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사라질, 살아 숨쉬는 모든 것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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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승윤 기자
  • 승인 2019.11.10 1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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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 | 소설가 구병모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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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게 글쓰기란 완전한 인간성을 탐색하는 끝없는 여정이다. 소설가 구병모(44)의 작품은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불완전한 인간 존재를 내세워 인간성의 실존적 의미를 찾아간다. 이를 위해 그는 현실의 범위를 확장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현실의 지평선을 보여주는 안내자의 역할을 자처한다. 구병모 작가의 작품 속 실존적 인간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지난달 25일, 진주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삶이라는 현장의 선, 그 경계 위에서

우리는 열 여덟 살을 맞이하는 해에 날을 정해 놓고 다 같이 모여서 이행식을 한단다. 사실 내게는 별로 특별한 날이 아니었단다. 내 몸의 달맞이는 이미 한참 전에 시작했고, 그날의 축제는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의미일 뿐 사람의 인생에 어떤 경계나 구획이 명확히 그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축제의 시간이 지나고 난 뒤 그 누구도 내가 다음에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하는지를 알려 주지 않는데, 그 시간과 함께 아이의 껍질을 벗고 어른이 되었다고 선포하는 행위가 나에게는 새삼스럽게 여겨졌단다. 

- 『버드 스트라이크』(2019) 중

구병모 작가는 그의 대표작인 『위저드 베이커리』로 한국 청소년 소설의 경계를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금도 구 작가는 청소년과 청년들을 위한 소설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런 사회의 평가에 대해 그는 감사하다고 밝히면서도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국내에서 아직 청소년 소설은 성장소설과 동의어고, 중고등학생만이 읽는 책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라며 각 소설에 적합한 독자의 연령을 규정하려는 행동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이는 사회와 기존 언론이 그에게 입히는 ‘청소년과 청년을 위한 소설가’라는 이미지에 구 작가가 회의적인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 연장선상에서 구병모 작가는 자신의 소설에 특정한 사회적, 문화적 책무와 역할이 규정될 수 없다고 말했다. 구 작가는 “즐거움, 생산성, 효율성 등 보편적으로 알려진 명작의 기준에 대해서도 회의적 입장”이라고 말했다. 대신 그는 글을 쓴 지 십여 년이 되는 사람으로서 다양한 소재와 주제, 사건들에 관심을 갖고 이를 소설에 녹이려 노력하고 있다. 덧붙여 구 작가는 “사회가 규정하는 연령층이 아니라, 내 글의 내용이 마음으로 와 닿아 독자들이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짓는 것이 나의 집필 목표”라고 설명했다.

‘판타지와 현실을 아우르는 저서들’이라는 그의 작품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에도 구병모 작가는 색다른 시각에서 흥미로운 설명을 내놓았다. 구 작가는 “소설의 장르가 판타지나 리얼리즘이라고 언어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비평가들이 시장을 형성하고, 피상적 분류의 편의를 위해 이뤄진 과정”이라며 단 한 번도 자신의 작품을 판타지라고 생각하며 집필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소설 속에 사용하는 소재 중에서 독자들이 말하는 소위 판타지적이고 비일상적인 소재들, 예를 들어 『아가미』의 ‘아가미’나 『버드 스트라이크』의 ‘날개’는 이미 현실에 존재하거나 적어도 현실과 연관성을 갖고 있다”라며 판타지 장르에 대한 인식을 전환했다.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아 단순히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비현실이나 판타지로 규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표출한 것이다. 구 작가는 독자 개개인이 상상할 수 있는 현실의 범위가 매우 넓으며, 이 모든 것은 결국 생각과 마음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그는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명확하게 하는 것보다 모든 가능성의 문을 열고 현실의 폭을 광범위하게 넓히는 것이 내가 소설을 집필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일부조차 결국 현실을 기반으로 창작된 것들이기 때문에 소위 판타지적이거나 비현실적인 요소들은 진정한 리얼리즘으로 귀결된다며 구병모 작가는 현실의 범위와 시야를 넓힐 것을 촉구했다.

 

삶의 여정, 부단히 우리 자신에 닿는 그 길에서

언제 어떤 일로 떠날지 모르는 아이였잖아요. 오랜 기간 이내촌에 머물긴 했지만 실제로 당신은 불의의 사고로 떠나왔고요. 강하는 그 이름을 일상적으로 부르는 것조차 두려웠던 거예요. 한 번 제대로 마주한 적 없는 존재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 한 글자가 혈관을 부풀어 오르게 하고 마침내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 

