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뤄진 차별금지법, 함께 유예된 인권 보장
미뤄진 차별금지법, 함께 유예된 인권 보장
  • 김용훈 기자
  • 승인 2019.03.10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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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현황과 전망

“서울대 구성원들도 차별금지법 원안 입법 운동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동참하기를 촉구한다.” 2007년 포괄적 차별금지법 법안에서 성적 지향, 학력, 병력 등 핵심적인 차별금지 사유 7개 항목이 삭제되자, 『대학신문』은 차별금지법이 본래의 취지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설을 띄웠다. (『대학신문』 2007년 11월 10일 자) 그로부터 10년 남짓한 시간이 흐른 지금,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여전히 거센 반대를 마주하며 표류하고 있다. 『대학신문』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불러온 논쟁과 차별금지법이 걸어온 길, 그리고 나아갈 미래를 살펴봤다.

강산이 뒤바뀔 동안 변하지 않은 논쟁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차별에 관한 법제상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제안됐다.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국무총리에게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하며 지적했듯, 기존 법률 체계는 특정 분야의 협소한 차별을 금하는 데 한정됐고, 차별을 금한다는 선언에 그쳐 차별 구제가 미흡했다. 이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과 같은 개별적 차별금지법이 담지 못한 다양한 차별금지 사유를 포괄하고 △차별의 정의를 확대해 직접차별뿐 아니라 간접차별과 괴롭힘(Harassment)도 규율하며 △시정명령, 소송지원, 징벌적 손해배상, 증명책임의 전환 등을 통해 구제수단의 실효성을 제고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미류(활동명) 공동집행위원장은 “차별금지법은 가치로서의 반차별, 평등 원칙을 선언함과 동시에 차별을 실질적으로 시정할 수 있는 법”이라고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큰 반대를 마주하고 있다. 성적지향을 차별금지 사유로 포함한 것을 두고 거센 항의가 이어진 것이다. 주된 논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동성애를 반대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이다. 지난달 26일 개신교 주류 교단이 주축이 된 ‘동성애·동성혼 반대 국민연합’은 차별금지법을 “심각한 사회적 폐해를 주고 있는 동성애에 건전한 비판조차 못 하게 하는 매우 악한 법”이라 평하며 거부의 뜻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미류 위원장은 “신체의 자유가 있다고 폭행을 허용하지는 않는다”며 인격을 훼손하는 차별적 언사는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미류 위원장은 실제 표현의 자유를 잃은 사람은 혐오와 차별을 마주한 소수자들이라고 덧붙였다. 소수자가 공론장에서 발언할 기회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여론과 배치된다는 주장이다. ‘아름다운 결혼과 가정을 꿈꾸는 청년모임’은 홍보 책자에서 “과반수가 넘는 국민들이 동성애에 부정적”이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이 입법돼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희망을만드는법’ 소속의 조혜인 변호사는 “누군가가 어느 사회 구성원의 특성에 반대한다고 그 구성원들의 법적 권리를 박탈할 수는 없다”며 평등권을 재확인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동성애에 대한 호오와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그는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만연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며 오히려 그런 차별적 인식의 존재가 편견을 해소할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진전되지 못한 입법, 그 이유와 책임은

날 선 논쟁이 무색하게,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세계적으로 인권을 보호하는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법이 규율하는 차별의 영역이 확대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며, 영국, 호주, 캐나다, 독일 등 수많은 인권 선진국도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도입했다. 조혜인 변호사는 “정치, 사회, 경제적 상황이 일정 수준에 이른 국가에선 대부분 기본적으로 만드는 법”이라며 포괄적 차별금지법 도입이 이토록 늦어지는 현실이 오히려 비정상적이라고 꼬집었다. 불과 몇 개월 전 ‘UN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아직도 입법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이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은 다양한 국제인권기구로부터 끊임없이 포괄적 차별금지법 도입을 권고받고 있다. 물론 이제껏 한국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이 시도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07년 법무부가 정부안을 입법예고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여섯 차례 법안이 제출됐다. 하지만 회기 만료, 자진 철회 등의 형태로 입법은 번번이 무산됐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십 년을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보수 개신교 세력의 반대에 시달렸다. 처음 입법이 시도된 2007년부터 보수 개신교 세력은 반동성애를 주요 의제로 삼아 격렬히 반대해왔다. 종교계 전반이 같은 행보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대한불교청년회’ ‘원불교인권위원회’ 등 불교계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참하고 있으며, 심지어 ‘감리교퀴어함께’ ‘무지개예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등 개신교 일부 단체도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 속해있다. 이런 모습을 두고 ‘제3세대 그리스도교 연구소’의 김진호 연구기획위원장은 보수 교단이 교리 외의 의도로 동성애 이슈를 이용한다고 평했다. 그는 동성애 이슈가 교단 내부의 시선을 외부로 돌릴 좋은 의제가 되고 있다며 “교회가 외부의 적에 대한 증오를 통해 개혁을 회피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이유로 보수 개신교 세력은 정치인들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나서는 것을 막는 데 주력하고 있다. 차별금지법 입법을 추진하는 의원의 사무실에 전화를 끊임없이 걸거나 소위 ‘문자 폭탄’을 보내 업무를 마비시키도 하고, 낙선운동을 함으로써 직접적인 힘을 보여주기도 한다. 19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김한길, 최원식 의원이 스스로 법안을 철회한 것도 반대 세력의 괴롭힘이 원인이었다. 김진호 연구기획위원장은 “개신교는 가톨릭, 불교 등 다른 종교에 비해 자주 모임을 갖는다”며 “자주 집회를 갖는 집단의 정치적 의사 표현은 굉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국회의원 역시 “선거를 의식해야 하는 정치인으로서 쉽지만은 않은 문제인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런 실력 행사는 탄력을 받아 거세지고 있다. 2007년, 2013년 차별금지법을 좌초시킨 경험이 차별금지법 반대 세력에게 입법을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 것이다. 조혜인 변호사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좌초 이후 ‘인권’ 자가 들어간 모든 법들이 다 그런 식으로 가로막힌 상황”이라고 현황을 설명했다.

