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 | 임현 소설가 신작 연재 소설 ⑤

*편집자 주

이번 학기 『대학신문』에서는 임현 소설가의 신작 소설을 다섯 번에 걸쳐 연재합니다. 이번 화가 마지막화입니다.

7. 다음 날 아침부터 수경은 보이지 않았다. 예상보다 이른 시간이었으나 서재나 욕실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유희도 찾을 수 없었는데 기척도 없이 언제 나가버린 걸까. 아니면 밤새 뒤척이다가 동 틀 무렵 겨우 나는 잠들 수 있었는데 그게 생각보다 깊었던 걸지도 몰랐다. 물기가 남은 세면대를 바라보며 나는 유희를 떠올렸다. 지금 하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냐고 당장 따져 묻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억누르고 돌아 누운 유희의 등 뒤에 대고 차분하게 물었으나 유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뒤로는 억지로 애쓰거나 달래거나 하는 일 없이 나도 더이상 묻지 않고 등을 마주한 채 돌아누웠다. 이 문제에 대해 일부러 모른 척 했다기보다는 혹시라도 큰 소리가 오가고 그것으로 수경이 엿듣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 염려 되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무언가를 더 오해하고 큰 싸움으로 이어지기 전에 해결해야 될 문제라고 나는 생각했다. 적어도 날이 밝고 수경을 배웅한 다음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될 일이었다. 그런데… 유희는 왜 아직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평소보다 오래 샤워를 하고, 습기가 찬 욕실의 거울을 닦아내고, 머리카락과 세면도구들을 느리게 정리하는 동안 나는 혹시라도 유희가 거실에 돌아왔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했다. 일부러 물을 틀어 문 바깥의 소리가 들리지 않게 유지하면서 소파에 앉아 아무것도 틀어 놓지 않은 텔레비전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를 유희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올렸다. 그러나 문을 열고 욕실 밖으로 나왔을 때는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대신 나는 수경이 묵었던 작은 방의 문을 열어 보았다. 차곡하게 개어진 이불이 한쪽에 정리되어 있었고 예상과 다르게 수경의 짐들이 그대로 있었다. 더욱이 이불을 옮길 생각으로 나는 바닥에 놓인 것을 들었을 때, 그 뒤에 다른 무언가가 더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분명 수경의 물건이었다. 그러니까 유희나 내가 이 집에 들여놓지 않은 것, 이 집 안에서 별다른 쓸모가 없는 것. 나는 이불 대신 그것을 들어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애완동물을 담거나 옮길 때 사용하는 케이지였는데, 비어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내용물이 느껴졌다. 그러나 움직임이 없었고, 반려동물이라고 하기에는 무게감도 달랐다.

간밤에 들었던 수경의 반려견 이야기를 나는 떠올렸다. 혹시, 그것을 데리고 여기까지 왔던 걸까. 그런데 왜 두고 간 걸까. 내가 모르는 사이 유희가 그것을 맡기로 한 건가. 그런데 어째서 어젯밤에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 그건 그렇고 이건 왜 여기에 넣어둔 걸까. 이 인형은 뭐지? 왜 개가 아니라 개 인형이 들어있는 걸까. 나는 케이지 안에 들어 있는 갈색 모조털을 만지며 생각했다. 그러고는 유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물어보고 싶었다. 혹시, 어제 이야기했던 게 이것과 관련된 거냐고, 수경이 할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말이 이 인형에 대한 것이었냐고. 그걸 모른 척 하라는 말이었을까. 그러나 연결 대기음만 오래 울렸을 뿐 유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럼 그건 뭐였을까. 

‘개자식.’

수경이 그렇게 된 데에 내가 어떤 책임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였을까. 그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 그리고 현관문 앞에는 유희가 아닌 수경이 서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유희는? 둘이 같이 나간 게 아니었어?”

“아니. 난 잠깐 산책하러 나갔다 오는 길인데. 괜히 나 때문에 깰까 봐, 일부러 좀 천천히 들어왔지. 유희는 어디 갔어?”

그러고는 수경은 작은 방으로 들어가 짐을 챙긴 뒤에 다시 거실로 나왔다. 수경의 손에는 문제의 그 케이지도 들려 있었다. 나는 괜히 그 쪽으로 눈길을 두지 않은 채 일부러 트렁크를 받아들며 수경을 도왔다. 

