분한 수염, 얼룩덜룩한 스포츠 티셔츠와 회백색의 조금 두꺼운 모직 정장 코트가 드러났다. 바지는 버려진 녹색이었다.

당신이야말로 누구세요?

여긴 내 집이야. 니가 내 집을 뺏는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어.

소년이 몸을 뒤척여 바로 세워 앉았다. 노숙자는 허리를 숙이고 있어 몹시 왜소해 보였다.

내일 나갈 거니 걱정마세요. 노숙자는 한 눈이 하얀 호동을 슬쩍 보았다.

개새끼랑 같이 가출했냐?

소년은 그의 개를 바라보았다. 호동은 별달리 경계하는 기색도 없었고, 차분하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네.

개 좋아하냐?

남자를 좋아하는 것같이 끔찍한 것도 세상에 있는데 뭘요.

좆같은 취향이네.

소년은 바로 선 호동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노숙자는 팔짱을 끼고 기이하게 편안한 자세로 움츠리고 드러누웠다. 타는 듯이 지독한 쉰 냄새가 올라왔다. 소년은 찬찬히 노숙자를 바라보았다. 치켜든 소년의 눈이 흐릿한 주황 가로등 빛에 반짝 빛났다. 노숙자가 콧방귀를 킁 하고 뀌었다.

자살이라도 하려고? 애새끼야. 대답해봐, 어디 손목 좀 그었었니? 응? 그 개새끼랑 같이 꼭 끌어안고 뛰어내리기라도 하게?

소년은 그를 노려보았다. 그럴지도 모르죠. 노숙자가 갑자기 자세를 일으켜 세웠다. 그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붉은 생쥐처럼 번뜩였다.

우리 같은 인간들 만큼 신앙심이 깊은 작자들이 없을 거야. 신은 가져가는 존재야. 네가 가진 것을 모조리 가져가는 게 바로 신이라는 거야. 타고난 배우이지. 이따금 너한테 뭔가를 주는 것 같이 연기하기도 하거든. 노숙자는 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신은 배신 따윈 하지 않지. 그리고 돌아누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소년은 구정물이 벤 코트의 등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호동이 어둠 속에서 안광에 빛나는 허연 눈을 들어 노숙자를 바라보았다.

햇빛이 길고 눅눅한 굴다리의 입구 모양대로 들어왔다. 호동도 없고, 노숙자도 없었다. 소년은 퍼뜩 눈을 뜨고 부랴부랴 굴다리 밖으로 나왔다. 호동은 멀리 떨어지지 않은 마른 나무에 코를 박고 머리를 흔들고 있었다. 노숙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는 가방을 들고 걸어가 호동의 목에서 나온 긴 푸른 목줄을 주워들었다. 차가운 아침 공기가 몸을 옥죄었다.

소년은 호동이 움직일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거의 삼십 분을 같은 자리에서 발을 떼지 못하던 그들은 마침내 호동이 덜덜 떨리는 발로 걸음을 내디디면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신에게서 달아날 길을 찾았다는 듯이. 전날보다 훨씬 느린 것 같았다.

그들은 지상 지하철 옆의 산책로가 끝나는 역을 지나쳤다. 흐린 오전의 안개에 머무른 상가의 간판들이 일렁였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막연히 움직였다. 소년과 개는 커다란 사거리의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섰다.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여인이 걸어와 그들 옆에 섰다. 아이는 여인의 다리에 꼭 붙어서 불안한 표정으로 개를 관찰했다. 호동은 전날보다 확연히 지쳐 보였다. 침을 입에서 흘리기도 하였다. 여인은 개를 바라보며 말했다.

개 안 물어요?

소년은 그녀를 보았다. 트럭이 그들 앞을 지나갈 때마다 짧게 으르렁거리는 바람 소리를 내고 사라졌다.

안 물어요. 훈련이 잘돼서. 아이는 여전히 불안하다는 듯이 여인 뒤에 숨어서 힐끔거렸다.

오늘 너 안 좋아 보여. 전부터 좀 그래. 괜찮은 거야? 진아가 그에게 물었다. 작은 티비 소리가 웅웅 울렸다. 거기서는 공포 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응.

진아와 소년은 다시 입을 맞추었다. 진아는 그 상태로 셔츠 웃옷을 천천히 벗어 내렸다. 그리고 입을 떼고 소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만져봐도 돼.

소년은 진아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진아가 웃으면서 벗어줄까 하고 속삭였다. 소년은 말없이 그녀의 눈을 보았다. 진아는 소년의 옷 단추를 벗겼다. 그녀는 손을 더 내려 소년의 바지 속으로 넣었다.

이상하네. 진아가 중얼댔다. 소년이 그녀의 가슴에서 손을 올려 어깨에 짚었다.

미안해. 오늘 좀 안 좋은 가봐. 진아가 입을 다물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나 별로야?

