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이과 구분과 경계넘기의 두려움
문, 이과 구분과 경계넘기의 두려움
  • 대학신문
  • 승인 2019.03.2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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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성한아 강사<br></p><p>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br></p>
성한아 강사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새 학기 시작 즈음 서울의 미세먼지 수준은 계속해서 ‘나쁨’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늘은 다행히 ‘보통’으로 사정이 나아졌지만, 어느 새벽 요란하게 울렸던 재난 문자를 떠올리며 괜히 한 번 더 마스크를 챙겼는지 확인했다. 뉴스에서는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인공강우 실험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며칠 전 미세먼지 때문에 목이 심하게 붓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곧 시작할 강의를 걱정했는데 다행히 목소리가 괜찮아졌다. 나는 ‘과학기술과 사회’란 교양 강좌를 맡아 강의하고 있는데 학기마다 강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이 강의가 왜 필요한지, 무엇을 배우는지를 소개하는 시간을 갖는다. 

‘과학기술과 사회’라는 강의는 과학이 사회, 정치, 문화와 상호작용하며 이루는 복잡한 결들을 탐구해 온 연구들로 꾸려져 있다. 2018년부터 한국의 고등 교육 과정은 적어도 제도적으로 문과와 이과를 더 나누지 않지만, 한동안은 이 뚜렷한 구분 속에서 공부해 온 학생들이 이 수업을 들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수업을 선택한 학생들에게 이과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과학’과 문과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사회’ ‘정치’ 혹은’ 문화’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그 복잡한 관계를 볼 줄 아는 것이 왜 중요한지 설득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소위 ‘창의융합형 인재’를 요구하는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문과와 이과라는 두 영역 사이 경계를 넘나들어야 한다는 필요성은 빠르게 변화하는 지금을 살아가는 학생들 스스로가 가장 크게 느끼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언제나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민감하게 새로운 변화를 체감하고 그에 반응해왔다. 

그러나 끊임없이 스스로 한계를 넘어서고자 시도하는 학생들에게 문이과의 경계가 그저 단순한 영역 구분 이상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강의를 시작할 즈음 학생들로부터 이메일이나 대면 상담 요청을 받곤 하는데, 소위 문과에 속하는 학생들이 주를 이룬다. 흥미롭게도 고민은 공통적이다. 과학 분야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자신들이 이 수업을 수강할 수 있겠냐는 내용이다. 매학기 같은 종류의 질문이 잊을만하면 나오는데다가, 생각해보면 공부라면 전국 상위권에 들었을 서울대 학생들에게서도 이런 질문이 나온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다. 물론 우리 수업은 필요한 경우 관련 자연과학지식을 다룬다. 그런데 실제로 질문했던 학생들이 그 구체적인 내용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별로 본 적은 없다. 게다가 그렇게 초반부터 세심하게 강의의 성격을 파악하고자했던 학생들이 나쁜 성적을 받을 리도 없다. 그런데 지난 학기에도 또 같은 내용의 이메일을 받고 나선 문과와 이과라는 구분이 단순한 교육 과정의 구분 이상으로 학생들에게 새로운 시도에 대한 일종의 정서적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과와 이과라는 제도적이며 학습된 경계가 어떤 학생들에겐 다른 영역에서 학문하기에 대한 두려움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는 문과와 이과라는 이분법적인 틀로 분류할 수 없다. 마스크를 챙기면서 봤던 미세먼지 관련 뉴스는 인공강우 실험을 다루기도 했지만, 연이어 중국과의 외교 문제도 다루고 있었다. 미세먼지는 과학적 문제이면서 동시에 외교적 문제기도 하다. 올해는 아직 같은 질문을 하는 학생은 없었다. 부디 문이과 구분이 구축해 놓은, 이제는 없어질 경계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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