“그래서, 일본이 아니면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인데?”

수경은 케이지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런 사려 깊은 태도가 나는 신경 쓰였다. 

“뭐. 어디든. 어디든 가야지. 그런데 오늘은 좀 기운이 없어 보이네.”

그러고는 케이지를 열어 인형의 여기저기를 살피기 시작했다. 쓰다듬고 보듬고 “괜찮아. 괜찮아.”하고 중얼거렸다. 나는 그런 수경을 바라기만 할 뿐이었다. 이 상황에서 참을 수 없이 수경을 말리고 싶고, 그것으로 어떤 도움이 되고 싶었으나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유희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랬으므로 내게 그냥 모른 척 하라는 말을 했을 것이다. 

“진짜 이상하네. 평소에는 이렇게까지 조용한 애가 아닌데. 여기서 가까운 동물병원이 어디야?”

대답을 듣기도 전에 수경은 당장 어디로라도 나가버릴 듯한 자세를 취했다. 내게는 그것이 무척 위협스럽게 느껴졌는데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잠깐만. 이 시간에 문을 연 데가 어디 있다고 그래.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혹시라도 내가 지나치게 당황해 하고 있다는 것을 수경이 눈치 채는 것은 아닐지 걱정했으나, 수경의 관심은 오로지 그 케이지 안에 든 인형 뿐이었다. “그런가….” 하는 수경의 혼잣말이 나로서는 안타깝고 아쉽게 들렸다. 

나는 안방으로 들어가 다시 한번 유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여전히 연결이 되지 않았다. 도대체 어딜 간 걸까. 이 상황에서 혼자보다는 분명 유희가 도움이 될 거라고 여겼다. 적절한 말로 둘러대고 변명하면서 말리고 설득하는 데 적어도 두 사람 몫은 필요해 보였다. 그때 수경이 안방 문을 두드렸다. 

“아무래도 불안해서 안 되겠어. 금방 주변이라도 둘러보고 올게. 우리 아이 좀 잠깐 맡아줄래? 혹시 문을 연 병원을 찾으면 전화 할게. 같이 데리고 올 수 있지?”

그러고는 내가 무얼 대처하기도 전에 수경은 현관문 밖으로 서둘러 나갔다. 식탁 위에는 그 케이지가 올려져 있었다. 케이지 가까운 곳에 도무지 움직일 기미가 없는 그 인형도 함께 놓여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수경처럼 부드럽게 쓰다듬어 보았다. 손바닥으로 합성섬유의 감촉이 느껴졌다. 이런 것을 들고 동물병원을 찾는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무엇보다 상대방의 난처한 표정을 확인하게 될 수경이 걱정이었다. 돌아올 대답들, 그녀가 믿고 있는 무언가를 부정당하게 될 상황들, 더구나 그로부터 수경이 진짜 잃게 될 것들이 이번에는 무엇이 될지 좀처럼 가늠이 되지 않았다.

8. 다행히 수경보다 먼저 돌아온 것은 유희였다. 이 시간에 어딜 나갔다 온 거냐고, 전화는 또 왜 안 받는 거냐고, 그건 그렇고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당신도 알고 있었어? 유희가 신발을 다 벗기도 전에 나는 한꺼번에 질문을 쏟아냈다. 그런 나를 유희는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식탁 위에 놓인 것들, 수경의 물건들을 바라보았다. 

“왜 아직 이게 여기 있어?”

“무슨 소리야?”

“언니가 아직 이 집에 있는 거야? 아직 가지 않은 거야?”

“그보다 당신이 먼저 대답해 봐. 어제 그게 무슨 말이야?”

유희는 식탁을 바라보며 앉아서 그것을 이번에는 사나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뭐야?”

“당신이 더 잘 알 텐데.”

“뭘? 내가 뭘 알아야 하는데?”

유희는 찬물을 가득 담은 컵은 단숨에 비웠다. 

“언니는 일본에 가지 않을 거야.”

나는 그런 유희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대답했다. 유희의 등에 가볍게 손을 올리며 이 상황을 조금 차분하게 설명해 주기를 바랐다.

“그래, 그런다고 하더라.”

“알고 있었어? 어떻게?”