이렇듯 일부 세력의 지속적 방해로 차별금지법 제정이 저지되는 데엔 정치인의 책임도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조혜인 변호사는 “정부나 국회가 법과 제도를 만들기 위해 유권자를 설득해야 했다”며 차별금지법 제정이 미뤄진 근본적 원인은 반대 세력이 아니라 정계의 의지 부족이라고 비판했다. 미류 위원장 또한 정부가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을 두고 “어떤 사람에게 권리가 있는지는 다수결에 부칠 수 없는 문제”라며 사회적 합의가 아닌 인권의 재확인이 필요한 시점에서 정계가 핑계를 대고 있다고 평가했다. 조혜인 변호사는 “이렇게 민주 사회의 기본 전제를 부정하는 목소리를 정당한 의견처럼 여기는 행태가 민주주의 발전을 십 년이 넘도록 가로막아왔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제껏 기다린 차별금지법, 얼마나 더 기다려야

전문가들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수밖에 없는 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혐오·차별 문제가 격화되고 반차별이 시대의 사조가 된 이상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시점이 언제가 될지에 대해선 가늠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국가인권위원회 혐오차별대응기획단 김태은 직원은 “정계가 표를 의식하지 않고 반대 측의 항의를 끊어낼 수는 없을 것”이라며 “그런 결단이 가능한 시기는 지금일 수도, 나중일 수도 있다”고 전했다. 미류 위원장 또한 “20대 국회의 폐회까지 1년 정도밖에 남지 않아 갑갑한 상황”이라고 심정을 드러냈다.

불확실한 미래를 앞뒀지만 반가운 신호가 나타나기도 했다. 우선 차별에 대한 시민사회의 인식이 점차 증진되고 있다. 조혜인 변호사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주최하는 집회에 점점 더 많은 시민이 참여하고 있으며 혐오와 차별에 대한 사회의 문제의식이 깊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2017년 재출범할 때 참여한 단체의 수는 출범 당시 그것의 두 배에 달한다. 더불어 국가인권위원회와 정계도 변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다소 미온한 태도로 시민사회의 비판을 받았던 국가인권위원회는 최영애 위원장 취임과 함께 차별 해소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금태섭 의원은 “정치인들도 차별 문제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며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정계 또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알렸다.

결국 이후의 국면은 시민사회의 역량에 달렸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시민사회가 법안 통과를 위해 종교계와 정계를 압박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진호 연구기획위원장은 “교인들이 불만을 표해야 목사가 움츠린다”며 시민사회가 한목소리로 보수 개신교의 변화를 요구할 때, 비로소 그 목소리가 신자를 거쳐 교회를 바꿀 수 있다고 밝혔다. 김태은 직원 또한 “법무부든 국가인권위원회든 국가기구는 법안을 반대하는 소수의 사람도 무시할 수 없다”며 국가기구의 한계를 지적하곤 “예산의 한계, 여론의 향방 등과 같은 국가의 핑계를 시민사회가 속속들이 확인해 시정을 요구하는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지난달 20일 국가인권위원회는 ‘혐오차별 대응 특별추진위원회’(특별추진위)를 발족했다. 특별추진위는 혐오차별 문화를 공론화하고 시민의 관심을 환기함으로써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의 토대를 마련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동시에 특별추진위가 출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동성애·동성혼 반대 국민연합’은 국가인권위원회의 행태와 의도를 우려한다는 강도 높은 논평을 냈다. 앞으로도 특별추진위의 활동은 사회적으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한국 사회가 무감각하게 사지로 내몬 소수자들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시민사회의 진중한 관심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삽화: 권민주 기자 kmj4742@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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