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호 씨, 송새랑(사회대ㆍ05) 부친

신입생 여러분, 어떻게 대학생활을 할 것인가?

원효는 요석공주라는 ‘미스코리아’를 버렸다. 그는 집창촌의 여인들을 찾아다니며 속세에 지친 육신과 영혼을 위로해 줬다. 부처님은 신라 왕실의 웃음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저잣거리의 눈물 속에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주막집 아낙네에게서 명아주 국을 얻어먹으면 바로 설법을 시작했다. “그대는 깨달음의 주체이니 스스로 부처가 되시오.” 바로 민중불교이다. 저잣거리의 부처들과 살을 부대끼면서 살았으니 스스로도 그들을 닮아 진정한 부처가 됐다.

공자는 옳지 않은 부귀에 살지 않았고, 어찌할 수 없는 빈천을 마다하지 않았다. 부귀(富貴)에는 불처(不處)하고, 빈천(貧賤)에서 불거(不去)하라. 이런 삶 속에 인(仁)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가난을 지키며 인(仁)을 닦는 제자 안회를 가장 사랑하였다.

그는 늙은 외뿔소가 되어 거친 들판을 철환(轍環)하다가 굶주림을 면치 못했다. 57세에 떠났다가 70세에 노나라로 돌아왔다. 그가 벼슬자리를 얻고자 떠났는가. 아니다. 어렵사리 마련한 제후들과의 면담에서 부국강병은 멀리한 채 인(仁)을 설파하였으니 공자는 요새 말하는 ‘사오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다.

서울대 학생들이여. 저들처럼 평생을 두고 추구해 갈 삶의 목표를 정하라. 현실에 안주하거나 기회를 더 잘 이용하기 위해 공부하지 말라. 힘없는 자의 정의를 위한다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해 주기 위해서라는 거짓말에 이 나라 사람들은 속지 않는다. 고시 공부 흥, 의사가 되기 위해 대학을 중퇴 퉤. 째째한 목적에 눈을 돌리지 말라. 서울대생들이 진리 탐구를 버리고 현실을 택할 때 이 나라의 평범한 아저씨 아줌마들까지 걱정할 것이다. 그대들이 빈천에서 떠나 부귀에 처(處)했을 때 성공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민중의 눈에는 깨달음의 근기(根機)가 숨겨져 있어서 석가모니보다 더 밝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경리의 「토지」는 ‘복부인전’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 투기 열풍은 70년대 이래 강남의 졸부들을 만들었다. 민중은 이들을 천민이라고 기억할 것이다.

지금은 자본주의가 득세하는 시대이다. 민족과 세계가 열어야 할 길을 찾으라. 선진조국도 여러분들이 진리에 매진할 때 가능하다. 여러분들의 어깨는 무겁다. 그 버거움은 개인적 성공으로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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