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형 부편집장
강지형 부편집장

‘펜벤다졸’이라는 약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본디 개 구충제로 개발된 이 약이 최근 들어 뜨거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외국의 한 말기 암 환자가 이 약을 먹고 암이 완치됐다고 말한 것을 시작으로, 국내외로 수많은 말기 암 환자들이 이 약을 복용하며 증상 호전을 보고했기 때문이다. 절박한 그들에게 과학적 근거가 부족해 복용을 추천할 수 없다는 의학계의 입장이 곧이곧대로 들릴 리 없었고, 급기야 최근에는 암 치료에 효과적인 약을 의사들과 제약회사가 돈벌이를 위해 공개하지 않는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에서 임상 연구를 주도해달라는 청원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펜벤다졸 열풍이 확산되는 데 가장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은 ‘같은 환자’의 증언이었다.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이 직접 써보니 나았다는 말에, 과학적 근거가 빈약하다는 전문가의 소견은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이들의 판단이 비과학적일지언정, 시한부 판정을 받은 환자의 절박한 마음에서 나온 개인적 선택을 그 누가 비난하겠는가? 하지만 이런 증언들을 토대로 임상연구를 진행하고 펜벤다졸의 항암효과를 인정해야 하는가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내가 이런이런 방법을 써보니 불치병과 고질병이 싹 낫더라”와 같은 보고는 수없이 많다. 그런 개인적 경험들만 가지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그런 보고들을 지지할 만한 객관적 자료들이 있을 때에만, 개인의 주장들을 ‘사실’로 확정하고 논의를 확장할 수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과학과 달리 일상생활에서 이런 원칙은 지켜지기 어렵다. 모든 사회현상이 계량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인간의 감정과 같이 애초에 검증이 불가능한 영역도 있다. “모든 인간에게는 인권이 있다”라는 생각처럼, 이런 검증 불가능한 개념에 모두가 동의할 경우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결국 검증 가능한 선에서 검증 가능한 자료로 상대를 설득하고, 그 이외는 불가지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것이 옳다.

대한민국 사회의 식지 않는 “젠더 갈등” 논쟁은 검증 불가능하지만 공유되지도 않는 경험이 보여주는 한계의 교과서적인 예시다. 이 문제의 경우 남녀 양측의 고유한 경험을 갖고 벌이는 논쟁은 이하의 세 문장을 벗어날 수 없다. “여자(남자)가 힘들다!” “남자(여자)도 힘들다!” “그거랑 그거랑 같냐!” 너는 내 경험을 이해할 수 없지만, 우리는 이런 걸 경험하고 있으니 우리가 옳다는 주장은 (공감 능력이 월등히 좋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 그보다는 “통계를 내본 결과, 게임 내에서 욕으로 사용되는 말 중 절반 이상이 여성을 비하하는 말이다” “3D업종 종사자의 압도적 다수가 남성이다” 등 확인 가능한 자료를 기반으로 토론을 해나가야 한다.

‘개인 경험’은 그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것만큼이나 굳건한 사실이나, 결국 그 자체로는 도그마일 뿐이다. 나의 생각을 남들에게도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누가 펜벤다졸을 먹고 암이 나았다더라” 이상의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공인의 영역이나 강제성을 띠는 제도 내로 자신의 생각을 편입시키려 할 때는 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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