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협상, 그 이후

한국은 지난 24일(수) 미국과의 제7차 쌀협상에서 의무수입물량(TRQ) 증량과 수입쌀 시판 등 주요 쟁점에 대해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미국은 한국이 관세화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TRQ를 8%까지 늘릴 것과 현재 가공용으로만 사용하고 있는 TRQ를 75%까지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관세화와 TRQ증대 두 가능성 모두 농민들에게 큰 부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쌀개방으로 타격을 받을 농가 대책으로 ‘쌀농가소득보전방안’을 내놓았다. 이는 3년 단위로 목표 쌀가격을 정하고 목표가격과 당해연도 가격 차이의 80%를 농가에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농림부 한 관계자는 “WTO가 금지하는 추곡수매제를 더이상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쌀농가소득보전방안’이 농가소득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부는 추곡수매제 폐지로 식량 안보가 위협받는다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공공비축제를 실시,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추곡수매제 폐지 관련 내용이 포함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상정돼 있다.

 

그러나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은 ‘쌀농가소득보전방안’이 임기응변식 정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쌀 생산비가 매년 10%씩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3년마다 목표가격을 설정하는 것으로는 농가의 실질 소득을 보장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쌀값이 하락할 경우 대농들은 수천만원을 보상받을 수 있으나 소농들은 생산비도 보상받을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농촌 구조조정을 부추기게 된다고 주장했다. 김제에서 쌀 농사를 짓는 최필수씨는 “농사 규모에 관계없이 생산에 필요한 기본 비용은 비슷하지만 수확량의 차이는 자본 규모에 따라 매우 커서, 소농들은 실질적인 소득보장을 받지 못하고 시장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진도 교수(충남대·경제무역학부)는 “농촌 구조조정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정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구조조정은 그 속도가 너무 빠른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전농과 민주노동당은 해결책으로 ‘식량자급률목표치 법제화’를 제시하고 있다. 전농 이영수 정책국장은 “일본·스위스 등에서 현재 시행중인 식량자급률 보존법은 WTO 체제 하에서도 문제가 되지 않으며, 이 제도가 시행되지 않는 것은 농업정책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부족한 탓”이라고 지적했다.

 

최필수씨는 “정부 정책을 환영하는 사람은 대농들 뿐”이라며 “이미 고령화된 소규모 농민들은 농사를 그만두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권이 없다”고 말했다. 해남의 농민 성하목씨는 “쌀농가소득보전방안은 그럴듯한 말로 국민을 속이는 것”이라며 “물가인상률·생산비 증가 등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목표가격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농민이 포함된 협의기구를 마련, 심의·결정권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와 국민들의 진심어린 관심이 없다면 더 이상 우리 농업이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 현지 농민들의 호소이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