아니 아니야, 미안해.

진아는 말없이 등에 손을 뻗어 속옷을 벗었다. 그리고 소년의 얼굴을 끌어안아 가슴에 파묻었다. 너 되게 떨고 있어. 긴장했어?

소년은 무언가 저항하듯이 손을 올려 그녀를 붙잡았다. 그들은 한참 동안 그러고 있었다. 진아는 천천히 소년의 머리를 아래로 아래로 내렸다. 진아의 숨소리가 유언을 내뱉는 노인의 그것처럼 가빠졌다.

소년은 진아의 배꼽 근처에서 토했다.

소년은 진아와 두어 달을 더 사귀었다. 물론 진아도, 소년도 알고 있듯이, 그들은 한 번도 어울린 적도 없고, 어울릴 수도 없었다. 결코 진아가 다시 그에게 입을 맞추는 일도 없었다. 그리고 진아는 며칠을 말도 없다가 끝냈다. 그는 그래도 여자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그의 과거를 들킬 염려가 더 적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소년은 미안해, 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울면서 이 년 만에 또다시 볼펜으로 손목을 후벼 팠다. 허벅지를 찌르고, 목 근처를 찌르고, 성기를 찌르기도 했다.

개는 걸으면서 오줌을 지리거나 똥을 싸기도 했다. 네 다리를 짚은 땅이 갑자기 꺼진 것처럼 비틀대기도 했다. 소년은 걸음을 멈췄다. 호동은 한결같이 나아가다가 목줄이 팽팽해지자 고개를 흔들면서 멈췄다. 개가 다시금 나아가려 해서 소년의 손목에 걸린 매듭이 꽉 묶였다. 그러자 개는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앉았다. 시선을 나아갈 방향에 흔들림 없이 두고.

날 봐. 자동차가 쌩 지나가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번들거리는 반투명 플라스틱의 방음벽에 검은 그림자가 휙 지나갔다. 만 년이 지나도 그대로 서 있을 것 같은 곧은 아파트들이 수직 절벽처럼 섰다.

소년이 개에게 다가갔다. 목줄이 느슨해지자마자 호동은 즉시 걷기 시작했다. 소년은 멍하니 개에게 끌려 둔덕을 터벅터벅 올랐다. 소년은 날카로운 판자로 된 가드레일을 손으로 쓸었다. 개는 그것에 앞발을 올리고 넘어가려 애썼다. 소년은 그것을 바라보다가 배에 손을 집어넣고 번쩍 들어 가드레일 너머로 옮겼다. 4차선의 고속도로에는 갖은 크기의 차들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소년도 울타리를 넘어갔다. 개는 가만히 멈춰 환영처럼 흘러가는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여기가 네 목적지야? 소년이 소리쳤다. 큰 차들이 그의 소리를 먹었다.

여긴 너의 세상이 아냐. 네가 있어야 할 곳. 여기가 아냐. 소년이 개에다가 대고 소리쳤다.

갑자기 호동이 걷기 시작했다. 힘을 거의 다 쓴 듯이 위태로운 발걸음이었다. 그들은 갓길을 따라 걸었다. 개는 날개뼈를 높이 드러내 놓고 힘겹게 나아갔다. 바퀴가 여섯 개 달린 트럭이 경적을 울리며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먼 산에 걸쳐진 농지와 수없이 잘게 가물은 직선의 검은 논밭 같은 아스팔트, 유리창에 가려져 순식간에 흩어지는 사람들의 표정과 눈길, 시멘트로 된 중앙선. 소년은 덜덜 떨면서 개의 목줄을 잡고 뒤를 따랐다.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야. 끝도 없어. 평생을 걸어도 못 갈 껄. 소년이 소리쳤다. 호동은 혀를 빼물고 비틀비틀 걸었다. 털 오라기 하나 없는 자동차들, 맑은 하늘과 마른 타이어의 냄새. 쿵쿵 박동하는 떨림이 목줄을 타고 건너왔다. 개는 머리를 흔들면서, 혀를 땅에 끌면서, 무릎을 구부리고 그렇게 나아갔다.

그리고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호동은 다시 일어서려 다리를 버둥댔지만 또 머리를 바닥에 박았다. 소년이 다가가 호동의 목에 손을 올렸다. 호동의 오른쪽 흰 눈이 미동도 하지 않고 앞을 바라보았다. 호동은 불규칙하게 배를 부풀었다 줄었다 하며 숨을 내쉬었다. 꼼짝할 힘도 없는지 더 이상 다리를 버둥대지도 않았다

소년은 가까이 앉아 호동의 머리를 무릎 위 품에 안아 감쌌다. 그리고 울었다. 검고 흰 도로에서 사람들은 갓길에 놓인 이방인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지나갔다. 누군가 신고했는지 멀리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아득하게 울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