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송채은 기자 panma200@snu.ac.kr
삽화: 송채은 기자 panma200@snu.ac.kr

몇 년 전 공군에서 복무할 때의 일이다. 공군 구성원은 매해 온라인으로 일정 시간 성폭력 예방 교육을 이수해야 했다. 공공기관에서 만든 성폭력 예방 교육의 내용을 대체로 신뢰하지 않았었는데, 그해 새로 만들어진 교육자료를 열어봤다가 무척 놀랐다. ‘슬럿워크’(slut walk) 운동에 대한 소개로 시작하는 교육은 풍부한 ‘성인지 감수성’에 기초해 있었고, 구체적인 지침들에도 조직 내 성폭력 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이 담겨 있었다. 군대가 아니라 전체 한국 사회를 놓고 판단해도 충분히 뛰어난 내용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어쩌면 한국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조직 중 하나일 군대에서, 어떻게 이런 근사한 교육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지금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지만 당시 군대에는 성차별적인 문화가 강력히 존재했고, 당장 내 주위에도 성폭력 피해자의 평소 ‘행실’을 문제 삼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당시 나는 이렇게 훌륭한 예방 교육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공군 조직의 역량이라기보단 공군본부 인권 관련 부서의 ‘뜻 있는’ 몇 사람이 노력한 덕분이라고 결론지었다. 물론 그들의 노력이 관철될 수 있었다는 것 자체도 조직의 역량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 과정엔 은근한 정치와 치열한 설득, 적절한 행운이 모두 작용했을 것이다. 그 교육을 듣는 대부분은 제대로 듣지도 않고 억지로 ‘다음 페이지’ 버튼을 누르기나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래도 누군가는 그들의 노력에 응답했을 것이다.

교사가 된 한 친구는 교복을 일괄구매하는 업무를 맡게 됐는데, 남학생의 하의로는 바지, 여학생의 하의로는 치마만 신청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선배 교사에게 받은 전년도 신청서 양식이 그랬다. 담임 반의 한 학생이 치마 대신 바지를 신청할 수 없냐고 물었다. 친구는 그에게 ‘여학생은 치마를 입어야 한다’는 성별 이분법적인 답변을 하고 싶지 않았다. 문제를 일으키는 건 아닐지 고민은 들었지만, 양식을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누구나 당연히 생각했을 뿐 학교 규정에 명시된 것은 없다는 허점(?)을 이용했다. 이제 이 학교에서는 원하는 학생들은 치마 대신 바지 교복을 입을 수 있게 됐다. 작지만 중요한 변화가 이렇게 시작되기도 한다.

20대 초반 무렵, 학교 안팎에서 공동체적 가치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 어떤 친구들은 자신이 믿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활동가의 삶을 선택했고, 대부분은 그와는 크게 상관없는 세상 속으로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은 보통 자아실현과는 아무 관련이 없어서 적당히 주어진 몫만 해내면 그만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어떤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그 상황이 자신이 믿는 가치와 연결돼 있음을 기민하게 알아차리고 그 순간만큼은 그 가치를 지켜내려는 사람들이 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스스로 어떤 이득이 있기는커녕 더 귀찮아질 가능성이 클 텐데도 굳이 그렇게 ‘열심’이다. 그래야만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신문』 지난 호엔 윤영관 명예교수님의 글 ‘쉽게 항복하지 마세요’가 실렸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건 ‘이웃과 세상 사람들의 삶이 풍요로워지게 하겠다는 자세’로 살겠다는 ‘개인적 존재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키라는 당부가 무척 감명 깊었다. 세계는 견고한데 일상은 지리멸렬해서, 보잘것없는 우리는 자주 패배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의 표현처럼 ‘쉽게 항복하지 않는’ 사람들이 분명 곳곳에 존재한다. 나도 그들처럼 살고 싶다는 다짐을 담아, 답하듯 썼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신중휘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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