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는 계절, 바야흐로 가을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다. 방학동안 조용하던 캠퍼스는 책 한 권씩 가슴에 안고 캠퍼스를 거니는 반가운 웃음들로 가득찬다. '독서의 계절'. 평소에 도서관에 자주 가는 편은 아니지만 가을을 맞아 도서관에 대한 얘기를 주제넘게 몇 자 적어볼까 한다.


이른바 '학문의 전당'이라 불리는 서울대 안에서도 그 중심에 우뚝 선 중앙도서관이 세계 유수 대학의 도서관과 비교했을 때 꽤 부실한 편이라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2001년 기준으로 서울대 중앙도서관의 장서 수는 219만 권, 구독 학술지는 9974종으로, 하버드대(장서 수 1468만권, 구독 학술지 10만 종)는 물론 도쿄대(762만 권, 3만 종)나 미네소타대(597만 권, 4만 종) 등에 비해볼 때 국내 최고 수준의 도서관이라고 말하기 조차 부끄러울 정도다.


기원전 3세기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나 소아시아의 페르가몬 도서관 장서 수가 70만 권에 달했다고 하니, 서울대 중앙도서관의 규모는 파피루스 시절 도서관 규모의 세 배밖에 안된다고 단순 비교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어쨌든 석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는 한 선배가 국내에서 원하는 자료를 찾지 못해 미국으로 떠난다는 말을 들으니 우리 도서관의 현실이 더 가슴아프게 다가온다.

사설 독서실 역할 하고 있는 중앙도서관
세계적 대학으로 발전하려면 도서관부터 개선해야


책이 모자란 때문인지 우리 도서관은 사람으로 자리를 가득 채울 모양이다. 불철주야 도서관 형광등은 꺼질 줄 모르고 시험기간이 되면 그나마도 자리가 많이 부족하다. 열람실 좌석이 부족하다보니 한쪽에서는 도서관을(정확히 말하자면 도서관 열람실을) 학생에게만 개방해야 하는가 아니면 외부인들도 출입할 수 있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해마다 벌어진다.


하긴, 서울대생이건 외부인이건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사람들한테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제의 본질은 도서관의 역할이 공부하는 곳인가, 아니면 공부(혹은 연구)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곳인가 하는 데 있다.


도서관의 일반적인 업무내용 중 '열람' 부문은 '이용자에 대한 자료의 배포, 이용자의 도서관자료 선택·이용에 대한 지원, 잠재적 욕구의 자극'이라고 규정돼 있을 뿐이며 수서, 정리 등 다른 부문에서도 도서관 자료와 관계없이 다른 공부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 업무는 찾아볼 수 없다. 요컨대 현재 서울대 중앙도서관 열람실이 맡고 있는 기능은 도서관이 맡아야 할 일이 아니라 사설 독서실이 맡아야 할 일이며, 도서관은 본래의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는 얘기다. 생각해보니 독서실이라는 이름도 거기에 썩 어울리는 것 같지만은 않지만.


세계 10위권 대학에 진입하겠다는 서울대의 원대한 이상이 실현되려면 도서관이 연구의 중심으로 자리잡는 것이 우선이다. 도서관이 무거운 책을 잔뜩 짊어지고 들어가 시험공부, 고시공부를 하는 곳이 아닌 메모지 한 장과 펜 하나만 가지고 가도 언제든 마음이 든든한 지성과 학문의 창고로 자리매김하지 않는 한 '연구중심대학'이라는 캐치프레이즈도, 국립대학 도서관 개방에 따른 공공성 논쟁도 무의미하다.


논문 자료를 찾으러 곧 미국으로 떠날 선배가 몇 년 뒤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할 때는 굳이 많은 돈 들여서 외국으로 가지 않아도 필요한 자료들을 쉽게 열람할 수 있는 그런 도서관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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