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도서관장 김명환 교수
중앙도서관장 김명환 교수

관악 캠퍼스의 중앙에는 대학본부, 학생회관, 중앙도서관이 있다. 건축 전문가들은 대학본부가 캠퍼스 중심을 차지한 것은 1970년대 개발독재 시기의 권위주의적 발상과 무관하지 않다며 비판적으로 본다. 그러나 중앙도서관과 학생회관이 교정 한복판에 자리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은 없다. 그중에서도 중앙도서관은 2015년 독특한 외관을 지닌 관정관이 완공되면서 그야말로 서울대를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됐다. 관정 이종환 회장의 600억 원 개인 기부로 마련된 관정관 덕분에 도서관의 좌석 부족은 해결됐으며 그룹 스터디 공간도 충분히 확보됐다.

이제 중앙도서관은 1975년에 완공된 후 45년이 넘은 탓에 낡을 대로 낡은 본관을 대대적으로 수리함으로써 도서관 본연의 기능에 더욱 충실하면서 동시에 대학 구성원의 변화하는 요구에 효율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애초 관정관 신축에 이어 바로 본관 리모델링에 들어갈 계획이었지만, 막대한 예산 확보가 어려워 지체되고 있다.

본관 리모델링이 시급한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가장 큰 이유는 도서관이 보유한 장서와 각종 자료의 증가로 10년 이내에 기존의 서고는 물론 수원 보존도서관도 포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혹자는 종이책이 모두 전자책이나 전자자료로 바뀔 테니 서고 확보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종이책은 여전히 인간 지식의 저장 매체로서 가장 효율적이고 저렴한 것이며, 앞으로도 오랜 기간 그럴 것이다. 과거 옛 종이신문 등을 마이크로필름/마이크로피쉬로 바꿔 영구보존하려던 계획이 지금은 무의미해진 점, 특히 작업과정의 원자료 손상과 마이크로필름/마이크로피쉬 역시 영구적이지 못함이 입증된 사실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본관 리모델링은 21세기의 서울대다운 연구와 교육에 긴요한 전시 공간 및 부속 연구시설 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앞으로 학내의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쳐 계획이 확정되고 예산이 확보돼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최근 생긴 음악도서관을 포함한 9개 분관의 발전과 내실화도 꾀해야 한다.

현재 중앙도서관은 모든 학술·문화행사를 개최할 때 학내 기관과 협력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과학기술의 일상사』,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다룬 최근의 북 콘서트도 다양성위원회, 기초교육원과 공동 개최함으로써 많은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성과가 있었고, 11월에 열릴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 기념 북 콘서트와 전시회는 자유전공학부와 함께 한다. 지난 9월의 작은 음악회처럼 외국인 학생들의 연주를 듣는 가운데 새로운 학생문화 발전을 돕고, 곧 열릴 빗물 식수화 기술 관련 전시회를 통해 UN이 정한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성찰 또한 힘껏 도울 것이다.

학생들과 함께 4·19혁명 기념탑을 비롯해 민주열사 추모비를 연결하는 교내 ‘민주화의 길’을 걸을 기회가 있을 때 중앙도서관 앞에서 항상 두 사람의 이름을 거론한다. 1981년 5월 광주항쟁 1주년에 벌어진 학내 시위 때 학살자는 물러가라고 외치며 도서관 창문으로 투신한 김태훈 열사와 1983년 11월에 역시 도서관 창문 난간에서 시위를 주도하려다 진압 경찰이 덤벼드는 급박한 상황에서 추락해 숨진 황정하 열사다. (후자는 영화 『밀정』에서 송강호가 열연한 주인공, 식민지 경찰이지만 항일투쟁을 돕는 인물의 실제 모델인 황옥 경부의 친손자다.)

나는 이 두 동문을 소개하며 강조한다. 군사정권 시절 도서관이나 연구실, 실험실에 꼭꼭 틀어박혀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 모두 이기적 출세주의자는 아니었고, 이들의 행로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자랑스러운 역사와 꼭 모순되지는 않는다고. 시위에 앞장선 학생들도 차분하게 공부할 여유가 없어 힘들어했고, 학생운동을 멀리한 이들도 고초를 겪는 벗들 때문에 정신적 갈등과 고민이 많았다고. 인간의 현실은 단순하지 않으며, 정답을 쉽게 앞세우기보다는 언제나 무엇이든지 의심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그것이 대학에 도서관이 존재하는 이유니까.

사족 같은 잔소리: 서가의 책들을 펼쳐보면 심한 낙서나 도서 훼손이 자주 눈에 띄며, 과거와 달리 반복해서 문자를 발송하는데도 연체율이 너무 높다. 학생들이 무척 바쁘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탓이지만, 조금은 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애써주면 좋겠다. 또 1인당 한 해 도서 구입 상한액은 아무 책이나 살 수 있는 권리가 아니며, 도서관 소장 자료의 다양성에 기여해 달라는 뜻이다. 학생과 직원 모두 자기계발서, 주식/부동산 투자서 등을 피하고 소장 가치가 높은 자료 신청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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