유희는 좀 전보다 더 공격적인 태도로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유희가 이토록 화를 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유희는 식탁 위에 놓인 인형을 무심결에 움켜쥐는 것을 나는 지켜보고만 있었다. 

“우리가 잘못한 거야. 그때 미안하다거나 잘못했다거나 우리 때문이라고 말했어야 해. 그때가 아니라면 어제라도 당신은 그런 말을 했어야 해. 적어도 그런 비슷한 말이라도 해야 한다고. 언니를 그냥 이렇게 두면 안 되는 거잖아.”

유희는 내가 모르는 나의 잘못들에 대해 늘어놓았다. 그것으로 우리가 사과해야 할 일들이 위로의 말이 되어버렸다고, 그게 수경을 아무것도 용서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고. 누군가는 그녀의 불행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그게 우리였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이제 무얼 사과할 수 있어? 언니는 당신 쓴 것들을 읽고도 그게 자기 이야기라고 믿지 않는데. 자기가 제일 불행하면서도 자기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여기기 시작했는데, 이제 우리가 뭘 사과할 수 있지?”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리도구함에서 가위를 꺼내들었다. 그것을 들고 고작 헝겁덩어리일 뿐인 인형을 찢기 시작했다. 

“무슨 짓이야?”

유희의 위태롭고 위협적인 행동을 나는 서둘러 말렸다. 그때 초인종이 울리고 수경이 돌아왔다. 어지럽게 널브러진 조각들을 나는 서둘러 한곳으로 감춘 뒤, 현관문을 열었다. 그 사이 유희는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수경은 문을 연 동물병원을 찾지 못해서 다소 낙담한 표정으로 현관을 들어섰다. 현관 앞에 벗어둔 유희의 신발을 확인하고는 그녀가 돌아왔느냐고 물었다. 그러고는 금세 반려견의 안부를 물었다. 

“우리 애는 좀 괜찮아?”

나는 이 상황을 수경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내 말 오해하지 말고 들어.”

수경은 진지한 나의 목소리에 무언가 겁을 먹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혹시 무슨 일이 있었어?”

그러고는 황급하게 케이지 안이 빈 것을 확인하고는 다급하게 내게 물었다. 

“우리 애는? 우리 애는 어디있는 거야?”

“우선 내 말 좀 들어 봐. 당신은 지금 많이 아파. 이건 마음의 문제야.”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우선 우리 애가 어디있는지부터 대답해.”

“그런 건 없어.”

“뭐가?”

“당신이 키우는 개 같은 건 없다고.”

“왜 그래? 당신도 아까 봤잖아. 아파서 기운이 없는 걸 당신도 다 봐놓고 왜 그러는 거야?”

나는 그녀 앞에 조각난 인형의 일부를 내놓았다. 잔인하거나 혹독한 데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것으로 놀라게 될 수경을 나는 염려했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누구나 해야 될 말이었다. 

“잘 봐. 이건 그냥 인형일 뿐이야.”

수경은 그것을 멍하게 바라만 보았다. 화를 내거나 경악하지 않고 다만 놀라울 것 없는 평범한 장면을 바라보듯 그것을 보고만 있었다. 그러고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게 뭐야? 이걸 왜 나한테 보여주는 거야?”

“이건 살아 있는 게 아니야.”

“그래. 알아.”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하던 수경의 표정이 변한 것은 그때였다. 

“그런데 왜 이걸 나한테 보여주는 거냐고. 우리 애는 어디 있냐고. 왜 자꾸 딴 소리를 하는 거야?”

수경은 서재와 작은 방을 살피고, 욕실과 베란다, 다용도실을 차례대로 뒤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서랍이란 서랍은 모두 열고는 유일하게 이 집에서 잠겨 있는 안방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그러나 유희는 그 안에서 절대 나오지 않았다. 수경은 부술듯이 문을 두드렸다. 

“우리 애는 어디 있어? 우리 애를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수경의 목소리는 나중에는 거의 가까워졌고, 도무지 멈출 것 같지 않게 오래 계속 되었다. ▇

 

임현 소설가

»2014년 「현대문학」 등단

»단편집 『그 개와 같은 말』

»제8회 젊은작가상 대상(2017) 수상

»제9회 젊은작가상 본상(2018) 수상

 

삽화: 송채은 기자 panma200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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