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과 한일관계
태풍과 한일관계
  • 강동완 기자
  • 승인 2019.09.08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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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부 강동완 기자
취재부 강동완 기자

최근 ‘링링’이라는 이름의 태풍이 들이닥쳤다. 기록적 강풍 피해가 예상된다는 보도가 연일 쏟아졌다. 태풍이 점차 북상하며 오키나와에 이어 제주도에 다다르면서 우려는 가시화됐다. 그야말로 전국이 비상이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나다니기 두려웠던 나는 종일 실내에만 있었다. 그러자 역설적이게도 세상의 비바람은 그저 유리창 너머로 바라본 풍경에 불과했다. 바깥과 대비되는 정적은 오히려 운치마저 자아냈다.

한국과 일본, 태풍이 오면 두 나라 모두에 바람이 인다. 8월 초 취재차 일본으로 떠날 즈음에도 태풍이 예보됐다. 출국 직전 주변에서는 항공편 연착이나 반한 또는 혐한을 염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방 안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이미 한일관계는 바람 앞의 촛불 신세였다. 맡은 기사를 무턱대고 포기할 수도 없는 일, 나는 동료 기자와 함께 서둘러 채비를 마치고 공중으로 대한해협을 건넜다. 

다행히도 8월 초의 동경은 화창했다. 기상뿐만 아니라 세태도 그러했다. 미디어를 제외하고는 양국의 갈등을 내비치는 그 무엇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들도 내색하지 않는 듯했다. 다만 일본인의 겉치레라 할 수 있는 다테마에(建前) 너머로부터 태풍의 눈과 같은, 평화롭지만은 않은 고요함이 느껴질 뿐이었다.

현재 양국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갈등 상황은 단순히 우연의 산물도, 통계의 결과도 아니다. 1965년 이후 정립된 체제에 서서히 균열이 생기며 그 근원적이고 구조적인 불균형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맞서서 역사를 성찰하고 인격적 가치를 수호해야 함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정치는 서로 다른 법칙을 따른다. 정치 갈등과 외교 분쟁 속에서 파편적인 정보는 이성의 범위를 벗어나 진실의 탈을 쓴 독선으로 변모하기 쉽다. 진리란 어느 한 진영이나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진실은 유일한 절대 주체의 소유물로 남을 수 없다”라는 사르트르의 말처럼, 한국적인 것과 일본적인 것 모두가 온당하게 평가받아야 한다. 그것이 두 사회를 하나의 세계로 잇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혹자는 오늘날의 한일관계가 전례가 없을 만큼 가히 절망적이라 평한다. 기댈 곳도 빠져나갈 길도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절망은 다시 말하면 자신의 의지에 좌우되는 것만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일컫는다. 전례가 없는 사회는 스스로 새로운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자유는 한편으로 속박이기도 하다. 갈등 국면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는 우리의 권리인 동시에 커다란 책임이다. 단순히 창밖 풍경은 아닌 셈이다.

어느 시대에나 과거는 있다. 시간은 시대를 가리지 않고 흐른다. 과거를 돌아볼지 미래를 바라볼지는 자유다. 선택은 필연적이다. 커다란 희망을 품고 있는 젊은이는 과거를 돌아보며 연연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시대는 젊은 시대인가, 이미 늙어 버린 시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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