- 『아가미』(2018) 중

소설 『아가미』는 주인공 ‘곤’과 그의 아버지의 동반자살로 시작한다. 구병모 작가는 “현실에서 누가 접해도 아프고 슬픈 이야기들의 다른 결말, 예컨대 현실의 희생자들이 살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그들이 빼앗긴 미래는 어떤 모습이었을지를 상상하며 『아가미』를 집필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현실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는 그의 소설의 중심축으로 작용해 왔다. 구병모 작가의 작품 속 인물들은 불완전하고 결핍된 존재다. 이에 대해 구 작가는 “인간 자체가 바로 현실에 생존해 있는 불완전함 그 자체”라며 “주변을 관찰하며 찾아낸 인간성의 그늘진 이끼, 이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불안정성과 상처를 소설 속 인물들에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구병모 작가의 작품들은 인간 존재와 인간성에 대해 깊게 다루고 있다. 그런데도 구 작가는 “나는 작품에서 인간성에 대해 단정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구병모 작가는 인간성이 무엇이며 무슨 역할을 하는지, 인간성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탐색해 왔다. 이와 같은 구 작가의 실존적 고민은 그의 작품세계에 다양한 방식으로 녹아 있다. 구 작가의 대표작 『위저드 베이커리』와 『아가미』는 차가운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인간의 내면 깊숙이 숨겨진 따뜻한 인간성을 내보인다. 구병모 작가는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시선 속에서 제3자를 오해하고 왜곡한다”라며 “이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과 타인이 투쟁한다”라고 말했다. 결국 그 무한한 투쟁의 과정이 인간성의 증거라는 것이다. 구병모 작가는 소설이 개개인의 실존적 문제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작가가 인간성을 비롯한 여러 실존적인 문제와 질문에 대해 직접 답을 제시해서는 안 된다”라며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존재가 바로 소설이고, 그 답을 독자가 스스로의 방법으로 찾아가게 하는 것이 소설의 존재 이유”라고 설명했다.

 

 

인간의 끝없는 여정, 그 열린 갈래길 위에 서다

언제나 옳은 답지만 고르면서 살아온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당신은 인생에서 한번도 잘못된 선택을 한 적이 없나요?

틀린 선택을 했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게 아니야. 선택의 결과는 스스로 책임지라는 뜻이지. 그 선택의 결과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너의 선택은 더욱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갈 거란 말을 하는거야. 

- 『위저드 베이커리』(2009) 중

구병모 작가의 소설은 대부분 열린 결말로 끝난다. 구 작가는 “사실 내 소설의 결말들 그 너머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라며 “무엇보다 현재의 결말을 넘어서는 결말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소설의 결말 그 이후를 독자들이 자신만의 상상으로 채워내는 것이 진짜 소설의 매력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후반부도 두 가지의 열린 결말로 처리해 많은 독자들의 궁금증을 유발했다. 그는 이에 대해 “소설의 결말을 비관적이거나 낙관적이거나, 이 중 어떻게 해석한다고 한들 그것은 독자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구병모 작가는 “작가가 완전한 결말을 제시하는 것보다 단지 결말로 이끄는 길을 제시하고, 부재하는 결말은 독자 자신이 찾아내는 것이 바로 나의 의도”라고 설명했다. 대신 그의 소설 속 결말은 독자들에게 큰 여운을 준다. 이와 관련해서도 구 작가는 “열린 결말의 여운은 작가가 독자에게 사고의 바통을 넘기는 일”이라며 “동시에 독자가 자신만의 결론을 구성해 가고, 새로운 길을 찾는 과정이 독자들의 인생과도 연결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인간성에 대한 탐구와 열린 결말을 추구하는 구병모 작가의 작품세계는 작가 본인의 현실인식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그의 작품세계를 감싸는 ‘푸른 우울’은 모든 작품을 관통하며 구병모 작가만의 ‘센티멘털리즘’을 그려냈다. 그는 “내게 이 세상과 우리 인간 존재는 이미 파멸한 존재”라며 “마치 필연적인 불치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우리는 종말을 늦추기 위해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질문했다. 구병모 작가는 자신의 끊임없는 회의주의가 자신의 소설에도 반영됐다고 봤다.

구 작가는 자신의 회의주의적 심리를 묘사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디테일한 ‘문장쓰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구병모 작가는 “나는 깔끔한 칼날같이 가독성 높은 문장보다는 목적지에 가기 위해 멀리 돌아가는 문장을 원한다”라며 “한 문장을 거듭 생각해 문장 속에 내밀하게 숨겨진 뜻을 독자가 찾도록 이끄는 것을 중시한다”라고 설명했다.

 

아무리 산란회유를 하는 물고기처럼 힘차게 몸을 솟구치려 해도, 이 세상에 혼자만의 힘으로 호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이에요. 누에고치처럼 틀어박혀 자신만의 잠사로 온몸을 감싼 채로는, 코가 뚫리고 건강한 폐를 가졌다 해서 숨 쉴 수 있는 게 아니라고요. 누구나 아가미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를 곁에 두고 살아야만 하며, 내 옆에는 다행히 그런 분들이 있다고 말이에요. 

- 『아가미』 ‘작가의 말’ 중 

구병모 작가는 “나는 누군가의 멘토가 돼 꿈과 희망을 주겠다는 공허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구 작가는 현재 불안한 21세기의 10~20대에게 순간적인 희망만을 주는 발언을 ‘사회의 마취제’라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는 “멘토라는 타자에 기대거나 그들이 하는 말을 무비판적으로 믿지 말고, 끊임없이 모든 것에 의구심을 가지고 자기 나름의 논리를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깨어있는 감성과 이성을 지니고 타인과 함께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구병모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사진: 원가영 기자 irenber@snu.ac.kr

삽화: 홍해인 기자 hsea97@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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